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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창작 강의 (5) -항상 뭔가 쓰라!

소설창작강의실

by 백연심 2007. 3. 31. 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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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창작 강의 (5)   -이호철

 

계속 한미르 에서 가져옵니다.


이번강의 제목은 '항상 뭔가 쓰라!'네요


작가 메모 노트를 만든다

그 다음 둘째로 중요한 것은 무엇이냐? 쓰기에요. 쓰기. 더러 문장이 어떻게 하면 세련돼질 수 있습니까, 라는 질문을 받기도 합니다만, 중요한 것은 항상 뭘 쓴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우선 잡박하게 읽고, 세계문학 한번 쭉 훑는 것은 필수고, 그러다 보면 세계와 사람살이에 대한 안목이 저도 모르게 깊어지고, 나름대로 의문도 생길 겁니다. 문학뿐만 아니라, 철학, 사회과학, 뭐든지 읽으세요. 하다못해 매실주 담그는 법까지도 말입니다. 소설이라는 게 ‘사람 사는 이야기’니까 속속들이 다 알아야 되는 것 아닙니까. 읽은 것, 다 잊어도 좋습니다. 몸 어딘가에 녹아 들고 있을 테니까. 그러니까 작가 노트라는 것이 중요해요. 항상 버릇처럼 메모를 해야, 누구한테 뭘 듣고도 잊지 않지요. 작가는 우선 부지런해야 합니다. 뭘 항상 챙겨야 해요. 남하고 같이 있으면서도, 저 사람 웃잇빠디(윗니)가 어떻게 생겼고, 눈동자가 어떻고… 『부활』의 카츄사가 약간 사팔드기 아닙니까. 러시아 책의 삽화에서 보니까, 정말 예쁘더군요. 정말 잘 그렸더라고요. 그 삽화가는 소설가 파스테르나크의 아버지였는데요, 진짜 예술가였죠. 제가 아직도 그 삽화가 든 책은 가지고 있어요.
아무튼 그렇게 자기 안테나에 와 닿는 것을 한순간 한순간 죄다 챙겨야 된단 말이죠. 그러면 독서를 통해 챙기는 것, 살아가면서 실제경험으로 겪거나 주워 듣는 것, 뭐든 죄다 챙기는 겁니다.
예를 들면 여러분 영광굴비가 왜 맛있는 줄 아십니까? 지금 세상 떠났지만 경제학자 박현채 씨가 언젠가 산에 같이 가서 점심 먹으면서 그러더군요. “어이, 영광굴비 왜 맛있는지 알아?” 그리곤 잇대어서 한다는 소리가, 조기떼는 반드시 해류따라 늘 같은 곳을 다닌답니다. 그렇게 바닷속을, 깊이 가라앉았다가 떠 올랐다가 하며, 수직 곡선을 그리며 가는 모양이에요. 그런데 법성포 앞바다에 올 때가 가장 알이 밴 상태로 바다 표면으로 떠오를 때래요. 지금은 심해까지 저인망으로 훑어 내지만, 그때만 해도 깊이 들어간 것은 못 잡았지요. 떠올랐을 때 법성포 앞바다에서 잡고, 거기서 잡히지 않은 조기떼가 다시 심해로 들어가 알을 낳고, 그 다음에 떠오르는 것이 연평 앞바다에서 잡은 알 벤 조기를 말린 영광굴비가 맛있다, 거 그럴 듯라더라구요. 여럿 있는데 소설가 티 낸다고 거기서 메모하긴 그렇고 해서, 저거 기억해 둬야지 하다가, 지금도 이렇게 외우고 있는 거죠. 이런 것을 소설 쓰다가, 어느 대목에 가서, 딱 맞는 곳에서 써 먹어 보세요. 독자는 ‘야, 이 작가는 영광굴비 왜 맛있는 거, 이런 것까지 어떻게 알까?’하고 감탄, 삼탄하지요.
어쨌든 책을 좋아해야 됩니다. 미친 듯이 책을 끼고 사라야 합니다. 일고 나서 죄다 잊어버리더라도 끝내는 남습니다. 생각이 뭔가 남보다 깊어지지요. 널리 알아지고요. 이렇게 읽으면서 뭐든지 쓰는 것이 중요하지요.
둘째 이야기하다가 첫번째로 다시 되돌아갔는데, 둘째로 어서 돌아옵시다. 둘째는, 뭐든지 써라, 이겁니다. 가령 일기 쓰기도 중요합니다. 매일의 자기 삶을 챙기는 것이니까요. 자기가 하루 살았던 이야기, 만났던 사람들의 이야기. 대학 노트 한 페이지씩 매일 써 보세요. 정말 힘듭니다. 보통 정성, 보통 공들이는 것이 아니고는 그거 힘들어요.
1950년 겨울 열여덟 살 때 제가 월남해서 부두 노동을 하다가 초장동의 제면소에 들어갔어요. 국수 공장에서 제일 밑의 직공 노릇을 했지요. 새벽 두시에 일어나서 밀가루 반죽한 것, 납작하게 하는 기계를 돌리는데 이게 아주 무거워요. 그렇게 직공노릇을 했는데, 그러면서도 일기를 썼어요. 모당연필 하나 주워 가지고 초등학교 아이들 산수공책에다가 몇 월 며칠 흐림, 개임 써놓고, 오늘 밀가루 몇 포대분 했다, 그 다음에 그날그날 무슨 일이 있었다, 누가 찾아왔으면 찾아왔다, 어떤 때는 새벽 두시쯤 작업장 유리문을 드르륵 열고 저 아래 큰길을 내려다보면, 총무동 로터리가 저쪽에 있고 저 밑의 부두에서 울리는 웅웅하는 소리, 섬칫하게 무서운 때가 이써요. 그런 느낌도 적고, 또 한번은 신씨라고 직공 우두머ㅣ가 있었는데, 일본 징병 나갔다가 해방된 지 5년 된 때이니까 온전치는 않지만 일본말을 하고, 조금 칠푼이 같고, 주인에게는 아주 충성스런 그런 사람이에요. 새까맣게 때가 악죽악죽 낀 일본군 전투모를 늘 쓰고 있었지요. 오후 세시쯤 일이 끝나면 설거지 다 끝내고, 아침 두세시에 다시 일어나기 위해 일찍 잠들을 자는데, 그 사람이 문지방을 베고 담배를 든 채 잠이 들어 있더라구요. 내가 이것을, 그 모습을 자상히 일기에 썼어요. 이를테면 그 자는 모습을 ‘묘사’ 했지요. 담배가 타 들어가 손이 타겠는데, 그것을 빼자니, 곤히 자는 사람 깨울까 봐 그러지도 못하고, 청승맞고 처량하게 자는 그 모습을 한 페이지 분을 썼어요. 이것이 1951년이었어요.
그런데 1964년 어느 잡지에 연재를 하게 되는데, 13년 전 제면소 이야기를 써야겠다 했죠 뒤져 보니까 그때의 일기장이 산수공책으로 네댓 권이 나오더라구요. 그것이 그렇게 반갑더군요. 연필 글씨가 바래서 알아볼 수 없을 지경이었지만, 읽어 보니까 13년 전 그 당시가 생생하게 되살아나더군요. 그 분위기까지도. 지금 저의 대표적인 장편으로 되어 있습니다만, 『소시민』이라는 장편이 그 일기를 옆에 놓고 그 일기에 나오는 사람들을 모델로 한 거에요. 같은 동료 직공들이죠. 신씨, 김씨, 정씨는 원래 전씨였어요. 경산 사람이었지요. 남해 사람 곽씨도 곽씨 그대로, 박씨도 그대로. 이런 식으로 그때 내가 겪었던 인물들을 그대로 놓고, 그리고 물론 픽션을 가미했지요. 히도츠바시대학 나오고 좌익운동 하던 사람. 그런 식으로 꾸려 내니까 그냥 스적스적 써지더라구요. 내가 직접 경험한 거니까. 그때 만약 일기를 안 썼으면 그런 소설 쓸 수가 없었을지도 몰라요.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같은 것도 괴테 자신이 직접 겪은 이야기지요. 그런 여인이 실제 있었거든요. 이웃집 젊은 유부녀. 정말 마음속으로 좋아했던 그것이 소설로 나온 거지요. 소설이라는 것이 전혀 딴 무엇이라고 생각하면 안 돼요. 그 사람의 삶의 연장으로만 나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의 매일 매일 삶을 챙긴다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없어요. 그것을 도덕적으로 챙긴다는, 즉 옳고 그름을 따진다기보다는, 어쨌든 가장 솔직하게, 가장 정직하게 매일 일기부터 쓴다는 것은 작가로서의 가장 기본적인 여건을 다듬는 것이 되겠지요.
그뿐 아니라, 편지, 작가 노트 등의 메모, 어디를 간다. 어디에 있다, 어떤 일이 벌어진다 할 때마다, 그것을 주의깊게 보고, 적으세요. 일본 작가 고토 메이세이라고 일제 말에 나와 중학교 1학년 때 같은 반에서 공부한 친구인데, 일본에서 중진 작가로 활동하고 있지요. 그 친구가 한 번 한국에 왔는데, 아침에 호텔 로비에 갔더니 학교 다닐 때부터 그림 재주가 있던 그 친구가 북한산을 장난삼아 그리고 있더라구요. 그것은 그 사람으로서의 메모에요. 북한산의 이미지를 그렇게 가지고 가서 얼마 지난 후에 보게 되면, 동경에 앉아서 북한산 이미지가 생생하게 되살아나겠지요.
타고난 자질이라는 것이 있고, 또 그것이 가장 중요합니다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렇게 성실하게 매일매일의 자기 삶을 챙기는 것입니다. 문학에 대한 성실성, 문학에 대한 뜨거움, 정열, 이것이 자질이라는 것을 뒷받침해 줘요. 노력이 더 중요한 거죠.

일기는 문학의 자양분

아미엘은 19세기 후반 사람으로 죽은 뒤에 『일기』로써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스위스 사상가죠.
그의 일기는 어릴 때 고아가 되어 평생을 독신으로 살아낸 그가, 줄곧 고독했던 자신의 처리를 30여 년에 걸쳐 노트에다가 적어 둔 것들이었어요. 일컬어 『아미엘의 일기』. 작금에는 원체 책이 많이 쏟아져 나와 그 책이 별로 두드러져 보이지 않지만, 내가 한창 책을 읽어 내던 그 옛날에는 세계문학전집과 함께 거의 필독서 대열에 들었던 하나였지요. 그 책을 소개하는 서문에는 이런 구절도 있었던 것이 지금도 아슴아슴 생각납니다.

우리들의 마음을 고양시켜서, 적극적으로 인생에 마주서게 하는 용기를 주는 그런 책은 아니다. 하지만 그 책은 우리들의 자칫 들뜨려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조용조용히 우리 자신의 마음과 행실을 반성하게 하는 데는 도움이 된다.
그의 그 일기 속에는 지금 이 나이에도 화들짝 놀라게 만드는 다음과 같은 구절도 있어요.

사람이 산다는 것은 매일매일을 지극 정성으로 챙기면서 새로워지는 일이고, 또한 새삼새삼 자기 자신을 찾아내어 되챙겨 갖는 일이다. 일기는 고독한 사람의 말 상대, 위안해 주는 자, 그리고 의사이다.

잇대어서 그는 다음과 같이 씁니다.

이 매일매일의 독백은 기도의 한 형식, 저신과 그 원리의 담화, 하나님과의 대화이다. 이로써 우리는 혼돈으로부터 명철(明哲)로, 동요로부터 평정(平靜)으로, 산만으로부터 자기 통일로, 우유성(偶有性)으로부터 항구서으로, 특수화로부터 조화(調和)로 되돌아서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일기를 통해서 ‘우주적인 질서로 복귀하고’, 유한(有限)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다, 이 말입니다.
너무 지나치게 이야기가 거창해지지 않았는가 모르겠는데, 사실로 나는 문학수업을 하는 젊은 사람들에게 첫째로 권고하는 것이 이 ‘일기 쓰기’입니다. 문학 수업에 있어서도 이 이상 중요한 것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에요. 문학 수업에 있어서도 이 이상 중요한 것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에요. 왜 중요한가. 문학이란(문학뿐 아니라 예술 일반도) 구경적으로는 자기 토로에 다름아니잖아요. 다시 말해 쓸 것이 있어서 쓰는 것이지, 애당초에 ‘쓸 것’이 없는데 어거지로 쓸 수는 없는 것이잖아요. 요긴하게 ‘할 말’이 있을 때 열을 내어 화끈하게 말도 하듯이, 글도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늘 써 내야 하는 일을 업(業)으로 삼자면, 다른 길이 없죠. 늘 무언가 화끈하게 써 낼 일이 있어야 하지요. 그러자면 필수적으로, 매사에 들어서 자기대로의 독자적인 시각 하나를 가져야 해요. 태반의 남들 생각하는 것처럼 자기도 대강 그 정도 수준으로만 생각한대서야, 뭐 그다지나 확끈하게 써 낼 일이 있을 수가 있겠는가. 바로 이러하여서 매일매일 끝머리에서 그날 하루의 삶을 차곡차곡 돌아보고 챙긴다는 것, 글 쓰려고 하는 사람으로서 이 이상으로 중요한 것은 없는 겁니다.
실제로 일기를 써 본 사람이면 다 공감하겠지만 이게 보통 공력이 드는 것이 아니에요. 이렇게 말하는 나 자신도 새해가 시작될 때에는 일기를 쓰기로 마음 먹었다가도 한달을 못 가는 일이 비일비재하였죠.
그러나 월남 직후 스무 살 때,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제면소 직공으로 있으면서 초등학교 아이들의 산수공책에다 연필 꽁다리로 틈틈히 끄적거렸던 일기는 그 10여 년 뒤 64년에, 그때의 그 경험을 소재로 장편소설을 쓸 때는 그야말로 보물 단지로 둔갑을 하던 것이었습니다. 그날그날의 일들이며, 생각한 것들이며 하루하루의 일터 분위기며 한 사람 한 사람 인물들 데생이며 그 일기를 통해 금방 손에 잡히듯이 되살아오던 것이었어요.
이런 경우는 문학 하는 입장에서 일기가 가져다 준 실제면의 효용이겟지만, 그 시절 그 어려운 속에서도 주위의 눈치를 보며 일기를 써 낼 엄두를 냈다는 것 자체야말로, 당시로서는 보기 드문 문학적 정열이 아니었을까요. 그렇게 어렵사리 하루하루 공력을 들였던 것이 바로 10년 뒤에는 64년에, 그때의 그 경험을 소재로 장편소설을 쓸 때는 그야말로 보물 단지로 둔갑을 하던 것이었습니다. 그날그날의 일들이며, 생각한 것들이며 하루하루의 일터 분위기며 한 사람 한 사람 인물들 데생이며 그 일기를 통해 금방 손에 잡히듯이 되살아오던 것이었어요.
이런 경우는 문학하는 입장에서 일기가 가져다 준 실제면의 효용이겠지만, 그 시절 그 어려운 속에서도 주위의 눈치를 보며 일기를 써 낼 엄두를 냈다는 것 자체야말로, 당시로서는 보기 드문 문학적 정열이 아니었을까요. 그렇게 어렵사리 하루하루 공력을 들였던 것이 바로 10년 뒤에는 『소시민』이라는 소설로 둔갑이 되던 것이었어요.
실은 이렇게 하루하루 일기를 쓴다는 것 자체가 보통 공력이 드는 것이 아니지만, 쓰되, 어떤 식으로 쓰느냐 하는 것도 예사로운 문제가 아닙니다. 언젠가는, 문학 강좌 자리에서 한바탕 일기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는데, 청강생 중의 한사람이 자기는 20년 동안 일기를 써오고 있는데, 지금 선생님 얘기를 들어보니까 자기는 말짱 헛수고만 한 것 같다며, “저는 그날그날 책 같은 것을 읽고나서 좋은 구절들만 골라서 일기에다 썼거든요. 쇼펜하우어는 이렇게 말했다, 칸트는 죽을 때 유언을 이렇게 했다든지, 『노브이 밀』의 편집을 맡은 시인 트바로도프스키가 솔제니친의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를 투고 작품들 속에서 건져 올렸을 때 어찌어찌 했다는 둥, 말짱 이런 것만 썼으니, 헛수고만 한 것이 아닙니까”라고 푸념을 하더군요. 그래서 한바탕 웃었지만, 그렇게라도 쓰는 것은 안 쓰는 것보다는 낫죠.
요컨데 일기라는 것은 그날 그날 자신이 겪은 일, 부딪쳤던 일, 생각해 본 일들을 꼼꼼하게 쓸 때 훨씬 세월이 지난 뒤에 보물단지가 되는 것입니다. 어찌 문학 하는 사람뿐이겠어요. 전두환, 노태우 같은 분들도 그 자리에 있을 때 매일매일 성실하게 일기라도 썼던들, 오늘 저 지경까지는 안 됐을는지도 모르죠. 정말로 매일매일 그렇게 자기 반성과 자기 점검을 피 나게 했던들 말입니다. 그랬더면, 그것 자체가 그이들 나름의 ‘문학’이기도 했을 거예요. 그날그날 일기를 쓴다는 것은 그날그날의 자신을 챙긴다는 뜻이 아니겠어요. 문학을 한다, 서설을 쓰겠다, 하고 마음 먹는 경우에도 우선 이 이상, 중요한 일은 없을 거예요.

 

 

 

출처: - ☆ 시인의 향기 ☆-  http://club.iloveschool.co.kr/po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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