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에서의 행과 연
형태상으로 보면, 동시의 구조는 행과 연으로 되어 있습니다. 행은 낱말, 구, 절 또는 그 연합으로 이루어지지요. 그리고 연은 하나의 행 또는 그 연합으로 이루어집니다. 그러므로 문학 이론상으로는 한편의 동시는 단 하나의 낱말만으로도 가능합니다. 왜냐하면, 한 연은 한 행으로 이루어질 수 있고 또 한 행은 한 낱말로도 이루어질 수 있으니까요.
오요요 오요요 불러볼까요.
보송보송 털 세우고 몸을 흔드는
강아지풀 강아지풀 불러볼까요. ――――― 김구연, 『강아지풀』
산 넘고 물 건너 파밭을 지나고 감자밭을 지나서
달리다 숨이 차면 다리 한 번 펴고 달리다 힘들면 허리 한 번 펴고
기차는 기차는 오래 달리기 선수 내가 원하는 곳이면 어디든지 달려가지
달나라 가자고 조르면 꿈나라 가자고 조르면 뭐라고 할까? ――――― 조명숙, 『기차는 오래 달리기 선수』
위 동시 중 『강아지풀』은 7. 5조의 리듬을 살린 작품입니다. 말하자면 리듬을 중요시하고 그것을 살리려는 시인의 의도가 드러나 있습니다. 반면, 『기차는 오래 달리기 선수』는 시적 이미지를 중요시 여기고 쓴 작품입니다. 중요한 것은, 행과 연을 구분할 때 그 분명한 의도가 드러나야 한다는 점입니다. 그럼 이 작품은 어떨까요?
하느님 콧김에 내몰리듯 바람에 대항하듯 빌딩 사이를 빠져 나와 아이들을 찾아 헤매듯 간혹, 햇살에 반짝이듯
몇 점 내리는
사근동 언덕길 맨 꼭대기 집에 몇 점 내리는 내리다가 그냥 녹아 버리는 눈! ――――― 김문기, 『서울의 눈』
이 동시에선 두 번째 연이 한 개의 행으로 되어 있고 바로 거기에 시인의 의도가 분명히 내포되어 있습니다. 보세요. 그 '몇 점 내리는'이란 연(행)은 앞뒤로 이어진 다른 연과 이미지의 중량상 맞먹고 있지 않은가요? 중요한 것은, 시의 모양새를 따지는 게 아니라 행과 연을 구분함에 있어 그 의도하는 바가 분명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행과 연을 이루는 데는 보통 세 가지 요인에 의해 결정됩니다.
⊙ 리듬을 중요시하느냐. ⊙ 의미를 중요시하느냐. ⊙ 이미지를 중요시하느냐.
이것은 별 의도함도 없이, 억지로 동시의 형태나 갖춰보려는 그 무책임함을 배제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리듬이냐, 의미냐, 이미지냐 하는 문제에 너무 고지식하게 매달릴 필요는 없어요. 말하자면, 시인의 역량에 따라 새로운 동시 형태의 개발 역시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다음의 작품을 분석해 보겠어요.
이슬아, 넌 봤니?
어둠이 어떻게 잠 깨는지……
이슬아, 넌 알지?
새벽이 어떻게 걸어오는지…… ――――― 문삼석, 『이슬』
이 동시에서는 '이슬아 넌 봤니?'와 '이슬아 넌 알지?'와 같이 유사 어구의 반복과 함께, 그에 뒤따르는 2연과 4연에서 7. 5조의 리듬을 깔고 있습니다. 이 동시에서도 알 수 있듯이 리듬이란 반드시 정형 동시의 틀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며 상황에 따라 리듬, 의미, 이미지의 조화로운 배열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점입니다.
그러나 늘 연과 행에 대해 분별력 없이 쓰여지는 많은 습작품을 보게 되는데, 우리는 새삼 그것의 중요성을 깨달아야겠어요. 동시 창작에서 무책임함이 없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다음의 습작품을 보십시오.
엄마 품에 얼굴 묻으면 똑딱똑딱 뛰는 시계.
내 가슴에 손을 얻어봐도 똑딱똑딱 뛰는 시계가 있다.
언제나 쉬지 않고 가는 시계 마음의 시계. ――――― 습작품, 『시계』
이 습작품에서는 이미지나 의미를 살리기엔 사실 작품 자체가 너무 소박하고 단순합니다. 그렇다고 리듬도 형성되어 있지 않습니다. 자, 그럼 리듬을 살리는 방식으로 좀 고쳐보기로 하겠어요.
엄마 품속에도 시계가 가고
내 가슴속에도 시계가 가고
똑딱똑딱 똑똑똑. 마음의 시계
바쁘면 바쁠수록 더 빨리 간다. ――――― 고쳐 쓴 작품, 『시계』
이렇게 7. 5조의 리듬을 살려보면 그 자체가 노래가 되겠지요. 그럼 다음의 동시 작품을 보며 행과 연의 구분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겠습니다.
비 오면 산골길이 심심했던지 지나가던 소발자국, 모두가 본떠 놓고 밤이면 또박또박 달님이 하나 낮이면 또박또박 해님이 하나 달님과 해님이 산길을 가네. ――――― 조규영, 『소발자국』
참 좋은 동시라서 여기에 소개하는 것입니다. 아동문학 지망생들은 흔히 이와 같은 동시를 쓸 때, 행과 연을 짧게 짧게 나누어 길게 늘여 놓을 것입니다. 동시란 짤막한 행과 연으로 길게 늘여 놓아야 한다는 고정관념 때문이지요. 다시 이 동시를 보세요. 하나의 연으로 되어있지만 얼마나 참신하며 또 얼마나 산뜻한가 말입니다. 소발자국이 걸어가는 것이 아니라 '달님과 해님이 뚜벅뚜벅 걸어가는 발자국'이라는 시인의 탁월한 인식이 빛나고 있습니다. 물론 이 동시에서 행의 길이를 좀 줄이고 몇 개의 연으로 나눌 수도 있겠어요. 그렇지만 굳이 한 개의 연으로 정한 것은 조규영 시인의 충분한 의도에서 비롯된 일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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