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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창작 강의 (8) -콩트 쓰기의 실제

소설창작강의실

by 백연심 2007. 3. 31. 2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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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창작 강의 (8)   -이호철

 

한미르에서 가져옵니다. 이호철님의 콩트가 나와있네요.





저녁 식탁에서 아내에게서 그 싱거워 바진 이야기를 듣고 나서 바로 이틑날이었어요. 마침 어느 사보에서 청탁이 왔어요. 15장짜리 콩트 하나 써달라고. 일단 응낙을 했지만 정작 막막하더라구요. 뭘 쓸까? 손쉬운 데서 뭐 하나 없겠나? 그러자 바로 어제 저녁 식당에서 아내가 하던 그 이야기가 떠오르는 것이 아닙니까. 콩트감으로 쏘옥 맞겠다 싶더라구요 그러면 그 이야기의 그 재미있는 요점은 뭐였느냐?
으레 그날 계 타는 아줌마가 한턱을 내게 되었다는 이야기는 앞에서 했는데, 그렇게 그날은 자기 집에서 불고기 점심을 냈나봐요. 그런데 어찌어찌 하다 보니까 일행 중에 손님에 해당하는 아줌마가 고기 굽는 궂은 일을 맡게 되고, 오늘 계 타서 한턱 내는 판인 주인아줌마는 정신없이 깔깔거리며 떠들다 보니 안쪽에 처억 눌러 앉게 됐나 봐요. 그래서 그만 깜짝 놀라며 주인아줌마가 “어머어머 내가 미쳤어. 얘, 얘, 바꿔 앉자, 이런 법은 없다, 아무리 허물없는 사이일 망정 기본 도리가 있는 게지”하고 호들갑을 떨면서 “이리 들어와라, 고긴 내가 구울게”, 했을 것 아니에요. 그런데 지금 고기를 굽게 있는 그 아줌마는 마음씨 착하고 보통때도 궂은 일 맡아하기 좋아하고, 그저 어디서나 조용 조용하고, 왜 더러더러 그런 여자들 흔히 보지요? 별로 예쁘지도 않고 목소리도 가늘가늘하고 독실한 신자로 새벽 기도에도 열심히 다니고, 대상 그런 여자였던가 봐요. 그러니 호락호락 바꿔 앉겠어요. 그 몇 번식 바꿔 앉자고 해도 저쪽에선 “괜찮아, 괜찮대두, 아 글쎄 괜찮대두. 난 이런 일 본시 재미있어 하는 거 너도 알잖니”하고 버텨서 잠시 실랑이가 벌어졌겠지요. 그렇다고 아무리 허물없는 친구지간이라곤 하지만, 주인아줌마로서야 그냥 그렇게 눌러앉아 있을 수는 없었을 테지요. 끈질기게 바꿔 않자고 채근을 했을밖에요. 그러자 고기 굽던 그 가늘가늘한 여자는 끝내 자기는 이런 일이 재미있기도 하지만, “그러구우, 뭐 먹다가 자리 바꿔 앉으면 안 좋다더라. 여러 번 시집가게 된대 물론 그런 소리 미신이긴 하겠지만 말야.” 이랬다는 거예요.
그러자 쥔 여자 맞은편에 앉았던 몸집 큰 뚱뚱한 아줌마가 입안에 가득 넣고 씹던 고기를 대강대강 급하게 씹어 넘기곤, “그렇대? 먹다가 자리 바꿔 앉으면 여러 번 시집가게 된대? 야야, 너 빨리 일어서, 당장 나하고 바꿔앉자.” 그래 가지고 바꿔 않았다나, 어쩄다나.
그래서 소설 작가인 나는 거기다가 한 술 더 보태서 그 자리의 아줌마들이 몽땅 다아 바꿔 앉는 걸로 했지요. 깔깔 낄낄 웃으면서. 어차피 소설이야 픽션 아닙니까. 기왕 거짓말 하는 거면 죄다 바꿔 앉게 하는 게 훨씬 재미있을 것 아닙니까.
그러나 대강 이런 내용으로 정작 쓰려고 드니까 다시 막막해지는 거 있죠. 당장 쓰려는 내용은 방금 이야기한 바로 그건데, 이걸 써야겠다, 하지만, 대체 어디서부터 써요? 이 이야기를 15장으로 써 내야 하는데 그 15장이 당최 만만치가 않더라구요. 그래서 책상 앞에 앉아 이것저것 생각하며 조금 몇 자 끄적거리며 파지도 몇 장 내며 조금 더 이리저리 머리를 굴린 거예요. 그 점, 읽어 보시면 여러분도 어느 정도는 짐작이 될 거예요. 자 그럼 한번 읽어 봅시다




늘어지게 낮잠 한잠을 자고 일어나기 두시다. 수련은 그냥 누운 채 손목시계 초침 돌아가는 것을 설익은 살구알 씹듯이 들여다본다. 한 바퀴, 두 바퀴, 세 바퀴…이렇게 초침이 한 바퀴씩 돌때마다 아직 잠에서 덜 꺤 선하품을 한 번씩 토한다. 어느 순간 화닥닥 놀라듯이 일어나 앉는다. 그러나 그렇게 일어나 앉아본들 딱히 전화 한 통화도 걸 데가 없다. 다시 도로 스르르 눕는다. 누운 채 일하는 계집애 순희를 불러 본다.
“순희, 밖에 있니?”
“네에.”
금세 문 앞에서 대답이 날아온다. 그러나 불러놓고 보니 정작 할 말이 없다.
“개집에 개 있니?”
“네, 있어요.”
“뭐하고 있니?”
“…?”
순희는 혼자 속으로 비시시 웃고 있을 것이다. 새끼 젖 먹이고 있어요, 그냥 개집 속에 자빠져 있어요 하고 대답할 수는 없었을 것이었다.
수련도 비시시 웃으며 비로소 결단을 내리듯이 털고 일어난다. 서둘러 세수를 하고 화장대 앞에 앉아서 오랜 시간 얼굴 손질을 한다. 각하가 미국 갔다 오는 사진이 실려있는 신문지가 방 가운데 널따랗게 펴진 채로 있다. 수련은 또 문득 그 생각이 나서 혼자 비시시 웃는다.
서른여섯 살인 막내이모가 하는 계꾼들이 모인 자리에서 언제안가 그런 일이 있었다고 한다. 그달 곗돈을 타게 되는 차례가 집에서건 음식점에서건 점심 한 턱을 내게 되어 있는데, 대개는 집에서 차린다. 그날도 그렇게 영동의 은마아파트에 사는 친지집에 모였었다고 한다. 이럭저럭 일고여덟 명이 모여서 한바탕 깔깔 거리는데, 점심상이 들어왔다. 마침 쑥갓과 상추 곁들여 고기를 굽게 되었는데, 어찌어찌 대강 둘러앉다 보니 그집 주인여자가 아니라 같은 계꾼 손님여자가 고기 굽는 궂은 역을 맡게 되었다. 자연히 주인여자 쪽에서는 미안해질밖에, 그리하여 바꾸어 앉자고 고집을 피웠다. 그러나 이쪽의 그 고기 굽는 궂은 역을 맡게 된 여자 족에서도 훌훌히 그러마고 나설 리가 없다.
“괜찮아, 내가 구울게. 난 이런 일 재미있어.”
“아니 그래도 그렇지, 주인은 버젓이 앉아서 먹고, 손님이 일을 하고 그런 법은 없다. 어서 바꿔 앉자.”
“글세, 괜찮아, 내가 구울게. 난 이런 일 재미있어.”
“아니 그래도 그렇지, 주인은 버젓이 앉아서 먹고, 손님이 일을 하고 그런 법은 없다. 어서 바꿔 앉자.”
“글세, 괜찮대두. 그러구 밥 먹다가 바꿔 앉으면 안좋다더라. 여러 번 시집가게 된대. 물론 미신이겠지만.”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입안이 미어지게 고기를 처넣던 여자 하나가 급하게 씹어 대강 목구멍으로 밀어 넘기고는 낄낄 웃으며 발딱 일어서서 말했다.
“어머, 그러니? 밥 먹다가 자리 바꿔 앉으면 시집 여러 번 가게 되니? 얘, 얘, 당장 나하고 바꿔 앉자. 어서, 어서 일어나. 나하고 바꿔 앉아.”
“어머, 그러니? 그럼, 넌 나하고 바꿔 앉자.”
“나두.”
“나두.”
이라하여 그 자리에 앉았던 전원이 깔깔거리며, 혹은 낄낄거리며, 혹은 입 안에다 가득히 쌈 싼 고리를 처넣은 채 이리저리 자리를 바꿔 앉았다고 한다. 모두가 여러 번 시집이 가고 싶어서. 물론 반은 농담 기운 섞인 장난이었을 터이지만. 그러나 반드시 그렇기만 했을가. 서른여섯 살 내외의 마악 뚱뚱해지기 시작하는 일고여덟의 주분들이 별안간 다같이 일어서서 담욕적으로 자리를 바꿔 앉는 그 정경. 모두 나름대로 장난스러운 웃음을 웃어가면서.
“그래서 이모도 바꿔 앉았단 말이지?”
약간 짖궂을 정도로 정색을 하면서 수련이 이렇게 따져 묻자 이모는 조금 당혹해 하며 얼굴을 붉혔다.
“얜, 그렇게 따져 물으면 어떡하니? 모두 심심해서 웃으려고 그랬는걸.”
“아냐, 그렇지만도 않았던 것 같아. 그러니까 이모의 경우, 다시 시집 간다는 건 이모부와 헤어지거나, 이모부가 잘못 되거나 그런 경우 아니겠어?”
“얜, 듣기 싫다. 넌 왜 그렇게도 애가 못됐니?”
“내가 못된 것이 아니라, 그 현장의 분위기가 환히 느껴지는데. 나이 마흔이 내일 모레로 다가선 여편네들. 다시 한번 새 시집 가고 싶은 욕구.”
이리하여 그때는 기어이 이모와 한바탕 싸움 직전까지 이르렀던 것이다. 끝내 이모는.
“아무튼 애들 앞에서는 지나가는 농담 한마디도 얼씬 입 밖에 낼 수가 없다니까.”
하고 부랴부랴 애를 들쳐업고 친정을 나섰던 것이다.
수련은 자기와 일하는 계집애 순희만 남겨두고 전원 출동한 이 낮시간을 견딜 수가 없다. 나서보았자 35도의 더위지만, 안 나서면 더 덥고 못 견딜 지경이다. 서른여섯 살의 여자들이 전부 그 모양인데, 나라고 이렇게 집안에만 얌전하게 있으라는 법이 없지. 서른여섯 살 먹은 여자들이 다시 시집이 가고 싶어 하나같이 환장해 있는 판에 스물일곱 살이 되고서도 아직 한 번도, 시집은거녕 연애 한 번 제대로 못해 본 이 조바심과 답답함을 뭐라고 잔소리할 것이람.
혜원다실에 들러 본다. 어떤 남자가 다실 안의 공중전화를 쓰고 있다. 뒤에 얌전히 서서 기다린다. 그 남자의 전화가 겨우 끝난다. 수련은 무언지 신 살구알 씹는 짜릿한 쾌감을 등줄기로 느끼며 수화기를 잡는다.
“기숙이냐. 오랜만이다. 응, 응, 그저 그렇지 뭐. 자리 바꿔 앉을 일도 없구, 우린. 응, 무슨 소리냐구? 응, 그럴 일이 조금 있어. 그건 그렇구, 실은 말야. 이걸 어쩌지? 미스터 박 있지, 너네 바지씨. 우연히 요 앞에서 만났는데, 너하고 태극당에서 만나기로 약속했으니까 금방 나올 거라고 했지 뭐니. 잠깐 커피 한잔씩 마시러 나왔던 모양인데, 그래서 동료직원들 먼저 들여보내고 너 만나 보고 들어갈란다고 저렇게 죽치고 앉아 있지 뭐니. 어쩌지? 나와. 더운게 대수야. 일이 이쯤 됐어. 암튼 알아서 해. 네가 안 나오면 무슨 핑계라도 대고 난 나대로 뜨면 되니까.”
“응, 알았어. 나갈게.”
수련은 그대로 혜원다실을 나서서 택시를 잡는다. 아이, 재미있어. 이제 조금 살 맛이 나는 것인가 하고 중얼거려 보낟. 택시 속에서 다시 문득 손목시계의 초침이 돌아가는 것을 찬찬히 들여다본다. 신 살구알 씹듯이 들여다본다. 어디를 어떻게 돌아다니고 어디서 누구와 만나서 무슨 얘기를 나누고 한 것을 일일이 기억할 수도 없게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저녁답에 집으로 돌아온다. 아직 출근했던 집안 식구 중 누구 하나 집에 돌아와 있지 않다.
수련은 제 방으로 들어가 그대로 침대 위에 벌렁 눕는다. 용수철 튀는 소리가 탄력이 있다.
“순희, 밖에 있니?”
“네.”
“해 졌니?”
“아직요.”
“아이, 여름날은 지겨워. 개집에 개 있니?”
“네.”
“오늘은 어디서 데모 안 일어났대니?”
“몰라요.”
“응, 됐어.”
그대로 수련은 사르르 잠 속으로 빠져든다.

 

 

 

 

출처 : - ☆ 시인의 향기 ☆- http://club.iloveschool.co.kr/po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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