[스크랩] 시간을 뒤적이다 / 강희안
2008.01.28 by 백연심
[스크랩] 벼 / 이성부
[스크랩] 도원경(桃源境) / 박성우
[스크랩] 오미자술 /황동규
[스크랩] 점(占)집 앞에서 / 박주택
[스크랩] 목마와 숙녀 / 박인환
[스크랩] 파안 / 고재종
[스크랩] 상가(喪家)에 모인 구두들 / 유홍준
시간을 뒤적이다 / 강희안 (1965~ ) 어떤 신학자가 인간의 평균수명을 75살로 계산하여 다음과 같은 흥미로운 통계를 냈다. 잠자는 시간 23년, 일하는 시간 20년, TV를 보는 시 간 9년, 먹고 마시는 시간 6년, 신호등 앞에서 파란 불을 기다리는 시간 6개월, 광고 우편물을 뜯는 데 8개월, 잃어버린 물건을 찾는..
해설이 있는 시 2008. 1. 28. 15:19
벼 이 성 부 벼는 서로 어우러져 기대고 산다. 햇살 따가와질수록 깊이 익어 스스로를 아끼고 이웃들에게 저를 맡긴다. 서로가 서로의 몸을 묶어 더 튼튼해진 백성들을 보아라 죄도 없이 죄 지어서 더욱 불타는 마음들을 보아라, 벼가 춤출 때, 벼는 소리없이 떠나간다. 벼는 가을하늘에도 서러운 눈 씻..
해설이 있는 시 2008. 1. 28. 15:18
도원경(桃源境) / 박성우 뻘에 다녀온 며느리가 밥상을 내온다 아무리 부채질을 해도 가시지 않던 더위 막 끓여낸 조갯국 냄새가 시원하게 식혀낸다 툇마루로 나앉은 노인이 숟가락을 든다 남은 밥과 숭늉을 국그릇에 담은 노인이 주춤주춤 마루를 내려선다 그 그릇을 들고 신발의 반도 안 되는 보폭으..
오미자술 / 황동규(1938~ ) 오미자 한 줌에 보해소주 30도를 빈 델몬트 병에 붓고 익기를 기다린다. 아, 차츰차츰 더 바알간 색, 예쁘다. 막소주 분자(分子)가 설악산 오미자 기개에 눌려 하나씩 분자 구조 바꾸는 광경. 매일 살짝 보며 더 익기를 기다린다. 내가 술 분자 하나가 되어 그냥 남을까 말까 주저..
점(占)집 앞에서 / 박주택 (1959~ ) 바로 저기, 골목은 오래도록 천식을 앓고 바람이 익어가는 감나무 그늘아래 수화(手話), 잡초, 그리고 담 벽을 타고 오르는 담쟁이넝쿨, 너의 조그만 창문도 너의 것에 힘입어 밖을 향해 열렸으리라. 다시 한 번 두 시의 불탄 소리 속에서 겁먹은 운명은 귀먹은 듯이 울먹..
목마(木馬)와 숙녀(淑女) 박인환 한 잔의 술을 마시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生涯)와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을 이야기한다. 목마는 주인을 버리고 거저 방울 소리만 울리며 가을 속으로 떠났다. 술병에서 별이 떨어진다. 상심(傷心)한 별은 내 가슴에 가벼웁게 부숴진다. 그러한 잠시 ..
해설이 있는 시 2008. 1. 28. 15:17
파안 / 고재종 마을 주막에 나가서 단돈 오천 원 내놓으니 소주 세 병에 두부찌개 한 냄비 쭈그렁 노인들 다섯이 그것 나눠 자시고 모두들 불그족족한 얼굴로 허허허 허허허 큰 대접 받았네그려! -시집 '날랜 사랑'(창비)중에서 [해설] 아침상 차려 준 아내에게 '큰 대접 받았네 그려!' 아침 노래 들려준 ..
상가(喪家)에 모인 구두들 / 유홍준(1962~ ) 저녁 상가에 구두들이 모인다 아무리 단정히 벗어놓아도 문상을 하고 나면 흐트러져 있는 신발들 젠장, 구두가 구두를 짓밟는 게 삶이다 밟히지 않는 건 망자(亡者)의 신발뿐이다 정리가 되지 않는 상가의 구두들이여 저건 네 구두고 저건 네 슬리퍼야 돼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