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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마음의 수수밭 / 천양희

해설이 있는 시

by 백연심 2008. 1. 28.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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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수수밭 / 천양희 (1942~ )


마음이 또 수수밭을 지난다. 머위잎 몇 장 더 얹어
뒤란으로 간다. 저녁만큼 저문 것이 여기 또 있다.
개밥바라기별이
내 눈보다 먼저 땅을 들여다본다
세상을 내려놓고는 길 한쪽도 볼 수 없다
논둑길 너머 길 끝에는 보리밭이 있고
보릿고개를 넘은 세월이 있다
바람은 자꾸 등짝을 때리고, 절골의
그림자는 암처럼 깊다. 나는
몇번 머리를 흔들고 산 속의 산,
산 위의 산을 본다. 산은 올려다보아야
한다는 걸 이제야 알았다. 저기 저
하늘의 자리는 싱싱하게 푸르다.
푸른 것들이 어깨를 툭 친다. 올라가라고
그래야 한다고, 나를 부추기는 솔바람 속에서
내 막막함도 올라간다. 번쩍 제정신이 든다
정신이 들 때마다 우짖는 내 속의 목탁새들
나를 깨운다. 이 세상에 없는 길을
만들 수가 없다. 산 옆구리를 끼고
절벽을 오르니, 천불산(千佛山)이
품속에 들어와 앉는다.
내 맘속 수수밭이 환해진다.

[해설]
'나'란 존재는 논둑길이나 보리밭 등과 같은 현실적
존재에 대한 경험으로써 존립한다. 그러한 사물들에
대한 경험을 떠난 '나'란 공허한 추상적 구성물에 불
과하다. 그 과정에서 '나'는 몇 번이고 생성과 소멸
을 반복하는 존재일 뿐이다. 하지만 '나'는 결코 낡
은 과거의 시간과 경험을 단순히 재생 반복하는 존
재가 아니다.
'산 위의 산' 또는 '하늘의 자리'와 같은 새로움을
낳는 개념적 능력 또는 정신성을 통해 물리적이고 육
체적인 '나'의 한계로부터 일탈한다. '없는 길' 또는
'절벽'을 오르는 모험을 통해 지상과 타자의 제약을
벗어나 자신의 자유를 환한 마음속의 수수밭에 구현
한다.-시인 임동확

*광주일보 제17096호
출처 : 시의 향기로 여는 마당
글쓴이 : 김영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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