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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 창작교실 | 좋은 동시 작품 분석과 감상

아동문학창작강의실

by 백연심 2006. 11. 16.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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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화작가 김문기 강의 진행자 : 김문기    

 

우리 분교 마을엔
산 너머 너머 언니가
가는 체로 쳐 보낸
고운 바람

사택 울타리엔
노란 봄
먼 산엔
붉은 봄
하늘엔
뻐꾹 봄
손등엔
쓰린 봄

내 마음엔
산 너머 너머 언니가
튼 손 씻어주던
아직도 작년 봄.

――――― 윤한로, 『분교 마을의 봄』

위작품은 1981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동시 부문 당선작이며 가장 동시답고 가장 뛰어난 미적 감각을 보여준 작품이랄 수 있습니다. 그럼 작품을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가는 체로 쳐 보낸 / 고운 바람

참 좋습니다. 산 너머에서 바람을 가는 체로 쳐 보냈다는 표현으로, 분교 마을에 부는 바람의 고운 결을 잘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냥 따뜻한 바람이나 살랑 바람 등이 아니고 결 고운 바람입니다. 가는 체의 구멍을 통과한 바람입니다. 산뜻할 뿐더러 언어의 묘미가 빛나는 구절입니다. 그 다음 2연은 또 어떤가요.

사택 울타리엔 / 노란 봄
먼 산엔 / 붉은 봄
하늘엔 / 뻐꾹 봄

이 부분을 산문으로 풀어보기로 하겠습니다. 사택 울타리엔 개나리꽃이 피고, 먼 산엔 진달래꽃이 피고, 하늘엔 뻐꾸기가 나는 풍경일 것입니다. 그런 풍경을 위와 같이 동시로 형상화하면서 더불어 ‘봄’을 압운으로 한 리듬식 기법을 사용했는데 자못 빼어난 기량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것에 연이어,

손등엔 / 쓰린 봄

이 부분을 눈여겨보세요. 윤한로 시인이 의도한대로 ―산 너머 너머 언니를 그리워하는 마음 등― 이 함축미 있는 시어로 선명하게 드러나 있습니다.

내 마음엔
산 너머 너머 언니가
튼 손 씻어주던
아직도 작년 봄.

분교 마을의 아름다움과 그 곳에 사는 아이들의 외로워하는 감정을 절묘하게 삼투시킨 위 작품을 보면서, 윤한로 시인의 데뷰작이긴 하지만, 현대 창작 동시가 거둔 가장 큰 성과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그럼 다음의 작품을 보세요.

아이들이 굴렁쇠를 굴린다.
바람을 굴린다.

길이 달린다.
아이들이 따라 뜀박질한다.

굴렁쇠에 감겨
굴러가는 햇빛

굴렁쇠에 감겨
굴러가는 웃음소리

발목에 노을을 적시며
돌아간 아이들의
꿈속에서도
굴렁쇠 굴러간다.

――――― 이미애, 『굴렁쇠』

위작품은 1987년도 조선일보 신춘문예 동시 부문 당선작입니다. 묘사를 특별히 활용하지는 않았지만, 굴렁쇠의 이미지며 그 굴렁쇠가 내포하는 원형의 세계(童心)를 동적 감각으로 잘 이끌었습니다. 생활 동시의 전형이라 할 수 있는 바,

굴렁쇠에 감겨
굴러가는 햇빛
굴렁쇠에 감겨
굴러가는 웃음소리

라는 부분에 이르러서는 신명나게 즐기는 동심의 본래 모습을 굴렁쇠를 통해 극명하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발목에 노을을 적시며
돌아간 아이들의
꿈속에서도
굴렁쇠 굴러간다.

그러니까 이 작품 내용은 꿈속으로까지 이어져 가는, 동심 세계의 확장이라 할 수 있고 그것이 곧 이미애 시인의 의도라 할 것입니다. 단순하기 그지없는 ‘굴렁쇠’를 소재로 하여 이렇게 깔끔하게 동시로 쓸 수 있기는 결코 쉽지 않을 것입니다.

냉이꽃 피는 자리에
첨성대가
하늘을 받아내고 있다.

좀 더 높은 곳으로
별을 찾아 떠났다가
이제
누나의 모습으로
엄마의 모습으로
다시 찾아온 첨성대

첨성대는 바람을 만든다.
비와 눈을 만든다.
유구한 역사의 말발굽 속에
이 땅 구석구석을 만들어왔다.

출렁이는 저 하늘에
몸을 두고서
살며시 웃고 있는
무명 자락 위의 첨성대.

――――― 김문기, 『숨쉬는 첨성대』

위 작품은 1992년도 동아일보 신춘문예 동시 부문 당선작입니다. 성인시로의 접근을 어느 정도 시도한 작품이며 시적 구조를 철저히 지켰다 할 것입니다.

냉이꽃 피는 자리에

첨성대는 경주 토함산에 있습니다. 그러면 그 토함산의 이미지를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가 우선적인 과제일 텐데, 시인의 안목에서 위와 같이 ‘냉이꽃 피는 자리’라고 했습니다.

그곳에는 나무도 있고 풀도 있고 오가는 사람들도 많지만, 동시로 첨성대가 위치한 자리를 표현하기에는 ‘냉이꽃’이 가장 잘 어울릴 듯싶지 않나요?

그리고 위와 같이 시적 대상과 상황을 제시하면서,

좀 더 높은 곳으로
별을 찾아 떠났다가
이제
누나의 모습으로
엄마의 모습으로
다시 찾아온 첨성대

이렇게 2연에서는 그 시상을 전개, 확장시켰습니다. 시의 기본 구조라 할 수 있습니다. 그 묘사에 있어서는 ‘좀 더 높은 곳으로 / 별을 찾아 떠났다가’ 식으로 이미지를 무한 창공으로 확장시켜 나갔고, 곧 이어 ‘누나의 모습으로 / 엄마의 모습으로’ 인식하고 받아들이는 지극히 한국적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출렁이는 저 하늘에
몸을 두고서

시인의 의도가 충분히 드러나는 부분입니다. 또한 확장시켰던 시상을 안정시키고 오늘날 첨성대의 위격을 적절히 묘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 이어,

살며시 웃고 있는
무명 자락 위의 첨성대.

라는 결론 부분을 보세요. 2연에서 첨성대를 ‘누나의 모습으로 / 엄마의 모습으로’ 곱게 감싼 후 ‘출렁이는 저 하늘에 / 몸을 두고’ 난 지금에 와서는 어쩔 수 없이 첨성대를 ‘무명 자락 위’에 정성 드려 모시고 있습니다.

바로, 동심은 천심이라는 우리들 본 모습대로 첨성대를 인식한 시인의 인식이 선명하게 드러나 있는 것입니다.

첫새벽 물새들이
모래톱 위에

가만가만 다니며
편지 써놨네

엊저녁 별빛 함께
놀던 이야기

달님이 조가비와
하던 이야기

모래톱에 자상자상
편지 써놨네

파도가 한 줄씩
읽고 지우면

물새는 매일 매일
새로운 얘기

가만가만 자상자상
써놓는다네.

――――― 최정심, 『물새 발자국』

위 작품은 무슨 수상 작품은 아니지만 바닷가 『물새 발자국』을 모티브로 한 환상적 풍경을 7 5조 동요로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이런 식으로 시어를 곱게 갈고 닦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마치 수채화를 보듯 이미지를 선명하게 드러내 보이는 능력이야말로 이 시대 어린이를 위해 무엇보다도 중요한 문학적 역량입니다.

 

 

출처 : http://www.dongsim.net/ 아동문학 창작 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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