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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그가 내 얼굴을 만지네 / 송재학

해설이 있는 시

by 백연심 2008. 1. 28.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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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내 얼굴을 만지네 / 송재학 (1955~ )


그가 내 얼굴을 만지네
홑지마 같은 풋짐에 기대었는데
치자향이 수로(水路)를 따라 왔네
그는 돌아올 수 있는 사람이 아니지만
무덤가 술패랭이 분홍색처럼
저녁의 입구를 휘파람으로 막아 주네
결코 눈뜨지 말라
지금 한 쪽마저 봉인되어 밝음과 어둠이 뒤섞이는 이 숲은
나비떼가 가득 찬 옛날이 틀림없으니
나비 날개의 무늬 따라간다네
햇빛이 세운 기둥의 숫자만큼 미리 등불이 걸리네
눈뜨면 여느 나비와 다름없이
그는 소리 내지 않고도 운다네
그가 내 얼굴 만질 때
나는 새 순과 닮아서 그에게 발돋움하네
때로 뾰루지처럼 때로 갯버들처럼


[해설]
한 사람을 기억한다는 것은 심리적 차원의 기억력을
뜻하지 않는다. 비록 만나거나 돌아올 수 없는 자라
고 해도, 늘 곁에서 함께 모여 말을 걸거나 휘파람을
불어줄 듯 느껴지는 상태를 말한다. 현재에도 미래에
도 과거의 '그'가 반복되기를, 사라지기를 완강히 거
부하는 강렬한 마음이 죽은 자가 마치 생전처럼 산 자
의 얼굴을 만지고, 또 산자가 갯버들처럼 안쓰러이 발
돋움하는 사태가 일어난다.

타인에게 하찮게 보일지라도, 그 자신에 가장 소중하
다고 여기기에 여전히 살아 있는 현재로서 기억은 가
장 깊이 생각되고 사랑하는 것에 귀의인 셈이다.
-시인 임동확

*광주일보 제17101호-
출처 : 시의 향기로 여는 마당
글쓴이 : 김영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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