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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은글의 소설강좌 4

소설창작강의실

by 백연심 2006. 11. 30. 1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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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은글의 소설강좌 4

(끝)

 

소설 문학은 자기 발견의 거울이다.


―네 가지 인간형과 자기 발견

글. 조정래


1. 문학과 삶의 이해

문학은 인간의 사상과 정서를 언어로 형상화하여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예술이라고 한다. 문학에 대한 이와 같은 정의에서 우리는 문학의 특징을 몇 가지 추출할 수 있다.

첫째는 표현 대상으로서, 문학은 인간의 생각이나 느낌을 표현의 대상으로 삼는다. 사상과 정서라는 어휘는 상당히 포괄적인 의미를 담고 있어서 좀 더 따져보아야 할 점이 많지만, 일단 인간을 이루는 여러 요소 중 가장 기본적인 정신과 마음의 세계를 문학이 다룬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더 포괄적으로 말하자면, 문학은 인간의 삶을 다루는 양식이다.

둘째는 표현 수단으로서, 문학은 언어를 표현의 매체로 삼는다는 것이다. 이는 문학의 고유한 특성을 자아내는 아주 중요한 특성이다. 언어를 매체로 삼음으로써 문학은 역사성, 사회성, 서사성 등 고유한 성격을 지니게 되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구체성을 지닐 수 있다는 점이다. 다른 장르와 달리 문학은 인간의 삶을 다루되 구체적으로 다룰 수 있다.

셋째는 표현 방법으로서, 문학은 형상적으로 사유하고 형상적으로 미를 구현한다는 사실이다. 형상화한다는 말은 눈으로 보거나 지각할 수 없는 대상을 보거나 지각하도록 변형시켜 우리에게 전달한다는 뜻이다.

이와 같은 문학의 성격을 종합해보면, 문학은 인간의 삶에 관한 여러 문제를 다루되 구체적인 형상(모습)으로 보여주는 예술임을 알 수 있다. 문학 중에서도 특히 소설문학은 개인과 삶, 개인과 사회, 개인과 환경과의 관계를 아주 구체적으로 형상화하는 방법으로 인간의 삶이 지닌 문제들을 놓고 우리와 이야기를 나누는 장르이다. 우리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삶의 가치를 어디서 찾을 것인가, 자신의 자아를 어떤 모습으로 형성할 것인가 등등의 문제에 부닥치면서 살게 되는데, 평소에 잘 쓰여진 소설을 읽고 삶을 이해하는 폭을 넓혀 두면 그때마다 문제 해결에 큰 도움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2. 소설 속의 세 가지 인간형

우리는 소설을 읽을 때 인물을 가장 의식의 중심에 두게 된다. 즉 독서 과정에서 주인공의 처지와 상황에 동정을 느끼고 주인공의 입장을 옹호하면서 소설과 하나가 된다. 그렇게 주인공과 자신을 동일시함으로써 독자는 소설에 빠져들 수 있고, 나아가 소설의 세계를 이해하고 감동을 느끼게 된다. 왜냐하면 우리는 어떤 문제이든 자신과 관련이 된다고 여길 때 거기에 관심을 갖기 때문이다. 아무리 심각한 사회 문제라 하더라도 자신과 동떨어진 일은 심각하게 느끼지 않는 법이다. 소설을 비롯한 이야기가 들어 있는 예술양식에서 주인공이 꼭 필요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는 주인공을 자신과 암암리에 동일시함으로써 작품의 세계와 자신을 합일시키게 된다. 소설을 읽으면서 인물을 독서 의식의 중심에 두는 것도 바로 그러한 이유 때문이다.

잘 쓰여진 소설을 보면 그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이 지닌 이러저러한 측면들이 우리 자신의 현실적 여러 모습과 부합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소설의 인물은 우리 자신의 다양한 삶을 압축적으로 재현하면서, 우리가 살면서 겪는 여러 문제들을 환기시켜 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소설의 인물을 분류하고 분석해보면 우리의 현실과 우리가 살아가는 방법을 객관적으로 정리해 볼 수도 있다.

소설사를 정리해보면, 소설의 등장인물을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 욕망적 존재로 활동하는 인간형, 둘째, 감정적 존재로 그려지는 인간형, 셋째, 사상적 존재로 부각된 인간형이다.

소설은 기본적으로 욕망의 문학이다. 소설에는 사건이 있어야 하는데, 인간의 욕망이 분출해내는 갈등을 사건의 핵으로 삼는 것이 보통이기 때문이다. 특히 자본주의의 산물이라 할 현대소설은 욕망의 문제를 가장 중요한 창작 재료로 삼는다. 그러므로 욕망적 존재인 인간형은 현대소설에서 가장 많이 찾아볼 수 있는 유형이다. 이 사실은 우리가 현실적 삶에서 욕망을 기본적인 조건으로 삼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스땅딸이 쓴 프랑스 근대소설인 [적과 흑]에는 소렐이라는 청년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데, 귀족 출신이 아닌 이 인물은 부패한 귀족 중심 사회를 개혁하려는 목표와 함께 상류층에 진입하려는 욕망을 갖는다. 그러나 일단 상류층에 들어가겠다는 욕망에 사로잡히자 자신의 원대한 포부는 잊어버리고, 귀족 유부녀에게 접근하거나 귀족의 딸을 유혹하는 등 반 윤리적인 길을 걷게 된다. 이런 인물을 통하여 우리는 무조건적인 욕망이 얼마나 인간의 눈을 멀게 하는가를 볼 수 있다. 그러고 보면 애초에 가졌던 이 청년의 목표는 자신의 내면 속에서 진실 되게 추구한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올바른 목표라기 보다는 욕심이었다.

이광수가 쓴 소설 [무정]의 주인공 이형식도 관념적인 영웅 의식을 지녔다는 점에서 이와 유사하다. 이형식은 스스로 민족을 개조하고 살기 좋은 조국을 만들겠다는 목표를 가진다. 그러나 작품 안에서 이형식의 그러한 자기 목표가 얼마나 자신의 성찰을 거친 것인지 알 수 없다. 그런 대목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민족을 개혁하려는 의욕은 강한데, 왜, 어떤 방향으로 그 길을 가야할 지를 보여주지 못한다. 따라서 이형식은 자신의 능력이나 한계를 알지도 못한 채 욕심으로 그 임무를 도맡으려 한다. 우리 민족의 현실에 대한 진단과 처방을 생각해보지도 않은 채 비판 없이 서구적 생활로의 변혁을 이상적인 것으로 여기고 만 것이다. 대부분의 소설은 욕망적 인간형을 잘 그리고 있고, 또 이러한 인간형을 가장 문제의 핵심에 둔다. 우리는 이러한 소설을 읽으면서 청년의 단계에서 자기의 가야할 방향을 어떻게 정할 것인가를 배울 수 있다. 적어도 현실은 욕망의 노예가 되도록 우리를 몰지만 욕망적 인간형이 그 길을 찾을 수 없음은 분명하다.

두 번째로 소설에서 찾아볼 수 있는 인간의 유형은 감정적 인간형이다. 이런 인물은 어떤 선택이나 행동을 주로 감정적 요인과 감각적 차원에서 결정한다. 대체로 순수한 사랑을 그린 이야기들에서 인물들이 사랑을 선택하는 요인은 그냥 상대방이 좋아서에 있다. 바로 이렇게 자기 감정에 충실한 인물들을 감정적 인물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유형은 여성인물에게서 더 많이 찾을 수 있다.

채만식의 장편 소설 [탁류]는 초봉이라는 한 순수한 여성이 세상의 풍파를 겪어가는 과정을 그렸는데, 그 여주인공 초봉은 자신의 삶에서 자기 의지나 욕망, 혹은 자기 사상을 드러내는 경우가 거의 없다. 여자 주인공을 이렇게 무소견한 인물로 설정한 데에서 채만식의 여성관이 조금은 편협하다고 비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은 감정에 더 무게를 두고 사는 삶의 방식을 작가가 포착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초봉은 아주 청초하고 때묻지 않은 젊은 여성이지만, 자기의 배우자를 정함에도 자기의 이익이나 자기의 생각으로 결정하지 않고 아버지에 대한 자기 감정과 상대에 대한 감각에 의지하여 선택한다. 그 결과는 매우 불행한 삶으로 귀착한다. 또, 초봉은 자신을 괴롭히는 꼽추를 살해하여 결국 형무소에 투옥하게 되는데, 이 살해 행위도 앞뒤를 따져보는 사상적 차원의 결행이나 이해타산을 거친 욕망적 행위가 아니라 우발적으로 저지르는 감정의 소산이다.

이처럼 감정적 인물은 욕망의 인물형 보다는 멋진 측면이 있고, 우리의 서정에도 잘 부합하는 맛이 있지만, 실제 삶에서는 매우 불안하고 불균형한 생활을 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감각이 살아 있으면 그 삶의 방향이 나름대로 보이겠지만, 감정이나 감각이란 잘못하면 찰라적이고 우발적인 성격을 갖게 되기도 쉽기 때문이다.

세 번째의 유형은 사상적 인간이다. 이 인간형은 말 그대로 생각의 차원에서 살아가고 자기 일을 선택하며, 경우에 따라서는 특정한 사상을 대표하는 인물이 되기도 한다. 이런 인물을 설정하면 자칫 관념적이고 지루한 소설이 될 가능성도 많지만, 우리의 삶이란 것이 결국은 자기의 생각에 의해 최종적인 결정을 하며 영위하는 것이어서 이런 인물을 소설에서는 아주 흔하게 볼 수 있다.

최인훈의 [광장]이란 소설에서는 남과 북으로 나뉘어지는 우리 조국에서 남도 북도 선택하지 못하는 한 젊은 지성인을 만날 수 있다. 주인공 명준은 지식인 청년으로서 남의 체제에서도 부조리를 발견하여 선택하지 못하고 자기 발로 올라간 북에서도 삶의 바른 환경을 찾지 못한다. 결국 주인공은 세 삼의 국가를 선택하지만, 중립국으로 가는 배 위에서 자살을 하고 만다. 이런 인물은 사상적 차원에서 자기 공간을 찾는다. 이 작품의 주인공이 자기 삶을 정착할 공간을 마련하지 못하고 자살에 이르는 것은 생각의 힘을 잘못 사용하였기 때문이다. 자기의 내부에서 자기를 발견하고 그 후에 세계를 찾아야 하는데, 자기의 중심을 미처 확립하지도 못한 상태에서 마땅한 세계를 밖에서 찾으려 하니 삶의 이유와 가치를 발견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우리는 모두 생각하면서 산다. 인간으로서 존재하는 증거가 바로 생각하는 힘을 가졌다는 것임을 데까르트는 일찍이 발견하였다. 그러나 실제로 우리가 살아가면서 생각의 바른 힘을 깨닫기는 어렵다. 그렇다고 해서 생각없이 사는 것은 인간다운 삶을 포기하는 것과 같다. 우리는 소설을 통하여, 사상의 힘을 스스로 자기의 내면에 받아들이면서 삶의 가치를 깊이 있게 발굴하려는 이러한 인간형을 발견할 수도 있다.

3. 의지적 인간형과 실천하는 자아

지금까지 우리는 소설에서 발견할 수 있는 세 가지 인간형을 간추려 보았다. 그러나 소설 작품 하나에 세 가지 인간형 중 하나만이 나타나는 것은 아니며, 또 인물 하나가 다양한 측면을 드러낼 수도 있다. 대체로 잘 쓰여진 소설은 욕망적 인간에서 감정적 인간, 혹은 사상적 인간으로 발전하는 과정을 그려낸다.

염상섭의 [만세전]은 일본에 유학한 조선 청년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작품인데, 이 주인공이 조국의 현실을 깨우치고 자신이 할 일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려서 이야기한다. 주인공 이인화는 처음에는 일본에서 술집 여종업원과 연애나 하고 학업에는 충실하지 않은 욕망적 인물로 그려진다. 그러나 인화가 조국으로 돌아오는 여행을 하면서 조국의 식민지 현실이 어떤 것인지 깨달아 간다. 도중에서는 누군가 감시하는 듯한 어떤 불안한 감각을 중심으로 내세워 감정적 인간으로 그려지기도 하지만, 결국에는 조국의 실정이 묘지와 같음을 알게 되고 일본과 한국의 관계가 어떠해야 하고 조국을 이렇게 황폐화시키는 원인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게 된다. 이처럼 욕망적 인간에서 감정적 인간, 그리고 사상적 인간으로 변신하는 과정을 우리는 [만세전]에서 볼 수 있다.

사실은 우리 인간은 이 세 가지 요인을 다 가지고 사는데 소설은 그 중 한 가지를 강조하여 인물을 그려내는 것일 뿐이다. 우리는 이 셋 중 어느 하나에만 의존하면 온전하게 살 수 없다. 이 셋을 다 아우르면서 극복할 수 있는 지혜를 배워가야 한다. 그런데 이 세 가지 인간형에 한 가지를 더 추가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의지적 인간형이다.

의지적 인간형은 자신의 목표를 바르게 세우고 그것을 달성해나가기 위하여 의지를 가지는 인물이다. 이런 인물의 의지는 대체로 행동의 실천으로 그려지게 마련이다. 심훈의 [상록수]는 비록 계몽적 의도가 노출되어 있어 비판을 받기도 하지만 자신의 할 일을 바르게 세우고 그것을 실현하려는 의지적 젊은이를 잘 그려내고 있다. 박동혁과 채영신이라는 두 청년 대학생은 자신의 길을 농촌에 대한 봉사에 두고 그 길을 실천한다. 그 실천이 바람직한 것임은, 첫째, 박동혁이 주도하는 경제 운동과 채영신이 헌신하는 문화 운동이라는 그 방향이 농촌을 참되게 일으켜 세울 수 있도록 잡혀있다는 점과 둘째, 그 방향을 관념이 아니라 구체적인 행동으로 확인한다는 점에서 알 수 있다.

의지적 인간형은 욕망을 다스리고 감정을 지배하며 사상을 내면화할 수 있는 여력을 지닐 수 있다. 무엇보다 이제 새 길을 개척하는 청년 여러분들에게는 이러한 인물형의 가치를 아는 것이 중요하며, 소설을 통하여 이런 인물을 발견하고 다시 자기 자신의 의지를 세우고 실천하는 힘이 필요하다. 그러나 거기에 앞서서 자신은 어떤 인간형에 속하는지 자신을 먼저 탐구하고 발견하는 과정이 있어야 한다. 그런 다음 자기의 길을 정하고 의지를 바르게 세우는 방법을 소설을 통하여 배울 수 있을 것이다.

 

 


글. 조정래(드림위즈 문학동호회 시샵, 서경대 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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