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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석구의 시작법 연재 34 -표현기교(반어, 역설) /끝

시창작강의실

by 백연심 2006. 11. 20.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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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석구 시작법 연재
 

'자, 떠납시다, 시의 여행을''

2001-08-09  제34강 


 *. 반어
 대상에 대한 느낌과 생각을 나타내고자 하는 의도와 반대로 표현하는 기교입니다. 이 기교는 비판의식을 드러내는데는 효과적인 방법입니다.

다음 시를 봅시다.

 형님의 그림 속에는
 금수강산 같은 미인이 살고 있어요.

 호랑이 발톱 같은 붓끝에다가
 형님의 마음을 듬뿍 묻혀
 성형 수술하듯 빚어 놓은 그림 속에는
 춘향이 심청이 논개 황진이
 양귀비 클레오파트라 마릴린 몬로
 태백산맥에서 훔쳐본 외서댁까지
 하나로 똘똘 뭉쳐
 일곱 빛깔로 웃고 있군요.

 밤마다 금수강산을 유람하는
 형님의 육자배기에
 복숭아꽃 흐느러지게 피고 있군요.

 산등성이를 넘어오는
 그 여인의 거친 숨소리
 우리의 꿈속에까지 넘치는군요.

 도대체가 알 수 없는 그림 앞에서
 헛심만 쓰는 우리들의 아픔이
 지리산에 숨어 피는 엉겅퀴꽃처럼
 밤낮으로 피를 토하고 있군요.
   - 형님의 그림 속에는 -

 '금수강산 같은 미인'은 미인이 아니라 '괴물'입니다.'형님의 욕심이 빚어 놓은 괴물'. 그것을 시인은 미인이라고 진술하여 반어적으로 강하게 비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겉과 속이 다른 사람을 비난합니다. 그러나 겉과 속이 같으면 살아갈 수 없는 것이 이 세상입니다. 특히 힘없는 사람들은 겉과 속이 같아서는 하루도 살아남기가 어려운 것이 이 세상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마음에 없는 말을 하며 빈정거리며 사는 때가 있습니다. 이 마음에 없는 말이 반어입니다. 그러기에 거기에 강한 비판과 저항이 숨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먼 훗날
 아픔으로 다시 뭉친다 해도
 푸른 하늘을 겁 없이 내달리는
 건방진 바람이 되고 싶다.
    - 돌의 일기. 2에서 -

 시인은 굳어져만 가는 기존의 질서에 도전하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건방진 바람', 그것은 건방진 바람이 아니라 '기존 질서의 구속에서 자유롭고자 하는 마음'을 반어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한 가마니 주어 버리고
 부처 됐단다.

 백 가마니 채워
 잘 먹고 잘 살라고
 빼앗기듯 털어 주고
 부처 됐단다.

 마음도 그렇게 털어 버리고
 이 집 저 집 기웃거리는
 부처 됐단다.
 
  -한 가마니 줘 버리고-

 '부처''거지'를 가리킵니다. 이 시는 '거지''부처'로 미화시켰다기보다는 반어법을 사용하여 '모든 것을 다 빼앗긴 자의 아픔'을 읊었습니다. 그래서 '잘 먹고 살라'고 외칩니다. 이 말도 역시 반어입니다.  

 가야산은 나옹이
 사람들을 속이던 곳
 나도 그놈에게 속아
 해지는 줄 모르고
 길을 잃었네.
  - 가야산 -

 위시의 서정적 자아는 나옹을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반어적으로 '예찬'하고 있습니다. 시인은 나옹을 선망하고 있습니다.
 위의 시들은 겉과 속이 다른 마음을 드러냈습니다. 그러나 지향하는 것은 비겁이 아니라 진실입니다.

 * 역설
 역설은 표면적으로는 모순이 되는 것 같지만, 그 진술 속에 보다 강한 진실이 숨겨 있는 표현 기교입니다. 이 표현법은 독자에게 경이로움과 신선함을 주어 감동을 불러일으켜 줍니다.

 형님, 왜 이러십니까.
 무엇 때문에 알 수 없는 그림 그려 놓고
 그림 속의 떡만 먹어라 하십니까.

 모두가 제 그림자 끌며 사는 것인데
 어쩌자고 내 꿈속까지 찾아와서
 당신의 노래만 불러라 하십니까.

 꽁보리밥을 먹어도 금똥만 싼다는 형님
 당신만 살지 말고 나도 좀 삽시다.

 당신은 당신 눈으로 당신의 세상을 보고
 나는 나의 눈으로 나의 세상을 보며
 제 노래 부르며 살다 갑시다.

 금똥을 싸든, 보리똥을 싸든
 모두가 제 그림 그리며 사는 것이
 인생 아닙니까.
    - 형님, 왜 이러십니까 -

 '형님'은 어떤 형님일까요? 3연의 '꽁보리밥을 먹어도 금똥만 싼다는 형님'. 금밥을 먹으면 금똥을 싸고, 보리밥을 먹으면 보리똥을 싸야 하는 것이 바른 이치. 그런데 시인은 억지 소리'꽁보리밥'을 먹어도 '금똥만 싼다'고 표현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억지 소리가 아니라 형님을 강하게 비난하고 있는 말입니다. 이것이 역설. 비논리적인 진술로 보다 강한 의미를 부여하는 표현기교입니다.

 내가 거짓말을 하는 것은
 거짓말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눈동자를 보았기 때문이다.

 나이를 먹는 만큼 타락하지 못하고
 날이 갈수록 맑아만 가는
 그들의 눈동자에 비치는
 무너져 버린 나를 보았기 때문이다.

 거짓말을 하지 못하기에
 거짓말에 시달려야 하는
 그들만의 아픔

 날마다 메말라 가는 그들 앞에 서면
 나의 거짓말을 감추기 위해
 나를 속여야 하는
 내가 슬프기 때문이다.
   - 내가 거짓말을 하는 것은 -

 처음부터 논리가 성립되지 않습니다. 거짓말을 하는 이유가 '거짓말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눈동자를 보았기 때문'이라는 말은 억지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표현함으로써 거짓말을 하고 살아가는 자신에 대한 슬픔 , 분노, 아픔을 역설적으로 드러낸 것입니다.

우리는 억지소리를 들었을 때, 기가 막힌다고 합니다. 이 기가 막힌 마음을 표현하는데는 역설이 좋습니다.      

 길은 수없이 많았다.
 그러나 갈 곳이 없었다.

 찾으면 찾을수록 더욱 엉키는 길목에서
 나는 거미줄에 잡힌 잠자리

 몸부림을 치다 지쳐 버렸다.

 눈을 감았다.

 하늘은 온통 먹구름으로 가리어지고
 나는 거대한 거미에게
 조금씩 먹히고 있었다.

 이젠 내가 없었다.
 아무리 찾아도 내가 없었다.

 그러다가 어디선가
 또 하나의 내가 태어나고 있었다.

 저 먼 보물섬
 절름발이 선장의 어깨 위에서
 앵무새로 태어나는 내가 있었다.

 나를 죽이고 태어나는 내가 있었다.
     - 자화상 -

 '찾으면 찾을수록 더욱 엉키는 길목'은 논리적으로 모순이 됩니다. 그러나 자아의 참모습을 찾고자 하나 자꾸만 어그러지는 상황을 엿보게 합니다.

'나를 죽이고 태어나는 나'도 이치에 맞지 않는 말입니다. 그러나 이 말도 자기 참모습을 잃어버린 자아의 슬픔을 역설적으로 드러내놓은 것입니다. 이렇게 역설은 논리적으로 모순이 되는 표현이지만 그 속에 더욱 절실한 진실이 숨어져 있습니다.

 네가 울던 곳에 앉아
 너의 울음을 울어 본다.

 바위는 여전히 말이 없고
 거품을 물고 흐르는 강물들

 친구야, 강물은
 정말로 바다로 가는 것이냐.

 강둑 따라 너의 길을 더듬어 가면
 온몸에 박혀 오는 도둑놈 가시

 무더기로 피어나는 들꽃을
 가슴에 담을 수가 없구나.

 너는 가고 나는 남았는데
 너는 있고 나는 없어
 하늘을 차마 볼 수가 없구나.
    - 강가에서 -

 여기에서 '너''진실하게 살다간 사람', '나''거짓되게 아직도 살아 남은 사람'을 뜻합니다. 그래서 '너는 가고 나는 남았는데/ 너는 있고 나는 없어'라는 역설이 빗어지는 것이지요.
   
 그 이외에도 표현기교에는 이외에 강조법과 변화법이 있습니다. 그런데 표현기교에서는 비유, 상징, 반어, 역설이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강조법과 변화법은 그것을 도와주는 역할을 합니다. 이것들은 여행 중 필요하다고 생각될 때마다 설명하기로 하겠습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표현기교를 대략적으로 살펴봤습니다. 그러나 표현기교에 너무 얽매일 필요는 없습니다. 지나치게 이론에 얽매이면 오히려 시를 쓰는데 장애가 되기 때문입니다.
 
* 끝을 맺으며

 '저 술병 속에는 무엇이 들어 있습니까?'

 당신이 어린이가 되어 당신에게 물어 보십시오.

 '저 술병에는 무엇이 들어 있니?'
 '노래.'
 '왜?'
 '아빠가 마시면 노래를 부르니까.'

 정리해 봅시다.

 저 병 속에는
 노래가 들어 있나 봐.

 아빠가 마시면
 노래를 부르는 걸 보니.

 이제 술 한 잔 마시고 노래를 부릅시다.  
 

 이제 나의 여행 안내를 마치려 합니다. 지금까지의 여행은 안내자를 따라 가는 지도 속의 여행이었을 뿐입니다. 지금부터는 당신만의 여행입니다. 지금까지 익힌 시작 과정에서 벗어나, 당신 마음대로 떠나고, 당신 마음대로 돌아올 수 있는 시의 여행입니다. 진정한 여행은 혼자 가는 것입니다.
 당신만의 여행은 말과 글로 설명할 수 없는 미묘한 마음의 여행이 될 것입니다. 그것은 시를 써 가면서 당신은 언어의 미묘한 맛을 익히게 되고, 수많은 상상의 세계를 탐험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사실, 시는 설명에 의해 아는 것이 아니라 느끼는 것입니다.
        
 바람 속에 앉아서
 바람을 부르는 것이 마음입니다.

 봄보다 먼저 일어나서
 봄을 부르는 것이 마음입니다.

 언제나 한 걸음 앞서 가지만
 언제나 뒤쳐져서 우는 것이
 우리들의 마음입니다.
   - 마음 -

 서둘러서는 안됩니다. 써지지 않으면 쓰지 마십시오. 그냥 책을 읽거나 혼자 걸어 보십시오. 혼자만의 여행을 떠나도 좋습니다. 그러다 보면 마음이 비고 새로운 세계가 당신 앞에 펼쳐질 것입니다. 그 속에서 시의 씨앗이 싹을 틔울 것입니다.

 자, 이제 떠나십시오, 당신만의 시를 찾아 . 
 

 sukgu@hitel.net


 

 출처:http://myhome.shinbiro.com/~sukg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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