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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창작 강의 (12) -『분례기』의 탄생 뒷이야기

소설창작강의실

by 백연심 2007. 4. 1.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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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창작 강의 (12)   -이호철

 

한미르에서 가져옵니다.



『분례기』의 탄생 뒷이야기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연재소설이 아닌 것으로 썩 잘 빠진 장편소설 하나를 들라면 나는 서슴없이 방영웅의 『분례기』를 들곤해요.
그리고 이 소설이 나오기까지의 과정은 내가 속속들이 알고 있지요.
아니, 속속들이 안다는 것은 주제넘은 이야기가 되겠고, 그 소설이 그렇게 나오기까지는 나대로도 대강 모종의 사연이 있었어요.

방영웅의 그 소설은 본시 원고지로 292장짜리인 ‘비밀’이라는 제목의 중편으로, 월간지 『세대』에 응모를 했었어요.
1966년, 그러니까 내가 동아일보에다 『서울은 만원이다』를 연재하던 바로 그 때였어요. 마침 그 응모소설들의 심사를 제가 맡았던 거예요.
결국 몇몇이 최종 심사 끝에, 지금 그 소설의 제목은 잊어먹었지만 박태순의 소설이 당선의 영예를 안았고, 그 방영웅의 소설, 292장짜리 ‘비밀은 탈락이 되었지요.
그렇게 탈락을 시켰지만 나로서는 쾌나 아깝더라구요. 물론 작품 됨됨이에서 누가 보더라도 당선작 수준에 미치지는 못하였지만, 탈락을 시켜 놓고 본즉 그 작가가 무척 안쓰럽고 안됐다, 싶더라구요.
왜냐하면 작품의 완성도에 있어서는 여기저기 흠이 많았지만, 대목대목 정경묘사나 인물 형상이나 그 밖에도 입심이나, 그냥 떨어뜨리기는 아까운 구석이 많더라구요.
그래서 원고 맨 뒤쪽에 적혀있는 인적(人的)사항을 보았더니 주소가 성동구 금호동 몇 번지더군요.

그 무렵은 전화가 극히 드문 때였지요. 게다가 금호동이라고 하면 그 당시 서울서 대표적인 가난뱅이 동네였지요.
그 너머 옥수동도 생기기 전이어서, 그때 금호동은 높은 언덕바지에 다닥다닥 천막집들과 판잣집들이 끝 간 데 없이 널려져 있는 황량한 마을이었죠.
나는 언젠가, 딱 한 번 그 근처엘 가본 일이 있었어요. 연탄도 그날그날 낱개로 사다 때고, 나이 지긋한 지게꾼이 막걸리 두어잔 걸치고 얼근해서 꽁치 두어마리를 볏짚으로 매어들고 골목길로 올라오는 광경과 마주치기도 했던 것 같아요.
그 주소를 보니, 더욱더 안쓰러워지는 게 아닙니까. 50년 겨울에 제가 이북에서 갓 피난 나와서 부산바닥에서 고생할 때도 생각나면서 약간 가슴이 싸아해지더라구요.
대체 어떤 사람일까? 원고지 글씨를 보아하니 틀림없이 발랑 되까진 서울내기 같지는 않고 ‘촌놈’같은, 대체 몇 살이나 먹은 녀석일까? 결국 나는 혹여나 싶어, 그 주소와 방영웅이라는 이름으로 응모해 왔던 그 원고지 한 귀퉁이에다 적어 찢어서 서랍 속에 아무렇게나 넣어 두었어요. ‘성동구 금호동 몇몇 번지 방영웅’이라고요.

그런데 그 바로 며칠 뒤였을 거예요. 그 무렵에 마악 새로 창간되어 나왔던 『창작과 비평』지를 주관하던 분이 내가 그 창간호에 단편소설도 실었던 거여서 짭짤한 소설 얻기가 하늘의 별따기만큼이나 어렵다면서 기성작가 아니라도 좋으니 단편도 좋고 장편도 좋고 혹시 하나 없겠느냐고 하질 않겠어요.
그러자 문득 그 일이 생각나서, 이만저만 해서 주소와 이름 석자를 적어두긴 하였는데 오늘 저녁 돌아가서 서랍 속을 뒤져 보면 나올 거다, 그러면 즉시 전화로 알려주마, 했어요.

돌아오자마자 서랍 속을 찾아보니 그 쪽지가 나오지 뭡니까.
곧장 전화를 했지요. 그러군 그 일은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열흘쯤 지났을까요, 그이를 다시 만났더니 비죽이 웃으면서 하는 얘기가, 엽서 편지를 그 주소로 띄워서 다방에서 만나기는 만났는데, 처음부터 여간내기가 아니더라는 거예요.
『세대』지에서 낙방한 그 ‘비밀’이라는 중편소설 이야기를 꺼내자마자 낯색이 대뜸 새파래지면서 “당신이 대체 뭔데 바쁜 사람 불러내서는, 하필이면 낙방한 소설 이야길 끄집어내냐, 그렇잖아도 속상해 죽겠는데.” 대강 이런 뜻으로 중얼거리면서 벌떡 일어서더니, 그대로 자리를 박차고 나가더라는 거예요. 미처 붙들고 자시고 할 틈도 없이 말이에요.
그래서 다시, 요전번엔 대단히 실례했노라고 간곡하게 편지를 띄워, 바로 오늘 오후 다섯시에 만나기로 했으니 별 일 없으면 같이 가서 한번 만나 보자고 하는 거지 뭡니까. 좋다고 응낙을 했지요.

다섯시 정각에 맞춰 그이와 같이 갔더니 방영웅은 벌써 와서 기다리고 있는 거예요.
체수가 작고 사내치고는 계집아이처럼 이쁘게 생겼는데 첫눈에도 여간내기가 아니겠더라구요. 토종 밤알마냥 때글때글하더먼요. 그러나 암튼간에, 그러면 그렇지, 싶더라구요.
네가 가긴 어딜 가, 그렇게 뿌리치며 발딱 일어서서 오기 부려 보았자, 너만 손해지 싶은 게. 사실로 그날 금호동 꼭대기로 돌아가서도 얼마나 얼마나 후회막심이었을 겁니까.

헌데 나를 만난 그날은 처음부터 얌전하더라구요. 응당 처음부터 그럴 일이었지요.
하지만 그 무렵의 방영웅 입장이 나름대로 벌써 가늠도 되더라구요.
충청도 예산서 올라와서 휘문고등학교 다닐 때는 김유정, 김동리 소설 등을 유독 좋아하면서 문학소년치고는 수학도 잘했다나요.
그러나 대학에 낙방, 그 다음엔 그 약골 체수로 뭘 할 겁니까. 자나 깨나 짜증만 나고 굶으며 먹으며 근근이 하루하루 지내면서 무료와 절망으로 빠작빠작 피가 말랐을 것 아닙니까.
죽고 싶지만 참아 결행까지 할 엄두도 못내고, 그러다가 어느날 우연히 손에 들어온 잡지에서 소설 모집 공고를 보고는, 에라, 모르겠다. 여기에나 한번 응모해 보자, 하고 300장 가까이 저딴으로는 죽자꾸나 하고 써서 내보았는데, 하필이면 그것도 마지막 결선까지 올라가서 보기 좋게 미끌어져 미역국을 자셨으니, 그 마음이 어떻겠어요. 세상에 잘났다는 놈들은 죄다 쳐죽이고 싶었을 터이지요.

그런데 어럽쇼, 심사후기에서, 자기가 쓴 소설에 대해 방영웅의 소설은 꽤나 싹수는 있어 보이지만…어쩌고저쩌고, 언급했던 그때 당장은 때려 죽이고 싶던 그 이호철이라는 자가 당장 앞에 나타났으니 어쩔 겁니까.
더구나 그 이호철도 방영웅 자기처럼 대학이라는 데는 문전에도 못 가본 사람이라는 말이에요. 모르긴 해도 아마 우선 그 점이 마음에 들었을 거예요.
결국은 그날로 막걸리 몇 잔 마시면서 친해졌어요. 들어 보니, 아닌 게 아니라 한창 젊은 사람이 처지가 딱하더라구요.
그 뒤로는 우리집에 때 없이 드나들면서 자기도 하고, 그러면서 『창작과 비평』을 주관하던 그이도 편집자로서는 최고로 기대할 수 있는 수준으로 방영웅에게 공을 들였어요.

그렇게 1년쯤 지났을까요, 1967년에 방영웅은 ‘비밀’이라는 그 중편소설을 1천700장짜리 장편소설로 새로 완성해 냈는데, 충청도 예산의 똥례라는 촌여자를 그야말로 악여하게 형살해 냈지 뭡니까.
그러니까 그때 ‘비밀’이라는 중편이 당선 안 된 것이 천만 다행이었지요. 그때 당장은 조금 섭섭했을지 모르지만, 그 때 당선 안 된 덕분에 1년쯤 뒤에 『분례기』라는 빛나는 전작 장편소설이 태어났던 거지요.

 

 

 

 

 

출처 : - ☆ 시인의 향기 ☆- http://club.iloveschool.co.kr/po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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