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악역과 이야기 전개

아동문학창작강의실

by 백연심 2006. 11. 16. 15:17

본문


악역과 이야기 전개  

전래 동화에서는 인물 설정이 단순하고 지극히 전형적입니다. 권선징악 사상이 그 기조를 이루고 있는 바, 주인공과 악역의 동시 설정으로부터 이야기가 전개되며 그에 귀결된 메시지를 내보이는 방식입니다.
여기서 중요시 여겨야 할 점은, 惡役의 역할입니다. 전래 동화에서의 악역은 곧 연극적 논리와 결부되어 있습니다.
그럼, 엄기원이 재화한 다음의 전래 동화를 읽으며 악역의 역할에 대해 알아보기로 하겠습니다.

옛날 옛날 이야기예요.
개똥이라는 착한 소년은 아버지, 어머니, 할아버지와 살고 있었어요.
그런데 불행하게도 집안의 어른이신 할아버지가 몹쓸 병에 걸려 자리에 눕게 되었어요. 하루 이틀도 아닌 몇 년씩이나요.
할아버지 병간호를 하던 아버지와 어머니는 끝내 참지 못했어요.
"에이, 벌써 몇 년째야! 아버님 병은 못 낫는 병이야. 빨리 죽기나 해야지."
"그러게 말이에요. 집안 꼴도 말이 아니고요. 흥! 죽기를 빌어도 안 죽으니, 나 원."
그에 개똥이는 화가 났어요.
"그러면 안돼요. 할아버지를 더 따뜻하게 보살펴 드리고 맛있는 고기 음식을 대접해 드리면 나으실텐데요."
그러나 아버지는 지게를 가리키며 말했어요.
"이미 죽은 거나 다름없다. 빨리 할아버지를 지게에 져다 버려라."
어머니도 똑같았어요.
"얘야? 빨리 먼 산 속에 갖다 버려라. 남들도 다 그런다."
개똥이는 할 수 없이 할아버지를 지게에 지고 산으로 올라갔어요.
"할아버지 병은 꼭 나으실 거예요."
"아니다. 네 아비, 어미 말이 맞다. 난 죽어야지. 흑."
"아니에요. 할아버지. 이 나무 아래에 앉아 쉬고 계세요."
"어디 가려고?"
개똥이는 좋은 생각이 떠올라 할아버지를 나무 아래에서 쉬게 하고 자기는 다시 지게를 지고 산을 내려왔어요.
"아버지, 어머니? 할아버지를 칠봉산 범골 아주 깊은 곳에 져다 버렸어요."
그러면서 지게를 마당에 쿵 하고 내려놓았어요.
"아니, 이 녀석아! 사람을 져다 버렸으면 지게까지 거기에 버리고 와야지. 그 더러운 지게는 왜 가지고 왔어!"
그에 개똥이는 시침을 뚝 떼고 또박또박 말했어요.
"지게를 버리다니요? 잘 간수해 둬야 나중에 아버지, 어머니 아프시면 저 지게로 산 속에 내다 버려야 하질 않아요. 안 그래요?"
그 말을 듣고 아버지, 어머니는 새파랗게 질려 버렸어요.
"아버님! 저희들이 잘못했습니다. 용서해 주세요."
후회의 눈물을 흘리며 산으로 가서 할아버지에게 용서를 빌었어요.
"으흠. 효도해야지, 효도 받습니다!"
개똥이의 지혜로움에 아버지, 어머니가 크게 깨우쳤어요. 그리고 할아버지의 병간호를 극진히 하며 오래도록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 전래 동화, 『할아버지를 져다 버린 손자』

위 전래 동화에서 보듯 악역(아버지, 어머니)의 역할이란,

⊙ 주인공의 좋은 점을 확연히 부각시키고 있으며
⊙ 주인공과 더불어 이야기를 흥미롭게 이끌고 있고
⊙ 긴장을 주며 극적 요소를 만들어 내고
⊙ 작중 메시지를 갈고 다듬는데 기여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악역의 역할이 꼭 인물만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때로는 자연적 악조건으로 등장하기도 하고, 호랑이를 비롯 동식물로 등장하기도 하고, '가난한 가정 환경'으로도 등장하기도 합니다.

옛날 옛날 강원도 두메산골에 마음씨 착한 젊은이가 살고 있었다. 그 젊은이는 집이 너무 가난하여 날마다 짚신을 만들어 장에 내다 팔며 살았다.
그런데 어느 장날, 젊은이는 짚신을 내다 팔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이게 웬일인가? 아무도 없는 산길에 돈이 가득 든 전대가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닌가.!
――――― 전래 동화, 『정직한 짚신 장수』

전래 동화의 도입부입니다. 여기에서 보듯 악역은 '돈이 가득 든 전대'로도 등장합니다. 그리고 결말에 이르는 동안 끊임없이 주인공의 정직함을 시험하고 물질적으로 유혹하기도 합니다.
자고로 동화를 창작할 때는 주인공과 악역을 적절하고도 효과적으로 설정해야 하는데, 대개의 전래 동화에서 보여지는 바와 같이 그 전형적 유형 즉,

⊙ 『콩쥐팥쥐』에서의 '계모'
⊙ 『정직한 짚신 장수』에서의 '돈이 많이 든 전대'
⊙ 『은혜 모르는 호랑이』에서의 '호랑이'

등등을 찾아내고 자기 나름의 창작 정신을 발휘해야 합니다. 그런 다음, 주인공과 치열한 갈등 구조를 이루게 하고 이야기를 흥미롭게 이끌어야겠지요.

전래 동화의 특징인 그 전형적 인물 설정은 그러나 현대 산업 사회에서의 창작동화에 그대로 수용할 수는 없습니다. 여러 가지 비판을 받게 되니까요.
多分化되고 個別化된 사회에서는 전래 동화식 인물 설정이 너무 가공적으로 여겨집니다. 아울러 그 허구성을 그대로 받아들이기에는 합리주의를 지향하는 현대인들에겐 여러모로 무리가 따르는 게 사실입니다.

이야기가 중심이 되는 전래 동화에서 시대 환경에 맞게 발전을 거듭하여 이제는 미적 차원으로 끌어올려진 것이 현대 창작동화입니다. 하지만 역시 이야기가 차지하는 비중은 높습니다.
주인공을 설정하고 환경과 배경을 묘사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그 역시 주인공을 둘러싼 이야기를 생동감 있게 나타내기 위해 필요한 것들입니다.
이야기를 통하지 않은 채 인물과 배경을 설정하는 것, 즉 서술과 설명식 전개만으로는 안됩니다. 문학성은 차치하고라도 금방 어린이 독자의 외면을 받게 되니까요.

이야기는 우선 재미있어야 하고 즐거움을 안겨주는 것이라야 합니다. 그리고 유익한 이야기라면 더욱 좋을 것이다.
그럼 김운경이 쓴 동화의 이야기 체계를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 창문에 턱을 괴고 별을 바라보는 소녀 '하느님 호주머니 속에는 무엇이 들어 있을까?'
⇒ 엄마가 소녀에게 "착한 일을 저금하는 통장이 들어있을 거야."
⇒ 이모가 소녀에게 "마음을 비춰보는 이런 거울이 들어있을 거야."
⇒ 아파트 수위 아저씨가 소녀에게 "천국과 지옥의 열쇠가 들어있을 거야."
⇒ 과일가게 아줌마가 소녀에게 "죄의 무게를 재는 이런 저울이 들어있을 거야."
⇒ 소녀의 생각 "그러나 그것들을 다 집어넣으면?"
⇒ 통장과 거울과 열쇠 꾸러미와 저울이 함께 들어있어 보기 흉한 주머니. 그것을 보며 눈을 찡그리는 소녀.
⇒ 초저녁 하늘을 바라보는 소녀
⇒ 한쪽 주머니에 뜨거운 해를 집어넣고 다른 주머니에서 별을 꺼내는 하느님
⇒ 소녀 "맞아! 지금 하느님 호주머니엔 반짝이는 별들이 가득 들어있어!"

('하느님 호주머니엔 무엇이 들어 있을까?'의 줄거리)

즐거움은 문학의 본질적인 사항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즐거움이란, 이야기에 있어서 다음에 또 어떤 깜짝 놀랄 만한 일이 일어날까 하는 서스펜스와 스릴만을 일컫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그것도 중요한 요건이긴 합니다. 동화는 재미있어야 하니까요.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어린이로 하여금 이야기 속에서 주인공이나 악역과 더불어 지금껏 경험하지 못했던 하나의 새로운 체험을 맛보게 하는 일입니다. 동화 속에서 새로운 가치를 발견했을 때 보다 차원 높은 즐거움이 생겨나니까요.
단순한 이야기일수록 이야기 속에 깊은 의미가 담겨야 한다는 점도 기억해 주십시오.

아래 작품은 필자가 종로 YMCA에서 어린이 글쓰기를 가르칠 때 제출 받은 것입니다. 글쓰기를 가르친 후 필자가 조금 고쳤긴 하지만 어린이다운 상상과 동화로서의 이야기 전개에 좋은 모범을 보이고 있습니다.


웃지 않는 돌비석

(숭신 초등학교 5학년 이미미 양 작품)

아름다운 숲 속 마을에 아기 참새 예삐가 살았어요.
그런데 예삐가 살고 있는 집에서 숲을 가로질러 유치원 쪽으로 가는 길에 돌비석이 하나 있는 거예요.
"거기에 다가가지 마!"
"피해서 다녀!"
아빠, 엄마뿐만 아니라 숲 속 마을 모든 새들은 그 돌비석을 무서워했어요.
"에이, 돌비석아, 없어져라."
예삐가 유치원을 가고 있는데, 삐약이가 그 돌비석에게 돌멩이를 던지고 있었어요.
"저 돌비석은 왜 있는 거야!"
꿩순이는 찬물을 뿌리고 달음박질쳤어요.
지나는 새들마다 다 그러는 모양이에요.
'이상도 해라.'
예삐 역시 그 돌비석을 보며 무서워했지만 용기를 내어 다가가 보았어요. 조심스럽게 다가가 보니 정말 못생긴 돌비석이었고 얼굴을 잔뜩 찡그리고 있었어요.
"예삐야? 안돼!"
아빠 참새가 얼른 다가와 예삐를 붙잡았어요.
"유치원에 가서 그림 공부해야지."
"아빠, 이상해요. 이 아름다운 숲 속 마을에 저런 돌비석이 있다니 요. 얼굴을 잔뜩 찡그리고 있어요."
"그러기에 모두들 무서워하질 않나."
"어떻게 하면 좋아요?"
유치원에서 그림을 그리면서도 예삐는 자꾸 그런 질문을 했어요. 그리고 크레용을 꺼내 무지개를 그렸고 그 아래에 숲 속 마을을 예쁘게 그려 나갔어요.
'여기는 돌비석이 있는 자리인데.....'
그렇게 생각하던 예삐에게 좋은 생각이 떠올랐어요. 얼른 돌비석 있는 곳으로 날아간 예삐는 크레용을 꺼내 돌비석에 칠을 했어요.
'잔뜩 찡그린 얼굴 때문에 모두들 너를 무서워하는 거야.'
예삐는 돌비석에 웃는 얼굴을 그렸고 머리며 손발이며 옷도 아주 예쁘게 그렸어요.
'아하, 그렇구나!'
돌비석이 웃는 얼굴을 보이자 그 때부터 숲 속 마을 모든 새들은 그 돌비석을 아주 좋아하게 됐어요. 날아가다 쉬며 정답게 이야기 나누고요.

동화는 결국 재미있고 유익한 이야기를 어린이들에게 들려주기 위해 창작하는 일입니다. 그러기에 길에서 참새를 보든 돌비석을 보든 하다 못해 버려진 크레용 토막을 보든 그 안에 감추어진 이야기를 건져 올릴 수 있어야겠지요. 더 나아가 사물과 사물, 사물과 관념, 관념과 관념을 적절히 연결하여 새롭고도 의미 있는 이야기를 창조하는 일! 이것이 동화작가의 일입니다.

                   

 출처:http://www.haword.com/김문기 아동문학 창작 강의

 

 

'아동문학창작강의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전래동화의 문제점-이향아  (0) 2006.11.16
동시에서의 행과 연  (0) 2006.11.16
詩語의 선택  (0) 2006.11.16
[스크랩] 주인공과 배경  (0) 2006.11.16
[스크랩] 관념어와 상투어  (0) 2006.11.16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