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소설 창작 강의 (15) -작가의 삶이 작품의 색깔을 만든다[2]

소설창작강의실

by 백연심 2007. 4. 1. 00:04

본문

소설 창작 강의 (15)    -이호철

 

 

작가의 삶이 작품의 색깔을 만든다[2]

작가와 그 작가에 써 낸 작품과의 관계는 어느 나라의 어느 경우나 거의 예외가 없어요. 러시아도 마찬가지더라 구요.
제가 러시아의 톨스토이 집엘 가봤는데요.
우선 모스크바 시내의 톨스토이 집엘 들려 보았는데(물론 지금은 ‘톨스토이기념관’입디다만은), 그 집 안에서 내다보는 마당, 뜨락이 언젠가 분명히 본 일이 있는 뜨락이더라구요. 그 분위기가 아주아주 익숙해 있지 뭡니까.
그래서 가만가만히 혼자 생각해 보니까, 오래 전에 읽었던 그의 장편소설 『부활』의 어디에선가 본 마당이더라구요. 틀림없이 그렇더라 구요. 집안의 살림 집기며 주방 풍경이며 백작 집안이었으니까 응당 그럴 만하게 웅장하고 품격이 있더라 구요.
꼭 100년 전, 1899년에 『부활』을 썼다는 그 방도 뭔지 모르게 퍽 익숙해 있더라 구요.
그렇구나, 이런 사람이었기 때문에 이런 소설도 써 냈었구나, 하고 집 전체 분위기가 우람하고 웅장해서, 그렇구나, 이런 대 귀족 집안에서 태어나 자라서 그렇게 버틸 힘도 있었겠고 뒷심이 있었구나, 싶은 게, 그가 써 낸 그 『부활』이라는 작품과 톨스토이라는 사람이 하나의 덩어리로 자연스럽게 다가오더라 구요.
그 며칠 뒤, 모스크바에서 220 킬로쯤 떨어진 그의 야스냐야 폴랴나의 대농장 저택을 둘러 본 느낌도 예외없이 그런 거였어요.
그냥저냥 그이가 살아냈던 당대 속의 그이라는 사람이 일거에 덩어리로 다가오더라 구요.

그뒤, 페테르부르크의 도스토예프스키가 말년에 살았다던 집엘 가보니까, 영락없이 역시 그 당대를 살았던 도스토예프스키라는 사람이 보이지 뭡니까. 톨스토이에 비해서 훨씬 천격이더라구요.
톨스토이의 저택처럼 우람하고 웅장한 맛이라곤 전혀 없고, 사방에서 빚쟁이들의 빚 갚으라는 독촉이나 받으며 참 지지리도 고생, 고생 하다가, 나이 육십이 넘어 겨우 말년에 용케도 이만한 집이라도 쓰고 살며 안정을 맛보고, 당시의 차르황실에서도 비로소 한 작가로서 제대로 대접을 받게 되어 나름대로 본인도 자족해 하는 그런 도스토예프스키가, 안쓰럽게 다가오는게 아닙니까.
원래는 4층집이였던 것 같은데 이제 100년 너머의 세월이 흘러 맨 아래층은 땅이 돋아져서 거의 반 지하실이 되어 있더군요.
그렇게 그 옛날에는 2층이었던 것이 지금은 1층이더군요.
그리고 옛날의 3층이 지금은 2층으로 그림 파는 갤러리여서 기념으로 그림 하나 사다가 지금 제 집에 걸어 놓고 있습니다만.
그러니까 맨 위층에 작가의 거실도 있고 서재도 있더군요.
그런데 그이가 살아 생전 누워 잠잤던 침대며 집기들이며 책상이며 뭔지 천격이더라구요.
모스크바나 야스니야 폴랴나의 톨스토이 저택에 비하면 형편없지 뭡니까.
사람부터가 형편없는 천덕꾸러기라는 것이 대번에 느껴져 오더라구요. 이 사람이 실제로는 이 정도로 천덕꾸러기였구나, 하고 혼자서 머리가 끄덕거려지더라니까요.
아무리 이 댁에서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같은 대작을 써 냈을 망정, 기본적으로 집 쓰고 살았던 분위기 보니까, 자연인 도스토예프스키라는 사람의 그 분수를, 진면목을 대번에 사그리 알겠더라구요.

내가 어릴 때 그다지나 좋아했던 안톤 체호트도 그이가 어릴 때 살았던 타칸로그나 말년에 거처했던 얄타 별장에는 못 가보았지만, 모스크바 시절에 체호프가 살았던 현재의 체호프 박물관에는 가보았는데요.
이곳에서도 영락없이 살아 생전의 체호프가 여실하게 보이더라구요.
지극히 질박하고 겸손했고, 덩치는 컸으면서 사람이 지나치게 섬세했었거든요.
다 닳아빠진 왕진가방하며, 자질구레한 집기들 하나하나 하며 늘 빠듯하게 절제속에 살아야 했던 그이 처지가 손에 잡히듯이 다가오더라니까요.
역시 이 댁이 체호프 집이 틀림없구나, 싶던데요.
같은 모스크바 시내의 톨스토이 집(기념관)에 비하더라도 안쓰러울 정도로 가난하고 무언지 잘고 짜잔해요.
그렇지만 가난하면서도 일정한 품위는 감돌아서 도스토예프스키네 집에서 풍기던 천덕스러움은 전혀 없더군요.

그리고 페테르부르크의 푸슈킨 집. 그이도 귀족의 자제로 태어났으니까, 그 옛날 네바 강변의 날씬한 아파트더라구요.
헌데 같은 귀족 태생이었으면서도 톨스토이와 푸슈킨은 또 천양지 차이로 다르지 뭡니까. 두 사람의 작품도 그렇듯이 사람 생긴 것이 전혀 달랐더라구요.
저택 생긴 것부터가 톨스토이는 우람하고 장중한 데 비해 푸슈킨은 집 쓰고 사는 것부터 무언지 날렵하고 귀엽게 경망스럽고 첨단적이더라구요. 그이는 1799년에 태어나서 1837년에 결투로 죽는데…. 그 마누라가 나이 차이가 많고 대단한 미인이었지요.
마누라가 세 자매의 막내였는데 하나같이 예쁘고 세련된 점으로 유명했었다고 해요.
오죽했으면 당시의 니콜라이 1세도 그 자매에게 홀딱 반해서 매일밤의 궁정 무도회에 그녀들이 나오도록 푸슈킨을 전혀 격에 맞지 않게 그런 쪽 담당으로 갖다 앉히기까지 했다잖아요.
그래서 푸슈킨도 무척 고민을 하기도 하지요. 1825년의 데카브리스트사건으로 친구들 거개가 시베리아의 이르크츠크 근처에 정배(定配)가 있는 속에서 자기는 이게 무슨 꼬라지인가 싶어 죽을 맛이었던 때 거든요.
과연 그 댁엘 가 보니까 그런 모든 것이 손에 잡히듯이 느껴지더라구요.
그 미인 마누라 방의 탁자며 의자며 바느질 그릇 하나 하나까지 어쩌면 그렇게도 예쁘고 귀여울 수가 있었겠어요.
품위 있고 애교 있고 매력 있는 그 여자들의 실체가 극명하게 다가오더라구요. 150년 전의 그녀의 깔끔한 세련미가 약여하지 뭡니까.
그리고 그 문 하나 너머 푸슈킨의 세재는 높다란 천장에다 벽에는 커다란 코카서스의 그림을 붙이고 있는 게, 당시의 자기 자신의 처지를 못내 역겨워하며 멀리멀리 코카서스 쪽으로만 가고 싶어했던 음울한 분위기가 고스란히 전해져 오더라구요.

요컨대 글과 그 글을 써 낸 사람의 관계란 이렇더라구요.
그 사람 삶의 반영으로 시가 있고 소설이 있고 예술이 있더라구요.
가장 당연하고 쉬운 진실임에도 흔히 이것을 놓치고 있곤 해요.

 

 

 * 책으로 나왔습니다 .... *

 

 

출처 : - ☆ 시인의 향기 ☆- http://club.iloveschool.co.kr/poem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