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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 창작교실 | 창작 의도와 실제의 작품 사이

아동문학창작강의실

by 백연심 2006. 11. 16.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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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한 편의 동시 속에는 그것을 쓴 사람이 무엇을 의도했고 그 의미는 무엇인가가 드러나야 합니다. 그러니까 意圖 즉, 동시를 쓰려는 계획이 작품으로 선명하게 담겨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를 두고 주제의 효용을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습작기에 있는 사람들은 흔히 불투명하고 불분명하게 작품을 써내곤 합니다. 창작 의도와 실제로 나타난 작품 사이의 괴리 말입니다.

그 괴리 현상이 어디서 발생했을까요? 어떻게 발생했을까요? 아동문학 지망생들은 창작에 앞에 이런 반성 작업이 먼저 이루어져야 합니다.

대체로 창작 의도와 실제 작품과의 괴리는 대상을 감지하는 인식 과정이나 감지한 사실을 언어화하는 과정에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시적 대상  ⇒ 감지, 느낌  ⇒ 언어화  ⇒ 작품  ⇒  독자

이런 통로는 창작 과정이고, 그 반대의 통로는 독자의 감상 과정입니다.

이런 등식에서, 시인의 창작 과정과 독자의 감상 과정이 일치해야 합니다. 그것으로 시인의 창작 의도가 독자의 가슴에 선명하게 닿았다고 할 테니까요.

그러나 현실적으로 우리가 대면할 수 있는 것은 실제적 의미의 ‘작품’ 밖에 달리 없습니다. 나머지는 과정의 단계며 임의적 해석에 불과하니까요. 오직 작품으로 모든 것을 평가할 수밖에 없습니다.

아동 문단에 갓 데뷔한 사람이 아래와 같은 작품을 썼습니다. 그리고 스스로 창작 현장으로 가 자신의 작품에 대한 분석, 감상, 비평의 장을 마련했습니다. 물론 이것은 필자의 가정이지만 말입니다.

우선, 작품을 보겠습니다.

둥지에 모아둔
별들이
새가 되어 난다.

햇덩어리 꿴 나뭇가지엔
햇살 가루가 날려 눈부신데

논물보고 들어오는 아빠를 따라
아침이 쪼르르
사립으로 들어선다.

산비둘기도 은빛 날개를 털며
구구구
골짜기의 안개를 걷고 있다.

―――――――――――――――――――― 습작품, 『아침 풍경』

위 작품은 제목 그대로 『아침 풍경』에 있었던 몇 개의 이미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동시 작품이 좋으냐 그렇지 않느냐에 앞서 그냥 위 습작품을 보세요. 특별히 의도하는 바가 드러나 있지 않습니다.

그냥 아침 풍경을 보여주는 것으로 만족한 꼴입니다. 그래도 辭典式 이론상으로는 본명 동시가 되긴 하지만 우리는 위 작품을 보면서 몇 개의 의문을 갖게 됩니다.

ⓐ  둥지에 모아둔 별들이 새가 되어 난다.⇒ 주어가 무엇인가?
ⓑ  둥지에 모아둔 별들이 새가 되어 난다.⇒ 왜?

우선, 이 두 가지의 의문으로 인해 작품 전체가 불분명하게 되었고 그리하여 읽는 사람을 곤혹스럽게 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의 의문은,

ⓐ에서, 우선 주어가 불분명합니다. ‘별들이’를 주어로 상정하면 그 앞의 ‘둥지에 모아둔’ 과 연결되지 않습니다. ‘둥지에 모여든’이라 수정한다면 맞을 것입니다.

그런데 제 3자인 ‘자연’ 혹은 ‘자연을 만든 조물주’를 주어로 상정해보면 어떨까요? 조물주란 아무거나 다 만드는 존재니까. 문제는 그렇게 추론할 수 있는 근거가 없다는 것이고 억지스러운 해석이란 점입니다. 문법 공부부터 해야 할 이유가 여기서 생깁니다.

뿐만 아니라 ⓑ에서, 개연성의 문제에 봉착하게 됩니다. 별들이 왜 둥지에 모여들었으며, 그 별들이 이번에는 왜 새가 되어 날까요?

시인을 가리켜 지상의 창조자라 하지만, 그 창조란 상식을 바탕으로 한 개연적 논리 하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개연적 논리도 없이 억지로 상황을 설정하고 규정해 놓고 거기에 독자들을 끌어들이려 한다면? 그것은 창조가 아니라 파괴입니다. 혼란만을 야기할 뿐입니다.

두 번째의 의문은 무엇일까요?

ⓒ 햇덩어리 꿴 나뭇가지엔 ⓓ 햇살 가루가 날려 눈부신데

자세히 살펴보면 표현의 미숙함이 그대로 드러나 있습니다. 우선, ⓒ ‘햇덩어리 꿴 나뭇가지’를 살펴보세요. 이것은 아마 해가 나뭇가지 사이로 보일 때를 두고 표현했을 것입니다. 우리가 어디서 많이 들었던 ‘나뭇가지에 달이 걸리고’ 하는 식의 표현을 차용해 본다는 것이 위 표현이 된 듯하지만, 그러나 ‘해’가 지니는 이미지와 ‘햇덩어리’가 지니는 이미지가 너무 이질적인 것입니다.

해              ;    일반적으로 희망, 밝음, 정열 등의 이미지를 갖고 있다.
덩어리        ;    둥글게 뭉쳐진 것. 음식물 등에 흔히 쓰임.
해 +덩어리  ;    해의 덩어리. 여러 개의 해가 뭉쳐진 것.

이처럼 해석할 수 있는데, 위 작품에서 ‘햇덩어리’라고 했으니 시어 자체적 의미는 ‘해의 덩어리’를 뜻합니다. 이것은 결코 상상할 수 없는 것입니다.

굳이 해를 모양 있게 꾸몄을 뿐이라고 주장한다 해도 ‘덩어리’란 일반적 이미지로 인해 결코 어울리지 않는 표현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시어의 사용에는 주의할 점이 참 많아요.

그리고 ⓓ의 표현은 아마 ‘아침 햇살이 나뭇잎에 반사되어 반짝이는 정경’을 묘사한 것입니다. 그러나 ‘햇살가루’ 라는 시어가 문제입니다.

햇살       ; 해에서 나오는 빛으로, 따뜻한 이미지를 갖고 있다.
가루       ; 아주 작은 입자들의 집합으로, 바람에 쉽게 날리는 이미지를 갖고 있다.

이렇게 써놓고 다시 위 표현 ‘햇살가루 날려 눈부신데’를 음미해 보세요. 햇살과 가루가 합쳐지는 이미지? 글쎄, 각 시어의 억지 합성으로 인해 너무 생경한 표현이 되었습니다.

다음으로,

ⓔ 아침이 쪼르르

3연 2행의 위 표현은 어떤가요? ‘논물보고 들어오는 아빠를 따라’ ‘사립’으로 들어서는 그 ‘아침’에 대한 표현입니다. 다른 이미지도 아닌 ‘쪼르르’인데, 어떤가요?

위 3연에서 ‘논물보고’란 시어와 ‘사립’이란 시어는 너무 고답적이고 어른스러워 동심의 세계엔 별로 어울리지 않는 낱말들입니다.

그것을 차지하고라도, ‘아침이 쪼르르’ 사립문으로 들어온다니요?

아침은 우주적 질서에 포함됩니다. 그 우주적 질서의 하나인 ‘아침’이 일개 시골집 사립문으로 ‘쪼르르’ 들어온다는 표현은 아무리 향소적 과장어법을 사용했다 하더라도 너무 지나친 감이 있습니다.

과장법을 사용하되 아무거나 향대과장, 향소과장을 사용할 수 없는 것이 바로 위와 같은 남용 때문입니다. 과장법엔 그 나름대로 적절한 이미지의 유추해석이 가능해야 합니다.

ⓕ 산비둘기도 은빛 날개를 털며

위 작품은 사실 산뜻한 아침 풍경을 보여주려는 작자의 의도에 의해 쓰여졌습니다. 그런데 웬 ‘햇살가루’가 등장하더니, 이번에는 산비둘기가 ‘은빛 날개를 털며’가 나오는가요?

산비둘기는 서양 문화가 유입된 이래 ‘평화’라는 일반적 이미지를 갖고 있습니다. 물론 우리의 관습과는 차이는 있습니다.

그런데 산비둘기가 아무리 ‘평화’의 이미지를 갖고 있다 하더라도 ‘날개를 털’면 가루가 날리는 법입니다. 새의 깃털에 있던 가루이니 만큼 그것은 오히려 지저분한 이미지를 갖습니다. 때문에, 산뜻한 아침 풍경과는 거리가 있는, 오히려 그것을 감쇄시키는 표현일 뿐입니다.

지금까지 위 『풍경-아침』이란 작품을 분석했고 감상했고 비평했습니다. 이런 식의 과정을 통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건 무엇일까요?

작자의 창작 의도가 선명하고 적절하게 작품에 담겨질 수 있기까지는 고려해야할 점이 얼마나 많은가 하는 점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시적 본질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갖게 하는 첫 과정이랄 수 있습니다.

그러면 산뜻한 아침 풍경을 보여주려는 작자의 의도에 맞게 위『아침 풍경』을 좀 고쳐보겠습니다. 물론 작품에 대한 인식이야 각자 개별적이지만 말입니다.

간밤의 별들이 지친 몸 쉬러
내려와
저 둥지에 잠잤을 것이다.
지금도 잠자는지

어찌 새 한 마리만
빠져 나와
제 일인 양
햇살 조각조각
나뭇가지에 걸어놓고 있는가?

논일하고 돌아온 아빠가 ‘요놈!’하며
나의 아침을 깨울 때

나대신, 다른 새 무수히 날아올라
바쁘게 안개 무리를 거둬내는 걸!

―――――――――――――――――――― 고쳐 쓴 작품, 『아침 풍경』

이렇게 시어의 선택과 시적 표현에 주의하며 기승전결식 구조에 맞게 고쳐 보았습니다. 본래의 『아침 풍경』과는 이미지가 좀 달라졌지만 말입니다.

보세요. 산뜻한 아침 이미지가 어느 정도 드러났지 않는가요? 더욱이 둥지를 빠져 나와 햇살 조각조각 나뭇가지에 걸어놓는 새 한 마리와 詩的 話者인 ‘나’를 적절히 삼투시킨 묘책이 보이잖아요.

재삼 강조하지만, 시적 이미지나 의미가 자기 혼자 머리 속에서만 맴돌아서는 안 됩니다. 어떻게 하면 작자의 의도하는 바가 선명하고 적절하게 표현되는가? 또 어떻게 하면 그것을 독자에게 정확히 전달시키는가? 이런 각고의 고민과 노력이 뒤따라야 합니다.

그래야만 작자의 의도하는 바가 그대로 작품에 나타날 수 있습니다.

 

 

 

출처 : http://www.dongsim.net/ 아동문학 창작 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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