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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 창작교실 | 틀리기 쉬운 문장의 예

아동문학창작강의실

by 백연심 2006. 11. 16.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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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를 창작할 땐 그 문장과 표현이 정확해야 합니다. 이것은 일반 문법에 관한 책을 보고 공부할 내용이지만 여기서는 문법이 잘못 사용되는 경우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영희가 웃으면서 다가오는 상수의 손을 잡았다.
“고마워. 이렇게 문병 와서.”
“아냐. 너하고 나하고는 어릴 때부터 친구인 걸.”
그 동안 미워했던 마음이 어디로 갔는지. 이제는 오히려 상대를 더욱 깊이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으리라. 손을 꽉 잡았다.

문장 수련 과정이 미숙 단계에 있는 사람의 글입니다. 동화의 끝부분인데, 우선 ‘웃으면서’의 주체는 누구인지 애매모호합니다. ‘영희가 웃으면서’ 상수의 손을 잡았는지 아니면 영희가 ‘웃으면서 다가오는 상수’의 손을 잡았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 애매모호한 표현은 뒷부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동안 미워했던 마음은 어디로 갔는지 이제는 오히려 상대를 더욱 깊이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으리라.’가 그것입니다. 이런 식의 마무리 표현은 청소년들을 상대로 한 소설에서 흔히 활용되는 예입니다. ‘행복하게 잘 살았다.’식의 전래 동화적이고 즉흥적이고 안일한 매듭짓기 말입니다. 현대 창작동화에 그대로 수용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이 예문에서 영희와 상수는 서로 오해하고 미워하는 사이였습니다. 그리고 어떤 이유로 해서 서로를 이해하고 상수가 문병을 오면서 화해하게 되었다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세요. 사실 그 동안의 미운 감정이 ‘씻은 듯이’ 사라질 수 없는 일입니다. 따라서 이렇게 즉흥적이고 안일한 처리는 표현을 부정확하게 할뿐입니다.

영희네 집은 오래도록 방 하나를 비워두고 있었다.
빈방에 세를 들인다고 엄마가 말했는데,
“안녕하…….”
다름 아닌 상수 엄마였다. 이삿짐을 싸들고 온 상수와 그 엄마를 보며 영희는 말을 잇지 못했다. 대문 밖으로 피했다.

위예문의 앞 부분을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일단 주어는 ‘영희네 집’이고, 목적어는 ‘방 하나를’이고, 그리고 서술어는 ‘비워두고 있었다.’로 보입니다. 그러나 잘못된 표현임이 금방 드러납니다. 주어와 서술어를 연결해 보면 알겠지만 ‘영희네 집은 ~ 비워두고 있었다.’가 되는데 이치가 틀립니다. 무생물인 ‘영희네 집’이 어찌 능동적으로 방을 비워둘 수 있을까요? 말하자면 ‘영희네 집’은 이 글에서 ‘비워두고 있었다.’의 주체가 아니라 객체로 보아야 합니다. 아닙니다. ‘영희네’를 잘못 적은 것입니다. ‘영희 네는 방 하나를 비워두고 있었다.’라고 써야만 올바른 문장이 되는 것입니다.

그 신비하고 황홀했던 때를 회상하며 다시 찾아가고 싶은 마음은 물론이다.

소설가가 쓴 동화의 한 문장인데, 위 예문에서 서술어는 ‘물론이다.’로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앞 부분 전체가 주어부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드러나고 말았습니다. 주어와 서술어를 이리저리 연결하여 읽어보아도 그 뜻을 이해하기 힘겹습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물론이다.’일까요? 물론 이와 같은 문장은 소설에서는 가능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동화 문장으로는 부적절한 표현입니다.

나비를 따라 산으로 올라간 아이들은 대개 한 나절 코스지요.

여기에서 주어는 ‘아이들’이고 서술어는 ‘코스지요.’로 되어 있습니다. 이것 역시 어느 소설가가 치기스럽게 쓴 동화의 한 문장인데 ‘아이들은 ~ 코스지요.’를 연결해보면 알겠지만 결코 어울리지 않습니다. 창작 동화에서의 잘못된 문장입니다.

어느 녀석인가, 상스러운 목소리가 할아버지의 귀에 들렸다.
“이 놈!”
할아버지는 호랑이처럼 달려들었다.

주어가 무엇을까요. 첫 부분에서 ‘할아버지 귀에 들렸다.’의 주어는 무엇인가요? 그런데 ‘상스러운 목소리가’도 될 수 있고 좀 따지고 보면 ‘어느 녀석인가’도 될 수 있습니다.

문장 표현은 섬세한 수련이 필요합니다. 위 구절에서 사실 ‘어느 녀석인가의’는 관형어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니까 관형격 조사 ‘의’자를 붙여서 ‘어느 녀석인가의 상스러운 목소리가 할아버지 귀에 들렸다.’ 라고 해야 올바른 문장이 됩니다.

어려운 살림을 꾸리시면서도 내 도시락만큼은 맛있게 싸 주시는 어머니는 고마움 그 자체다. 그래서 나는 어머니를 기쁘게 해 드리려고...

어느 기성 동화작가의 작품 중 한 부분인데, 마치 일기를 써놓은 듯 합니다. 왜 그런가요? 존칭어 때문입니다. 자고로 문학이란 우리네 삶을 객관적으로 살펴보고 냉정하게 이야기로 전개시켜 독자에게 보여주어야 합니다. 그런데 위 예문에서와 같이 대화 항목이 아닌 표현 부분에서 작가의 주관을 가미시킨 존칭어를 써서는 곤란합니다. 물론 서술어 존칭은 어린이 독자의 교육적 의미에서 가능한 것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습니다.

마땅한 놀이터를 구할 수 없어 우리들은 그 비탈진 언덕길을 놀이터로 삼았다.

언뜻 보면 괜찮은 문장쯤으로 보이겠지만 ‘마땅한 놀이터를 구할 수 없어서’와 ‘비탈진 언덕길을 놀이터로 삼았다.’의 연결이 어울리지 않습니다. 놀이터가 없어 그보다 수준이 퍽 낮은 비탈진 언덕길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는 내용입니다. 그러기에 뒷부분에서 ‘비탈진 언덕길을 놀이터로 삼을 수밖에 없었다.’로 고쳐야 옳을 것입니다. 이렇게 표현 하나 하나에 신경을 써야 합니다.

상수가 울면서 말했다.
“끝내 그는 나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을 거야.”

위 예문의 대화 글에서는 ‘끝내’라는 부사와 ‘이해하지 못하고 있을 거야.’라는 현재 진행의 시제가 어울리지 않습니다. 그럼 위 대화 글을 두 가지 형태로 고쳐보겠습니다.

  • 끝내 그는 나를 이해하지 못할 거야. (미래 시제로 바뀐다)
  • 아직도 그는 나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을 거야. (부사를 다르게 바꿨다)

그 좋은 생각을 떠올려냈다.

위 예문에선 ‘떠올려냈다.’라는 서술어가 잘못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문맥상으로 보면 ‘그 좋은 생각이’ 습관적으로 저절로 떠오른 것이 아니라, 잊고 있었던 것을 의도적으로 떠올렸다는 의미입니다. 거기에 ‘냈다.’라는 조동사가 붙었는데 ‘냈다.’란 제 힘으로 능히 그 행위를 끝냈다는 뜻을 가진 낱말이므로 자동사인 ‘떠올려’에 붙여 쓰면 의미가 이상해집니다. 그러니까 이 부분은 자동사로 고쳐서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로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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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해진 영희는 상수의 앞을 끌었다.

여기에서 ‘앞을 끌었다.’라는 표현을 보세요. 이런 것은 운문식 글이고 동시에서는 적합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동화 문장에서는 잘못된 표현이랄 수 있습니다. 물론 이 부분을 고쳐 ‘앞장섰다.’라든가 ‘잡아당겼다.’라고 하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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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상을 물러나 앉으면서 영희는 상수네 방에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여기에서 ‘밥상을’이 목적어인데 이 목적어를 받는 타동사가 없습니다. ‘물러나’는 타동사가 아니라 자동사니까요. 그러니까 목적어와 타동사의 연관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이것을 두 가지로 고쳐보기로 하겠습니다.

  • 밥상에서 물러나 앉으면서 (목적격 조사 ‘을’을 ‘에서’로 고쳤음)
  • 밥상을 물리면서(타동사를 사용했음) 

이런 식으로 따지다 보면 문장은 참 어렵습니다. 열심히 노력하여 쓴다 해도 틀린 부분이 지적되곤 합니다. 하지만 문학에서의 문장은 기본이니까 더 열심히 공부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출처 : http://www.dongsim.net/gnu4/bbs/board.php?bo_table=adong010

동심넷

 

http://www.123pen.com/

동화작가 김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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