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소설 창작 강의 (13) -츠바이크의 소설 『마리 앙투와네트』

소설창작강의실

by 백연심 2007. 4. 1. 00:03

본문

소설 창작 강의 (13)   -이호철

 

 

츠바이크의 소설 『마리 앙투와네트』

또 한 가지, 최근에 제가 우연히 겪은 경험으로는 30년대 독일 작가 스테판 츠바이크의 『마리 앙투아네트』라는 꽤나 긴 전기소설을 매우 재미있게 읽은 일을 들 수 있을 거예요.
루이 16세의 처로 프랑스혁명 때 단두대에서 목 잘려 죽은 그 여자 말이에요. 이건 조금 농담처럼 하는 얘깁니다만, 마리 앙투아네트라는 여자가 얼마나 팔자가 드센 여자였느냐 하는 걸 알고 싶어서 그 소설을 읽었다고나 할까요.
다시 말하면 마리 앙투아네트 입장에서의 프랑스혁명. 그것까지 죄다 챙겨서만 당대의 전체상이 떠오를 것 아닙니까.
이걸 읽어 내면서 소위 역사에 대한 흔한 통념의 문제점을 새삼 확인하였고, 그 소설이 많은 것을 일깨워 주었는데요, 이 작품이 비록 30년대 것이긴 하지만 작금의 서구쪽 장편소설이라는 것들이 통틀어서 대강 이런 쪽으로 가는 모양이구나, 하는 점도 알게 되더라구요.

우리나라의 장편소설들도 『임꺽정』을 비롯, 이광수의 『단종애사』, 박종화의 『금삼의 피』등, 바로 우리 역사의 가장 드라마틱하고 그로테스크한, 소재 자체만으로도 뛰어나게 재미있는 역사 소설들이 많지요.
연산군 이야기 얼마나 재미있습니까. 요즘 ‘용의 눈물’이라는 게 대단히 인기가 있는 모양입디다만 방원과 강비 이야기 같은 것도 얼마나 처절합니까.

최근에 프랑스에서도 지나치게 문학 지상주의에 매이지 않고 러시아의 『이반 뇌제』라든지 『에카테리나 여황제』,『표트르 대제』같은 역사소설이 크게 유행을 하고 있더군요.
몇 년 전에 국제펜클럽 회장으로 있는 프랑스 할머니가 왔었는데 그이도 그런 말을 합디다. 무슨 주의니 뭐니 하고 문예사조 쪽으로 어쩌고 저쩌고 하는 것은 60년대 사르트르나 앙티 로망으로 끝났고, 요즘은 그냥 재미있게 읽히는 소설이 많다, 라고요. 그런 소설이라고 아무나 쓸 수 있는 건 아니거든요.

츠바이크의 그 소설, 『마리 앙투아네트』도 프랑스 부르봉 왕가의 말기 이야기거든요.
태양왕이라고 불리우던 루이 14세는 엄청난 기력의 소유자여서 승승장구하지만 그 아들 루이 15세는 아버지가 이룩해 낸 그것을 통째로 들어먹는 그런 형의 사람이여서 오로지 주색잡기에만 골몰해요.
그런데 태양왕의 손자, 루이 16세는 이건 생판 병신이에요. 덩치도 크고 생긴건 멀끔한데, 이게 도무지 사람이 싱겁기만 하고 물에 물 탄 듯 매가리라곤 없는 사람이었어요.당연히 정치적인 능력도 전혀 없었지요.
그런데 바로 그때가 어떤 때였느냐, 유럽의 한가운데서 부르봉왕가하고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의 합스부르크왕가하고 오랫동안 대대로 내려오며 실랑이를 일삼았던 거죠.
그렇게 두 제국끼리만 으르렁거리며 주도권을 다투었는데, 가까운 주위에서 서서히 독일, 영국이 일어나고, 러시아에서도 표트르 대제, 에카테리니 여황제가 일어나고 하니까, 저들도 이젠 둘이서만 노상 다툴 것이 아니라며, 이를테면 정략적으로 결혼을 한 것이 열네 살짜리 마리 앙투아네트, 합스부르크왕가의 막내딸을 부르봉왕가의 루이 16세에게 시집을 보냅니다.
그렇게 서로 사돈이 되면서 이제까지 아웅다웅만 일삼던 것을 가라앉히지요. 그러니 한창 천진난만하게 뛰어놀 마리 앙투아네트는 별안간에 이 무슨 환난입니까. 활달하고 예쁘고 오로지 놀기 좋아하는 그 아이로서는 그야말로 날벼락이었겠지요.

작가는 그 성격 묘사부터 생동감 있게 잘 그려 냈더라구요. 실제 고증도 사그리 섭렵했겠지만, 작가 특유의 상상력과 깊은 식견과 인간통찰로서 그야말로 푸짐하게 잘 그려 냈더라구요.
왕비로서 갖추어야 할 덕목을 위해 독서를 한다거나 까다로운 궁중법도 같은 것은 천성적으로 아주아주 질색하고, 천성적으로 어디 매이는 것을 절대로 못 참고, 암튼 생득적으로 철딱서니라곤 없는 그러나 아주아주 매력 있는 계집아이더라구요.
엄마는 바로 합스부르크왕가의 실력자니까 권력이라는 것을 감당해 가려면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 투철하게 알고 있는 노화한 여자였죠. 그러니 막내딸을 시집 보내면서 아주아주 불안해해요.
원체 자기 딸을 잘 아니까. 이런 대목들이 생동감 있게 약여하게 그려져 있는데, 어머니의 그 딸에 대한 그 어떤 운명적인 예감이랄까요, 그런 것이 시종 감돌고 있더라구요. 그 소설에는.

결국 시집을 가서, 루이 16세라는 남편이 처음부터 추호나마 정 들어서 결혼한 것도 아닌데, 설상가상, 이게 성적으로 불구자야. 그래서 신혼 때 7년간이나 처녀 과부로 지냈으니 어떠했겠어요.
뻔할 뻔자, 불문가지지요. 게다가 마리 앙투아네트는 매사에 맺고 끊지 못하는 남편 루이 16세하고는 달리, 날렵하고 단호한 면은 있으면서도 천성적으로 깊은 성격은 못 되어서 늙은 친정어머니가 노심초사, 편지를 보내지요. 그렇게 노모는 이미 먼 훗날의 딸의 운명을 예감하고 있었던 것 같아요.

이렇게 비극이 시작되는데, 작가는 그 당대의 국제관계며 뭐며 사그리 제 손바닥 들여다보듯이 꿰고 있더라구요.
그렇게 그 작가 자신이 알고 있는 인생 지식을 술술 이야기로 풀어 내더먼요.
그런데 그 풀어 내는 것이 그 당대에 관해서나 서로 얽힌 사람 관계를 다루는 데서나, 그냥 평판(平板)하지가 않고 매우매우 깊고 투철해요. 이 작가의 인생을 아는 깊이가 만만치 않더라는 말이에요. 어디, 인생뿐이겠습니까, 당대 국제관계의 본질이며 뭐며 사그리 꿰서 극명하게 복원시키고 있더라구요.

가령, 그 소설의 프로로그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되고 있어요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 이야기를 엮어 낸다고 하는 것은, 탄핵하는 쪽과 변호하는 쪽이 서로 핏대를 올리며 격론을 일삼고 있는, 이를테면 지난 100년 이상에 걸친 소송 사건에 자청해서 껴드는 셈이다.
논쟁이 금방 격정으로 치닫는 것은 탄핵하는 쪽이 탓이다. 왕정을 끝장내기 위해서 혁명은 이 왕비를 표적으로 삼지 않을 수 없었고, 더구나 왕비의 한 계집으로서의 측면을 사그리 공격해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나저나 성실이라는 덕목과 정치라는 현장이 한 지붕 밑에 나란히 병존한다는 것은 드문 일이고, 더구나 선동자 류의 목적으로, 한 인물의 상(像)을 그려 내기라도 할 판국이 되면, 세상 여론의 향배 쪽으로 눈치나 살피는 자들에게 공정을 기대할 수는 없다.
마리 앙투아네트를 사형장으로 끌어내기 위한 길이라면, 그녀에 대해 그 어떤 수단도 마다하질 않고, 그녀에 대한 그 어떤 중상도 서슴지 않는다는 식이었다.
신문지상으로, 팸플릿으로, 혹은 책자로 저 모든 악덕, 가지가지 도덕적 타락, 그 어떤 종류의 도착(倒錯)을 자처하는 고소인이 극도로 격앙하여 그녀를 역사상 가장 유명한 타락녀들 반열에 세웠다.


대강 이렇게 시작되는데, 이 방대한 소설의 끝까지 줄곧 이런 문장으로 이어지고 있어, 어찌 보면 소설 문장이 아니라 대표적인 논픽션 문장처럼도 보인다는 말이에요.
사실에 있어 이 작가는 특별히 픽션 문장과 논픽션 문장의 차이 같은 것일랑 처음부터 아예 묵살하고 있는 것처럼도 보인다는 말입니다.

여기에 비하면 우리네 『단종애사』나 『금삼의 피』심지어 『임꺽정』까지도 소위 소설 양식이라는 것에 지나치게 매어 있지 않았나 싶어지기까지 하더라구요.
쓸데없이 대화장면 같은 것이 많고요. 그런 건 쓰기가 쉬우니까 소설을 엿가락 늘이듯이 길게 늘이는 데는 좋은지 모르지만 전체 밀도는 얇아지지요.

그런데 츠바이크의 이 소설은 등장인물 상호간의 대화도 그다지 많지 않고, 자기가 알고 있는 이야기들을 슬렁슬렁 편하게 풀어 내더라구요. 그러니까 구경적으로는 결국 거기에 귀착되더군요.
그 작가가 지금 써 내고 있는 그 작품의 시대 배경이며 인물관계를 얼마만큼 깊이, 그리고 풍요하게 꿰고 있느냐, 알고 있느냐 하는 것. 그런데 이것은 그 작가의 평소 지적 수준의 반영일밖에 없거든요.
평소에 인생을, 세계를, 그 작가가 얼마만큼 깊이 널리 인식하고 있었느냐 하는 바로 그 ‘인식 수준’에 좌우된다고 보아야지요.

바로 그 인식 수준에서 그 쪽 작가들에 비해 우리 작가들은 근본적으로 너무너무 얄팍하고 부족하고, 뭐랄까요, 자격미달이더라구요.
그리고 이건 어디서 유래된 결과냐. 바로 두 나라 문화의 근본적인 지적 부피의 차이, 다시 부연한다면 개개 작가들의 지난 몇 십년 동안의 독서량의 차이에서 말미암은 결과일거에요.

 

 

 

 

출처 : - ☆ 시인의 향기 ☆- http://club.iloveschool.co.kr/poem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