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스크랩] 놀고 있는 햇볕이 아깝다 / 정진규

해설이 있는 시

by 백연심 2008. 1. 28. 15:22

본문

놀고 있는 햇볕이 아깝다 / 정진규 (1939~ )


놀고 있는 햇볕이 아깝다는 말씀을 아시는가 이것은 나락도
거두어 갈무리하고 고추도 말려서 장에 내고 참깨도 털고 겨
우 한가해지기 시작하던 늦가을 어느 날 농부가 한 말이다
어디 버릴 것이 있겠는가 열매 살려내는 햇볕, 그걸 버린다
는 것이 당키나 한가 햇볕이 아깝다는 말씀은 끊임없이 무언
갈 자꾸 살려내고 싶다는 말이다 모든 게 다 쓸모가 있다 버
릴 것이 없다 아 그러나 나는 버린다는 말씀을 비워낸다는 말
씀을 겁도 없이 지껄이면서 여기까지 왔다 욕심 버려야 보이지
않던 것 비로소 보인다고 안개 걷힌다고 지껄이면서 여기까지
왔다 아니다 욕심도 쓸모가 있다 햇볕이 아깝다는 마음으로 보
면 욕심도 쓸모가 있다 세상엔 지금 햇볕이 지천으로 놀고 있다
햇볕이 아깝다는 뜻을 아는 사람은 지금 아무도 없다 사람아 사
람아 젖어있는 사람드아 그대들을 햇볕에 내어 말려 쓰거라 끊
임없이 살려내거라 놀고 있는 햇볕이 스스로 제가 아깝다 아깝
다 한다.

[해설]
거의 매일 반복하여 무한정 쏟아지기에 함부로 소비해도 될 것
같은 햇빛 한 올도 그저 무의미하게 다가오지 않는다. 농부의
입장에서 볼 때 무용한 햇빛은 없다. 흔하디흔한 햇빛 같은 존
재도 그 어디선가 쓸모 있는 그 무언가가 될 가능성을 활짝 열
어두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줄기차게 '실질과 능률을 숭상'
해온 우리들은 정작 이같이 쓸모없는 것들의 진정한 쓸모를 알
고 있는 것인가

창밖으로 스며들어 오는 봄볕은 참으로 쓸모 있는 것은, 자신이
쓸모 있음조차 전혀 의식하지 않는 때라고 말하는 듯 하다.
-시인 임동확

-광주일보. 17104호-
출처 : 시의 향기로 여는 마당
글쓴이 : 김영천 원글보기
메모 :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