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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석구의 시작법 연재 33 -표현기교(상징)

시창작강의실

by 백연심 2006. 11. 20.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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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석구 시작법 연재33
 

'자, 떠납시다, 시의 여행을''

2001-08-08  제33강 


 * 상징
 당신이 만나는 대상과 마음속의 생각을 결합시켜 봅시다. 빗대어 보는 것이 아니라 두 대상을 하나로 결합시키는 것입니다. 산과 여인을, 꽃과 희망을, 바위와 침묵을 결합시켜 봅시다. 이처럼 서로 다른 대상을 결합하여 본래의 고유한 의미 이외에 다른 의미를 갖게 하는 표현기교가 상징입니다.

 공식을 만들어 봅시다. '산'을 A, '여인'을 B라고 할 때, 은유는 A=B이지만, 상징은 A+B=A이며 B가 되는 것입니다. 은유에서는 '산'이 곧 '여인'입니다. 그러나 상징에서는 '산''여인'이고, '여인'이 곧 '산'이 됩니다.

 그런데 상징에서 추상적인 말과 구체적인 말이 결합할 때에는 구체적인 말을 시어로 선택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예를 들면 '바위'와 '침묵'이 결합할 때, '바위'가 구체적이므로 '바위'를 시어로 선택해야 합니다. 그리고 구체적인 말과 구체적인 말이 결합할 때는 무정어가 시어로 선택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예를 들면 '산'과 '여인'이 결합할 때, '산'을 선택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래야 함축미가 있습니다.

 상징은 유추해 내는 방식이 직유, 은유와 같지만 원관념을 숨기고 보조관념만 남기는 표현기교입니다. 그런데 상징은 보조관념의 의미와 숨은 원관념의 의미를 함께 나타냅니다. 쉽게 말한다면 보조관념의 의미로 시어를 이해해도 되고, 원관념의 의미로 시어를 이해해도 된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시는 숨은 의미, 즉 원관념을  찾아 이해하면 더욱 깊은 맛이 우러나옵니다. 그리고 두 대상이 결합할 때, 결합된 두 의미 이상의 새로운 의미가 만들어지기도 합니다.

 상징은 암시성과 다의성을 본질로 합니다. 암시성은 원관념이 숨기 때문에 나타나는 성질이고, 다의성은 숨은 원관념의 의미가 다양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성질입니다. 이것이 대유와 다른 점입니다. 대유는 원관념이 하나이지만 상징은 둘 이상입니다.

 상징은 직유, 은유와는 달리 유사성을 바탕으로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하나의 시어가 상징성을 가지게 되면 다른 시어들도 그 영향을 받아 상징화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 산을 의인화시켜 봅시다. 그러면 산은 무엇이 될까요? 답은 당신 안에 있습니다. 지시적 의미의 산을 생각하면서 산에게 한 마디 건네어 보십시오.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저놈의 산 불끈 안아다가
 동해 바다에 풍덩 던져 놓고
 온종일 그 위에 퍼대고 앉아
 용이나 몇 마리 낚을 거나.
    - 산. 25 -

 여기에서 '산''지시적 의미의 산''사랑하고 싶은 여인'을 함께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것이 상징입니다. 그렇다면, '용을 낚는다'는 말도 상징화되겠지요? 상징하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말하지 맙시다. 그래야, 더욱 은근해질 테니까. 그냥, 상상 속에 그냥 묻어 두기로 합시다. 이렇게 해서 시는 멋있고, 맛있는 글이 되는 것입니다.

 * '바위'가 산기슭에 있습니다. 그 모습이 무엇과 같습니까? 언제나 당하기만 하고서도 '침묵하는 민중'이 떠오르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가슴에 엉킨 말을 외쳐야 하겠지요? 그렇게 살아올 수밖에 없었던 당신의 삶을 되돌아보면서.

 구체적인 대상인 '바위'와 추상적인 개념인 '침묵하는 민중'을 결합시키면 상징이 됩니다.

 바위여, 너 말이 없어도
 눈사태로 숨이 진
 풀잎들의 이야기를 나는 듣는다.

 미친 바람에 싸리꽃이 털리던 날
 그 풀잎들이 다시 살아나
 밤 새워 울던 일을 나는 듣는다.

 그 울음이 강물이 되어
 고향을 떠나던 날
 너의 침묵 속에 가려진
 폭포 같은 그 울음을 나는 듣는다.

 바위여, 이제는 폐수가 되어
 청계천 추진 곳을 흘러가다가
 고향도 못 가고 이민도 못 떠나는
 우리들의 이야기를 나는 듣는다.
     -바위여-
 
 이 시는 많은 상징어가 사용된 시입니다. 상징화된 시어의 의미를 하나의 원관념으로 규정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지만 이해를 돕기 위해 풀이를 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물론 지시적 의미 그대로 이해해도 의미는 통합니다. 그러나 시는 숨겨진 의미를 찾아내는 데에 묘미가 있고, 그래야 깊은 맛이 우러나옵니다. 이 깊은 맛을 함축적 의미라고 합니다.

 '바위''침묵하는 민중'을 가리킨 것이며, '눈사태''광주에서 일어난 사건'을, '풀잎''억울하게 희생된 민중'을, '미친 바람''군부의 만행'을, '싸리꽃''서민들의 조그마한 소망''폐수''무기력하게 되어 버린 민중'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를 생각하며 다시 한 번 읽어 보십시오. 새로운 맛이 날 겁니다. 그리고 이 시는 읽는 사람에 따라 여러 가지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시의 다의성입니다.

 * '사람들이 길을 걸어가고 있습니다.' 이 말을 다시 한번 가슴으로 조용히 암송해 봅시다. 그리고 생각해 봅시다. '왜, 그렇게 걷는 것인가?'를. 생각이 떠오르지 않으면 다시 한번 더 외워 보십시오. 그러면 이 주는 의미가 새롭게 떠오를 것입니다. 새롭게 떠오르는 의미, 이것이 상징적 의미입니다.

 길을 걸어갑니다.
 그냥 그냥 걸어갑니다.
 어제 걷던 길을 오늘 걷고
 내일도 걸어야 하는
 길을 걸어갑니다.

 빨간불이 켜지면 서고
 파란불이 켜지면 길을 건너
 모퉁이 모퉁이를 돌아
 아무리 걸어도 끝이 없는 길을
 수많은 발들이 걸어갑니다.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무작정 무작정 걸어갑니다.

 해마다 갈아 심어
 메말라 가는 가로수 밑을
 남의 땅을 걷는 이방인처럼
 목이 없는 사람들이
 남의 걸음으로 걸어갑니다.
      - 길 -

 '길''지시적 의미의 길' 이외에도 '삶의 길' 등 독자의 처지에 따라 여러 의미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 시는 같은 시구의 반복으로써 상징적 의미를 더욱 강화시키고 있습니다.

 * 새들이 알을 낳았습니다. 그 알이 새가 되어 하늘을 납니다. 우리는 그 새를 보고 하늘을 날고 싶다는 생각을 합니다. 왜, 우리는 하늘을 날고 싶을까요? 그렇다면 '알', '새', '하늘'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알이 되고 싶다.
 그냥, 생긴 대로 구르다가
 어느 가난한 들녘에서
 몸을 데우다
 언젠가는 새가 되는
 알이 되고 싶다.

 침묵의 두꺼운 껍질을 깨고
 아무 곳에나 쏘다니는
 말씀이 되고 싶다.

 먼 훗날, 아픔으로
 다시 뭉친다 해도
 푸른 하늘을 겁없이 내달리는
 건방진 바람이 되고 싶다.
    - 돌의 일기. 2 -

 '알''희망, 소망'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의 시어가 상징성을 가지면 다른 시어도 그 영향을 받아 상징화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 시에서 '새'는 무엇을 상징한 걸까요? 그것은 '자유'일 수도 있고, '평화'일 수도 있습니다. '하늘'은 '자유와 평화를 누릴 수 있는 공간'이 되겠지요? 그렇다면 하늘을 날고 싶은 이유를 알 수 있겠지요?

 * 징이 울리고 있습니다. 동네 사람들이 그 소리를 듣고 하얗게 모여들던 그 옛날의 모습이 떠오르지 않습니까? 왜, 징이 울리면 사람들이 모일까요? 생각해 봅시다. '징' 속에 숨어 있는 우리들의 마음을.
 
 지금도 징이 울린다.
 대숲에서 불던 바람이
 능그리 소리로 남아 오늘을 운다.

 녹두꽃 녹두꽃 피어나는 골에서
 맨몸으로 뒹굴던 함성은
 어디로 갔는가?

 가자, 징을 울리며
 은어떼 사라진 침묵의 강 위로
 배를 띄우자.

 또다시 어느 형틀에 묶이더라도
 징을 울리며 징을 울리며
 바다로 가자.

 메아리도 없이 사라진 노래를 찾아
 다시는 못 돌아올 배를 띄우자.
 배를 띄우자.
    - 배를 띄우자 -

 '징''민중의 함성'을 상징하고 있음을 2연의 내용을 미루어 보면 알 수가 있습니다. '녹두꽃'이 가지는 역사적 의미도 상징화를 더욱 강화시켜 줍니다. '녹두꽃'은 갑오농민운동 때의 '민중들의 소망'으로 보면 어떨까요? 이와 같이 상징은 여러 시어들의 긴밀한 관계 속에서 이루어집니다. 그 이외에도 여러 시어들이 상징적 의미를 가지겠지요?

 * 풀잎에 이슬이 맺혀 있습니다. 그럼, 풀잎을 의인화시켜 봅시다. 풀잎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울고 있지요? 왜, 울고 있습니까? '풀잎'이 무엇을 상징하기에 울고 있다고 생각했습니까? 이렇게 어떤 대상에 새로운 의미를 결합하면 상징이 됩니다. 다음 시를 감상해 봅시다.
  
 주여, 당신의 말씀이
 아무리 자애로워도
 나비가 날지 않는
 빈 뜰이 있습니다.

 때로는 이슬비로
 때로는 소낙비로
 밤마다 새로 우는
 풀잎들이 있습니다.

 천년을 심어 온 씨앗들
 트이지 않는
 비인 자리 자리마다에서
 당신의 자애로운 말씀에도
 제 뜻을 시러 펴지 못하는
 어린 풀잎이 있습니다.

 모든 꽃들이
 나비로 춤추는 밤
 그리움의 속살이
 갈기갈기 찢어진 채로
 보름날 쥐불로 몽땅 태워도
 봄이면 다시 돋아나는
 우리들의 소망이 있습니다.
     - 훈민정음 -

 이 시에서 '주''절대자 아니면 권력자'. '나비''자유, 평화, 기쁨' 중에서 어떤 것을 상징한다고 해도 좋습니다. 그렇다면 '풀잎'은 '소외된 민중'이 되겠지요. '씨앗''자유 평화, 기쁨을 바라는 소망'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겠지요?

 * 눈 속에 동백꽃이 피어 있습니다. 동백꽃은 무엇 때문에 눈 속에서 피어난 것일까요? '동백꽃'에다 당신의 가슴속의 말을 결합시켜 봅시다.

 이 많은 등불을 밝혀 놓고
 누구를 기다리는 것이냐.

 시린 눈밭에 발돋움하고 서서
 몇 밤을 그렇게 새운 것이냐.

 나, 네 가슴속의 바람이 되어
 차리리 빈 벌판을 달리고 싶은데

 언제나 상처뿐인 봄을
 어쩌자고 애태워 서두르느냐.
     - 동백 -

 동백이라는 제목의 시입니다. '등불'의 원관념은 '동백'입니다. '동백=등불'. 여기까지는 은유입니다. '등불'은 다시 보조 관념이 되고, '소망'이 원관념이 되었습니다.   

 다시 정리해 보면, '동백''등불'로 은유화 되었다가 다시 '소망'으로 상징화되었습니다. '등불''소망'을 의미한다면, '시린 눈밭''시련과 고난의 공간''몇 밤''소망이 이루어지기를 기다린 세월'을, '바람''현실에 적응하지 못하고 떠도는 존재''봄''소망의 세계'를 상징한다고 볼 수 있겠지요?

 sukgu@hitel.net


 

 출처:http://myhome.shinbiro.com/~sukg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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