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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語의 선택

아동문학창작강의실

by 백연심 2006. 11. 16.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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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語의 선택  

얼마만큼 참신하고 적절한 詩語를 찾아내느냐? 이것이 좋은 동시를 쓸 수 있는 첫 번째 관건입니다. 詩語의 취사 선택 과정이 동시를 쓰는 일에 다름 아닌 것이, 시란 시어의 나열이요 시어가 지닌 개개의 이미지를 일렬로 엮어놓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럼 참신하고 적절한 詩語 곧, 좋은 시어는 어떻게 찾을까요? 예문을 들어가며 설명하겠습니다.

하도
맑아서
가재가 나와서
하늘 구경합니다.

하도
맑아서
햇빛도 들어가
모래알을 헵니다.
――――― 문삼석, 『산골 물』

소나무는 자라서 어른이 되도
솔방울을 갖고 노네. 아기 장난감.

바람이 불어올 때 흔들어 보고
아이들이 놀러올 때 떨구어 보고

소나무는 늙어서 점잖아져도
솔방울을 갖고 노네. 아기 장난감.

솔방울 쳐다보며 높은 가지가
우후후후 혼자서 웃고 있다네.
――――― 이원수, 『솔방울』

위 두 편의 동시에는 우선 어려운 낱말이 보이지 않습니다. 정말 쉬운 낱말들이고 우리들이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낱말들입니다. 그러면서도 『산골 물』이 맑다는 사실을 실감 있게 보여주고 있고, 또한 『솔방울』을 매개로 소나무의 천진무구한 행태를 선명하게 노래하고 있습니다.
동시에서의 詩語는 바로 쉬우면서도 일상적인데서 찾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 시어를 사용하는 방법에 따라 천차만별이라, 경우에 따라 좋은 동시도 되고 그렇지 못한 동시도 됩니다.
다음의 습작품들 살펴보십시오.

산봉우리 골짜기를 감돌면서
맑은 봄
맑게 다가오는 봄

우리들 손에 손을 잡고
맑은 봄을 맞는 마음.
――――― 습작품, 『봄을 맞으러』

위 습작품을 보면서 우리는 '맑게 다가오는 봄' '맑은 봄' 등의 詩語가 상당히 어색하게 느껴짐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너무 상투적이고 시시한 표현이랄 수 있고요.
그런데 정말 쉽고도 일상적으로 쓰이는 구절들인데, 왜 그렇게 느껴지는 걸까요?
위 습작품에서의 '맑음'의 이미지는 사실 '봄'이라는 계절의 일반적 이미지와 유사하기 때문입니다. 말하자면, 유사한 것끼리의 직접 연결로 인해 본래의 이미지가 사치스러워졌다 할까 수다스러워졌다 할까, 그런 것이지요.
봄은 계절 중에 가장 '맑은' 이미지를 갖고 있는데, 2개 연에 걸쳐 3회씩이나 '맑음'을 추가시킨 결과가 독자를 불만스럽게 만들었어요.
반면, 똑같이 '맑음'을 사용했지만 『산골 물』에서의 '하도 맑아서' 라는 시어는 참신할뿐더러 적절하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에 뒤따르는,

⊙ 가재가 나와서
하늘 구경합니다.

⊙ 햇살이 들어가
모래알을 헵니다.

라는 세밀한 정경 묘사가 '맑음'의 이미지를 해석하면서, 그것을 극대화시켜 주기 때문입니다. 가재가 나와서 하늘을 구경할 정도로 맑은 『산골 물』에서 더 이상 어떤 시어를 덧붙이고 어떤 시어를 뺄 수 있을까요? 바로 여기서 동시에서의 균제미를 말할 수 있겠지요.
다시 한번 『봄을 맞으러』라는 습작품을 읽어보기 바랍니다.

산봉우리 골짜기를 감돌면서
맑은 봄
맑게 다가오는 봄.

이렇다할 의도함도 없이, 집중적 관찰도 없이, 자신의 즉흥적 느낌만을 그대로 꾸며 적은 것에 다름 아닙니다.
물론 봄을 맞이할 때의 기분은 시인이든 일반인이든 엇비슷한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자신이 시인이라면, 아동문학가라면, 그 대상에 대한 남다른 직관력과 묘사 능력이 있어야겠어요.

우리들 손에 손을 잡고
맑은 봄을 맞는 마음.

이 부분도 마찬가지입니다 無色無臭합니다. 시의 모양새를 빌렸을 뿐 시를 이끌어 가는 내재적 요인으로 보면 시가 되질 못합니다.
똑같이 '맑다'라는 시어가 『산골 물』에서는 정말 맑게 빛을 내고 있는데, 왜 『봄을 맞으러』에서는 그렇지 못할까요? 마치 어떤 사람이 부잣집에 가서는 배불리 먹고, 가난한 집에 가서는 배곯는 것과 마찬가지랄 수 있겠지요. 똑같은 '사람'이고 똑같은 '시어'인데, 상황에 다라 그렇게 다른 결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럼 『봄을 맞으러』의 시어를 다음과 같이 좀 고쳐보겠습니다.

산봉우리 골짜기에 몸 씻으며
저기 오는 봄
몸을 다 씻고서 오는 봄

우리들 손때 묻은 마음도
다 씻어내 주는 봄
――――― 고쳐 쓴 작품, 『봄을 맞으러』

이 정도만 되더라도 '맑은 봄'의 이미지를 어느 정도 형성해 주질 않는가요? 굳이 '맑다'라는 시어를 사용치 않았다 해도 말입니다. 이는 상징법 활용의 한 예라 할 수 있습니다.
더불어 밝혀둘 것은, 마음속의 치기스러움이나 억지로 꾸미려는 태도를 버려야만 좋은 시어가 저절로 나온다는 경험적 사실입니다.
다음의 동시를 살펴보겠습니다.

조그만 몸에
노오란 털옷을 입은 게
참 귀엽다.

병아리 엄마는
아기들 옷을
잘도 지어 입혔네.

파란 풀밭을 나가 놀 때
엄마 눈에 잘 띄라고
노란 옷을 지어 입혔나봐.

길에 나서도
옷이 촌스러울까 봐

그 귀여운 것들을
멀리서
꼬꼬꼬꼬
달음질시켜 본다.
――――― 엄기원, 『병아리』

詩語란 사실, 우리들이 흔히 쓰는 낱말들이고 동시에서의 시어는 그보다 더 쉬운, 어린이가 흔히 쓰는 낱말들입니다. 위 『병아리』를 보더라도 정말 쉬운 낱말들만을 가지고 어린이(병아리)들의 천진한 감성을 참신하고 적절하게 표현했습니다.
그 흔하고 쉬운 시어를 가지고 어떻게 하면 우리들 동심의 세계를 가장 빛나게 보여 줄 수 있을까요? 이것이 동시 창작의 어려움입니다.
동시 창작은 어렵습니다. 그럼 다음의 습작품을 살펴보기로 하지요.

연둣빛 바람
해종일 들판을
쏘다니다가

오순도순 햇님이랑
쉬는 자리에
수줍게 살며시
고개 내미는 새싹.
――――― 습작품, 『새싹』

이 습작품을 놓고 시어의 취사선택 문제를 살펴보겠습니다.
이 습작품은 봄이 되어 새싹이 트는 것을 그 모티브로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새싹이 트는 것을 묘사함에 있어 온갖 시어를 동원해 너무 수다한 꾸밈을 보여주고 있어요. 꾸밈이 사뭇 사치스러울 정도입니다. 뿐만 아니라,

⊙ 바람이 왜 하필 연둣빛이며 그 빛깔과 새싹과는 무슨 연관이 있는가?
⊙ 바람이 왜 해종일 들판을 쏘다녀야 하나? 그러다가 새싹이 돋는 이유는?
⊙ 그 쏘다니던 바람이 왜 갑자기 해님이랑 오순도순 사이가 되었나?
⊙ 해에 굳이 '님' 자를 붙이는 의도가 상투적이지 않나?
⊙ '수줍게' 도 모자라 그에 '살며시'를 덧붙이는 꾸밈이 너무 사치스럽지 않나?

이런 식의 질문들을 받아 마땅하고, 오규원 시인의 표현을 빌리자면 해석이 곤란할 정도로 장식적 수사로 가득 차 있는 동시라 하겠습니다. 너무 화려한 옷을 입어 오히려 천박해 보인다 할까요.
위 습작품에서, 동시로서의 이미지 제시에 오히려 사족에 불과한 그 장식적 수사를 배제해 본다면,

봄빛 파랗게
트는 새싹.

이 정도밖에 남을 게 없습니다. 시적 상황이 짧기는 하지만 습작품 『새싹』에서보다는 분명 참신한 이미지와 그것을 적절히 묘사하고 있는 시어로 짜여져 있음을 알 수 있겠지요.
그러니까 동시를 창작하고자 할 때,

⊙ 그 현장성이 있어야 하고
⊙ 시적 대상물에 대해 남다른 관찰이 있어야 하고
⊙ 동시로서의 표현을 위해, 참신하고 적절한 시어를 찾아내야 할 것입니다.

시어의 선택에는 사실 많은 고민이 따릅니다. 흔하면서도 쉬운 우리들의 일상 용어를 가지고 어떻게 하면 동시의 세계를 잘 표현해 내느냐 하는 창조자로서의 고민 말입니다.
그럼, 다음 구절에 대해 자세히 따져보기로 하겠어요.

ⓐ 맑은 하늘
ⓑ 맑은 이슬

물론 앞뒤에 이어진 시어들에 따라서 평가가 달라지겠지만, ⓐ는 옳고 ⓑ는 잘못입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하늘이란, 흐린 하늘도 있고 쾌청한 하늘도 있고 개인 하늘도 있는 등 표현이 참으로 다양합니다. 그러기에 작자의 감흥에 따라서 '맑은 하늘'로 표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반면, 이슬은 그렇지 않습니다. '흐리멍덩한 이슬'이니 '노란 이슬'도 있다고 자꾸 우겨대는 사람도 있을 수 있겠지만, 그러나 어차피 이슬의 일반적 이미지는 '맑은'입니다. 그러기에 그 일반적 이미지에 '맑은'이란 형용사를 덧붙일 필요가 있을까요? 사족에 불과하고 동시의 본질을 따져볼 때엔 잘못된 시어일 수밖에 없습니다.

ⓒ 출렁이는 저 하늘에 몸을 두고서
ⓓ 몸이 죽어 저 하늘로 찾아가서

여기서는 옳으냐 그르냐의 문제가 아니라, 얼마만큼 참신하고 적절한 시어를 구사했느냐를 점검해 볼 수 있겠어요.
필자의 작품 '숨쉬는 첨성대' 라는 동시에서 구사된 시어인데 ⓒ는 일찍이 없었던 표현이며 오늘날 '첨성대'의 위격을 동시로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반면 ⓓ는 어떤가요? 몸이 죽어 하늘로 찾아간다? 지극히 사무적인 표현일뿐더러 이렇다할 묘사 능력이 나타나질 않습니다. 그러기에 평이하다는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고 이는 시어의 선택에 문제가 있음을 나타내니까요.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시어의 취사선택 과정이 곧 동시 창작 과정임을 다시 한번 명심해 두기 바랍니다.

                   


 출처:http://www.haword.com/김문기 아동문학 창작 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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