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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둥근 발작 / 조말선

해설이 있는 시

by 백연심 2008. 2. 26. 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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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근 발작 조말선 사과묘목을 심기 전에 굵은 철사 줄과 말뚝으로 분위기를 장악하십시오 흰 사과 꽃이 흩날리는 자유와 억압의 이중구조 안에서 신경증적인 열매가 맺힐 것입니다 곁가지가 뻗으면 반드시 철사 줄에 동여매세요 자기성향이 굳어지기 전에 굴종을 주입하세요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성장억제입니다 원예가의 눈높이 이상은 금물입니다 나를 닮도록 강요하세요 나무에서 인간으로 퇴화시키세요 안 된다, 안 된다, 안 된다 부정하세요 단단한 돌처럼 사과가 주렁주렁 열릴 것입니다 하지마, 하지마, 하지마 억누르세요 뺨이 벌겋게 달아오를 것입니다 극심한 일교차가 당도를 결정한다면 극심한 감정교차는 빛깔을 결정합니다 폭염에는 모차르트를 우기에는 쇼스타코비치를 권합니다 한 가지 감상이 깊어지지 않도록 경계하세요 나른한 태양, 출중한 달빛, 잎을 들까부는 미풍 양질의 폭식은 품질을 저하시키는 원인입니다 위로 뻗을 때마다 쾅쾅 말뚝을 박으세요 열매가 풍성할수록 꽁꽁 철사 줄에 동여매세요 자유와 억압의 이중구조 안에서 둥근 발작을 유도하세요 경남 김해 출생. 1998년 <부산일보> 신춘문예 및 <현대시학>으로 등단 2001년 <현대시 동인상> 수상 현재 부산 거주 ===================================== [감상] 사과묘목이 여러 가지 의미로 읽혀집니다.   부모가 정해 놓은 눈높이와 목표에 꿰맞추어 자유의지를 잃고 성장해 가는 자녀들의 모습이기도 하고, 신혼 초의 주도권을 놓고 다투는 신혼부부의 모습같기도 합니다. 무엇을 의미하건 상대를 ‘굵은 철사 줄과 말뚝으로’ 억압하는 이중구조안에서 더 많은 열매가 맺힌다고 믿는 현대인의 일그러진 자화상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상대 입장에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원하는 취향과 자기의 관점에서 모든 것을 바라보는 데서 세상의 불행은 시작되는 지도 모릅니다. 억압과 굴종을 강요하면서도 현재의 상황이 악화되어 이혼이나 가출과 같은 극단적인 상황으로 전개되기를 바라지 않는 이중성까지 섬세하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즉, 최악의 경우에도 ‘둥근 발작’으로 유도하라는 것이겠지요. 하고 싶은 얘기를 반어법으로 표현한 풍자시의 전형이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양현근]
출처 : 시의 향기로 여는 마당
글쓴이 : 김영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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