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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 창작교실 | 동시 창작 과정

아동문학창작강의실

by 백연심 2006. 11. 16.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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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를 창작할 때는 실제적 개연성의 바탕 하에서 쓰여져야 합니다. 실제 생활의 한 단면으로써 독자가 인식하고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하니까요.

개연성 ; [사전 풀이] 꼭 단정할 수는 없되, 대개 그러하리라 생각되는 성질

동시를 창작할 때는 판타지 기법이 흔히 쓰입니다. 별이 어디로 잠을 자러 갔다는 둥 꽃 속에 내 소망이 담겨져 있다는 둥……. 흔히 그렇습니다.

그런데 그 환타지 역시 개연성의 바탕 하에서만 가능하고 그래야 그 시적 상황을 추론할 수 있고 또 그래야 느낌이나 감동이 독자의 가슴에까지 닿을 수 있습니다.

만약 어느 시인이 책상에 앉아 공상만으로 작품을 썼다면? 실제 독도에 가보지 않았으면서도 마치 거기에 가본 것처럼 거기서 새를 만났다느니, 꽃을 만났다느니, 혹은 사람을 만났느니, 어쩌고 그 공상의 이야기를 동시로 썼다면? 그럴 수도 있겠지만, 솔직히, 창작의 기본자세가 아닙니다. 무의미한 글쓰기라 할 수 있습니다.

글이란 직접이든 간접이든 자신이 체험한 내용이어야 하고 삶의 기록이어야 가치가 있는 법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실제 체험으로부터 그것이 동시라는 작품으로 완성될 때까지의 과정에 대해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다음의 일기를 보세요. 일기라기보다는 간단한 메모쯤으로 생각하기 바랍니다.

  1. (할아버지가 된 나는) 아들네 집에 방문했다.
  2. 고층 아파트라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야 하는데 내가 좀 늙어서인지 자꾸 현기증이 일었다.
  3. 엘리베이터에 같이 탔던 한 아주머니도 현기증이 심하다며 돈만 더 있다면 단독주택으로 이사 갈 것이라 했다.
  4. 하늘 중간쯤 올라왔을까, 아들네 집 현관문을 여니 아들 내외는 없고 손주 녀석 혼자서 할아비를 맞아 주었다. 언제나 귀여운 녀석이다.
  5. 손주 녀석은 공부하던 참이었다. 무거워 보이는 책가방이며 밀린 학습지들을 들춰보니 어린 녀석이지만 참 안쓰럽게 느껴졌다. 공부가 뭔지. 원.
  6. 나는 손주 녀석에게 “공부 좀 나중에 하고 창 밖 풍경이나 보자.”고 했다. 녀석은 좋아라 하고 내 품에 안겨 창문을 열었다. 시원했다.
  7. 빌딩들 사이로 햇살이 마치 프리즘을 일으키는 것 같아 보기 좋았다. 손자 녀석 방에도 그 햇살이 들어와 달력을 비췄다. 햇살이 달력을 비추니 무슨 상징이나 비유를 알려주는 듯싶었다.
  8. 손주 녀석은, 방학이 되면 외할머니 네를 가보겠다며 자꾸 날짜를 세었다. 외갓집에 간 다는 말에 좀 서운하기는 했으나 손가락을 꼼작꼼작 하다가 빙그레 웃는 녀석이 귀엽기 그지없을 뿐이다.
  9. 나는 천상 아동문학가인 모양이다. 손주 녀석과 같이 있으면 나 역시 어린애가 되어 놀고 있으니. 아무튼 오늘 하루 기분이 좋았다.

실제 체험을 바탕으로 한 위 내용은 동시 창작을 하는 기본 자료가 됩니다. 더욱이 글 쓴 사람은 ‘손주 녀석과 같이 있으면 나 역시 어린애가 되어 놀고 있으니’라며 너무나 쉽게 동심의 세계에 빠져든다는 사실을 밝히고 있습니다. 스스로 아동문학가가 될 수밖에 없는 당위성도 피력했습니다.

위 내용을 바탕으로 동시 창작의 처음 단계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물론 시적 화자는 ‘나’이지만 그것은 현실 속의 ‘나’가 아니라 손주 녀석입니다. 손주 녀석의 일과를 그의 시점에서 동시로 쓰는 것입니다.

ⓐ       고층 아파트
           엘리베이터
           밀어 올린
           아찔한 현기증

위 체험 내용을 바탕으로 첫 부분을 이렇게 쓰고 보니, 표현이 좀 단순해 보입니다.

ⓑ         하늘 중간쯤
            텅빈 내 방에 들어와
            무거운 책가방
            밀린 학습지
            모두모두 먼발치로 밀어붙이고
            멍하니 창 밖을 본다.

두 번째 부분을 이렇게 쓰고 생각해 보겠습니다. ‘멍하니 창 밖을 본다.’라고 했는데,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지겨운 일상에서 좀 벗어나려는 생각에서겠지만 그 이유가 작품에 표현되었나요?

ⓒ         빌딩 숲새로
            프리즘에 꺾인 노란 햇살이
            헝클어진 골목 안을
            헤집고 들어와
            창가 달력 그림에
            눈길을 멈추고

세 번째 부분을 이렇게 쓰고 생각해 보겠습니다. 햇살의 색깔이 노란 색인가요? ‘따뜻한’이나 ‘밝은’이라고 표현하면 어떤가요? 전체적 장소 설정이 아파트 단지인데, 느닷없이 왜 ‘골목’이 등장하고 있나요?

ⓓ         강마을 외딴 집
            할머니 생각에
            방학이 기다려지며
            손가락
            꼼작 꼼작
            빙그레 웃는다.

마지막 부분을 이렇게 쓰고 나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3행까지의 내용이 너무 평이하지 않나요? 그리고 요즘 세상에 ‘강마을 외딴집’이란 장소 설정이 너무 고루하지 않나요?

이런 식의 반성 작업이 꼭 필요합니다. 스스로 자문자답하며 고쳐야 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비평을 받아 고칠 필요도 있고요. 그런 가운데 좋은 작품이 나오는 법입니다.

결국 위 실제적 체험을 바탕으로 하여 다음과 같이 작품을 써 보았습니다.

이 아파트 엘리베이터를 타면
나를 하늘 중간쯤에 데려다 놓는다.
현기증을 호소하면
더 높이 데려다 놓는다.

비틀거리며 내 방에 들어와
무거운 책가방이나 밀린 학습지 따위는
멀찍이 밀어놓고
창 밖이나 바라보는 것이
내 위안이려니

햇살 한 자락 프리즘처럼 꺾여와
달력의 날짜들을
세고 있다. 그렇지.
몇 날이면 방학인가.

햇살 대신 내 손가락을 꼼작 꼼작
날짜를 세며 할머니네 집을 그리며
빙그레 웃어본다.
이 아파트에서의 탈출을 꿈꿔본다.

일단, 이렇게 『아파트 탈출』이라는 동시가 창작되었습니다. 동시란 밝고 귀엽고 예쁘게 꾸미면 된다는 식의 일반적 고정관념을 깨뜨린 작품입니다.

요즘 어린이가 안고 있는 고민, 강박관념, 소외 등 제반 문제점들은 성인 사회의 그것에 못지 않습니다. 그 일편을 위와 같이 동시로 썼다고 생각하면 되겠는데, 물론 시간을 두고 좀 더 갈고 다듬어야 합니다.

그럼 실제로 동시를 창작할 때의 조건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구구한 사전식 설명은 창작 강의에 있어 별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어느 정도 수중에 달한 작품들을 실제 감상하면서 문제점들을 지적하고 그런 가운데 동시 창작의 조건들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 어린이가 흔히 쓰는 말 중에서 시어를 찾아야

산 높은 만큼 골짜기도 깊어
조심스레 자릴 트고
퐁퐁
걸러 올린 옹달샘

하늘은 넓어도
산 속의 하루는 청명한 새소리

――――― 습작품, 『옹달샘』중 1, 2연

위 작품은 옹달샘의 이미지를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만 살펴보면 성인 냄새가 나는 시어가 두 개나 있습니다. 바로 ‘조심스레 자릴 트고’와 ‘청명’입니다. 이런 시어가 보이면 어린이가 흔히 쓰는 시어로 고쳐야겠습니다.

⊙  조심스레 자리 트고  ⇒ 제 자리를 찾아
⊙  청명  ⇒ 해맑은

이렇게 고친 후 다시 읽어보면 시상이 한결 부드러워져 보입니다.

2. 표현이 단순하고 명쾌해야

심술 난 해님
풀포기를
잡아 비틀어 놓더니

모두
강으로 바다로
불러내어 옷을 벗긴다.

――――― 습작품, 『여름 날』중 1, 2연

위 작품을 읽으면 사실 무슨 내용인지 다 알 것입니다. 하지만 작자의 치기스러운 태도로 인해 그 표현과 구성에서 무리함이 드러났습니다.

  • ‘해’에 굳이 ‘님’자를 붙인, 그 곱게 꾸미려는 의도와 ‘풀포기를 /잡아 비틀어 놓’을 정도로 ‘심술 난’ 그 존재와는 너무 이질적이지 않나요? 어째서 그것들을 주어와 술어로 연결 지어 놓았나요?
  • ‘강으로 바다로’가 문제입니다. 사실 1연에서 풀포기를 거론할 정도로 한 협소한 장소에 대한 정경 묘사가 있는데, 생각해 보세요. 강이 딸린 마을과 바다가 딸린 마을과는 그 거리상 너무 먼 곳입니다. 어쩌면 전혀 다른 장소일 것입니다. 그래서 무리함이 보입니다.

위와 같은 모순으로 인해 시상 전개가 혼란스러워졌습니다. 그 반성 하에서 다음과 같이 고쳐보면 어떨까요.

무서운 태양은
이내 심술마저 부려
풀포기를 바짝 말리더니

이 지상의 모든 것을
강으로 데려와
옷을 벗긴다.

이제야 만족한 듯
산 너머로 가는 저 태양!

――――― 고쳐 쓴 작품, 『여름 날』중 1, 2연

이 정도만 되더라도 시상 전개와 그 표현이 단순 명쾌해집니다.

3. 가급적 밝은 면을 강조하고 교육적 효과를 감안해야

봄의 높이는?
종달새가 나는 만큼!

――――― 손동연,『봄의 높이』

이런 작품이야말로. 어린이에게 감성을 길러주는 좋은 예라 하겠습니다 종달새가 자유분방하게 나는 것을 보고 그것이 바로 ‘봄’이라는 계절적 개념의 높이로 본다는 인식이 참 일품입니다.

 

 

 

출처 : http://www.dongsim.net/ 아동문학 창작 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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