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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문학입문 16 - 문맥

수필창작강의실

by 백연심 2007. 4. 1. 0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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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오영(1907~1976)

수필문학입문 - 문맥




모든 예술이 시각이나 청각을 통해서 전달되지만 문학은 기록된 언어가 의미로 바뀌어져서 독자의 상상력을 불러일으킴으로써 전달된다. 그러므로 번역이 가능하다. 원문의 언어에서 오는 뉘앙스나 시각적 음률적 정서를 여실히 옮겨 놓지는 못한다 해도, 번역에 의해서 감상할 수 있다는 것은, 사람은 누구나 동일한 감정이 있고, 그 감정의 줄기를 불러일으키면 그 줄기를 따라, 그 테두리 안에서 상상적 창작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감정의 줄거리가 곧 문맥이다. 따라서 이 문맥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알 것이다.

과거의 문장에 있어서 기승전결起承轉結이니, 대소 문단이니, 조응照應이니 하는 것도, 이것을 규격화한 형식론에 불과한 것이다. 이제 이런 형식적 규격에 구애될 필요는 없다. 그러나 한 줄기 일관된 문맥이 없으면 문리가 통하지 아니한다. 다만 논리적인 글은 이로理路가 정연하면 족하지만, 수필에 있어서는 정서의 면면함이 물줄기와 같아야 한다. 다시 말하면 일반문장에서는 논리적인 문맥을 말하는 것이요, 수필에서는 정서적은 문맥을 말하는 것이다. 한 마디 말은 반드시 그 다음 말을 전제로 써져야 하고, 다음 말은 반드시 그 앞의 말을 받아서 존립된다. 필요없는 말이 중간에 끼면 문맥이 막히고, 있어야 할 말이 빠지면 문맥이 끊어지고, 강한 말이 올 때 약한 말이 오면 문맥이 시들고, 약한 말이 올 데 강한 말이 오면 문맥에 옹이가 생기고, 직서直敍할 때 우회하면 문맥이 혼미하고, 완곡할 때 직서하면 문맥이 강박해지고, 두 줄기의 말이 병립하면 갈라져서 문맥을 이루지 못하고, 문맥의 순서가 바뀌거나 필연성이 결여되면 문장이 긴밀성을 잃거나 전체의 효과를 상실한다. 한마디로 해서 문맥이란 글을 짜 들어가는 위치와 순서에서 결정된다. 명작을 비록 불충분한 번역으로도 능히 감상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이 문맥의 덕택이다. 그러므로 언어의 재치 있는 뉘앙스나 미사여구보다 문장의 골격과 문맥의 흐름이 중요하다. 골격이란 사람의 생긴 바탕이요 문맥이란 혈관이니, 사람의 생사는 혈액의 순환에 있는 것이요, 문사文辭란 얼굴의 화장에 불과한 것이다. 초심자들은 흔히 얼굴의 화장에 급급하여 골격와 생사의 근간인 혈관에 소홀하기 쉽다. 제일 먼저 문맥을 말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제일 먼저 문맥을 말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면 다음에 예문을 들어 구체적으로 검토 고찰해 보자.



시골 한약방


나는 학생 시절에 병이 나서 충청도 어느 시골에 가서 몇 달 휴양을 하였다. 그때 내가 유하던 집 할아버지의 권고로 용하다는 한약국에 가서 진찰을 받고 약을 한 제 지어 먹은 일이 있었다. 그 의원은 한참 내 맥을 짚어 보고서는 전신쇠약이니까 녹용과 삼을 넣은 보약을 먹어야한다고 하였다.

그런데 자기 약방에는 약재가 없고 약 살 돈도 당장 없다고 하였다. 사실 낡은 약장에는 서랍이 많지 않았고 서랍 하나에 걸려 있는 약저울도 녹이 쓸어 있었다.

약국 천장을 쳐다봐도 먼지 앉은 봉지가 십여 개쯤 매달려 있을 뿐이었다. 어째서 내 마음이 그에게 끌렸던지 그 이튿날 나는 그 한의와 같이 4~5십 리나 되는 청양이라는 곳에 가서 내 돈으로 나 먹을 약재를 사고 약국을 해먹으려면 꼭 있어야 된다는 약재를 사도록 돈을 주었다.

약의 효험인지, 여름 시냇가에 날마다 낚시질을 다니고 밤이면 곤히 잠을 잔 덕택인지 나는 몸이 건강해져서 서울로 돌아왔다. 내가 돌려주었던 그 돈은 받았는지 받지 못하였는지 지금은 생각이 나지 않는다.

나는 그 후 세익스피어의 극 [로미오와 줄리엣] 속에서 로미오가 독약을 사는 약방이 나올 때 비상조차도 없을 충청도 그 시골 약국을 회상하였다.

양복 한 벌 변변한 것을 못해 입고, 사들인 책들을 사변통에 다 일어버리고, 그 후 5년간 애면글면 모은 나의 책은 지금 겨우 삼백 권에 지나지 아니한다. 나는 이 책들을 내가 기른 꽃들을 만져보듯이 어루만져 보기도 한다.

물론 내가 구해 놓은 이 책들은 예전 그 한방 의사가 나한테서 돈을 취하여 사온 진피, 후박, 감초, 반하, 행인 같은 것들이다. 그런데 우황, 웅담, 사향, 영사, 자금정 같은 책자들이 필요할 때면, 나는 그 시골 약국을 생각하게 된다. (피천득)


이 글의 실질적인 내용은 '양복 한 벌 운운' 이하가 된다. 그러나 시골 한약방이 머리에 떠오른 것이 출발점이다. 실질적인 내용을 먼저쓰고 한약국을 뒤에 서술하면 그것은 비유가 된다. 그런 비유란 아무런 효과도 없다. 먼저 씀으로서 '흥'이 된다. 흥이란 정서다. 여기서 비로서 전편의 정서가 산다. 우리 나라 고가古歌에 [사모곡思母曲]이 있다. 호미도 날이언마는 낫같이 들리도 없다는 말로 시작된다. 이것이 흥이다. [사모곡]이 빛나는 점이다. 글을 모르는 사람들이 아버지를 호미에, 낫을 어머니에 비유한 것으로 해석하는 까닭에 그 노래는 잡쳐 버린다. 학생시절의 회상. 병이 나서 촌으로 휴양. 유하게 된 집 할아버지. 그의 권유로 진찰. 의원이 맥을 본다. 전신쇠약. 보약을 먹게 된다. 이래서 그 한약방의 가난한 모습이 나타난다. 약제도 없고 약살 돈도 없는 약국. (그래서 뒤에 돈을 취해 주게 된다.) 약장의 서랍이 많지 않다. 가난한 모습이다. 약저울에 녹이 쓸었다. 한층 강한 묘사로 가난한 모습을 더할 나위 없이 심각하게 표현했다. 달리 길게 쓰면 문맥이 홈미해지거나 시들어 버린다. 천장의 먼지 앉은 약봉지는 강한 묘사가 아니다. 아랫말과 잇기 위해서 좀 부드럽게 한 것이다. 그러므로 문단을 바꾸어서 두 문단을 순하게 이어갔다. "내 마음이 그에게 끌렸던지"로 문맥의 돌변을 피했다. 청양서 사오십 리나 되는 촌이었다는 것이 여기서 비로소 밝혀진다. 돈 없는 약국 주인과 같이 갔으니 자연 약재 살 돈을 취해 줄 수밖에 없다. 여기서 돈을 꾸어 달랬다거나 동정심을 바랬다거나 등등의 사설이 끼면 문맥이 침체된다. 그래서 돈을 주었다가 쓰고 '취해 주었다고도'하지 아니했다. 다음은 병이 나아 휴양이 끝나고 돌아오면 된다. 그러나 여기서 낚시질 다니고 밤이면 곤히 잠 들던 생활에 스침으로써 한약의 효과나 한의가 용했다던가하는, 이 글과 상관없는 데로 독자의 눈이 향할 것을 막고, 무드를 한층 곱게 할 수가 있었다. 만일 낚시질 다니는 강촌의 풍경을 삽입하면, 풍경의 묘사가 아름다우면 아름다울수록 문맥은 흩어진다.

또 한 가지 문제가 있다. 돈을 준 것은 물론 취해 준 것이다. 그런데 원인을 짓고 결과를 빠뜨리면 글이 이가 빠지고, 필요없는 사건은 군더더기가 된다. 받았는지 받지 못했는지 지금은 생각이 나지 않는다는 말로 이 두 점을 넌지시 풀어 버렸다. 더욱이 "지금은"이란 석 자를 잊지 아니했다. 그러나 이야기가 길었으므로 다시 요약해서 이미지를 선명하게 하며, 문장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세익스피어의 극 [로미오와 줄리엣]의 등장이 이것이다. 비상조차도 없을 충청도 그 시골 약국이란 말로 한층 도타워졌다. 여기서 끝내고 내용적인 본문으로 직결시켰다. "이 책들은..... 진피, 후박, 감초, 반하, 행인 같은 것들"이라는 데서 우리는 그 천정에 걸렸던 약봉지 밑의 글씨를 보는 것 같은 감각을 느낀다. 문장의 조응照應에서 오는 효과다. 이런 경우에는 약명을 한자로 쓰는 것이 더 효과적인 것이다. 그러나 작자는 글 전체의 조화를 위하여 한자로 안 쓴 것 같다. 이 값싼 약 등이 우황 웅담들의 값진 약을 끌어낸다. 값싼 약으로 마무르지 않고, 우황, 웅담..... 같은 약이 아쉴 때면 그 시골 약국을 생각한다는 데까지 와서 끝냄으로써 문맥이 생동한다. 이상 더 쓰면 사족이다. 문맥에 흠 잡을 데가 없는 작품이라 하겠다. 물론 작자가 일일이 인식하고 썼을 리는 없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그런 데서 성공을 거두고 있다.

그러면 이 작품이 독자에게 안겨 준 것은 무엇인가. 고요하고 따뜻한 정서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한 줄기 아늑하고 따뜻한 정서를 얼굴이 안 지게 끌고 나가는 것이 문맥이다. 이 글을 좋아하고 아니하는 것은 읽는 이의 기호에 달린 문제다. 그 개성과 소재에 따라 천차만별이나 문맥을 구김새 없이 갈려 나가는 묘리妙理는 같다. 같은 작가의 글에 [장미]란 글이 있다.




장미



잠이 깨면 바라보려고 장미 일곱 송이를 샀다.
거리에 나오니 사람들이 내 꽃을 보고 간다. 전차를 기다리고 섰다가 Y를 만났다. 언제나 그는 나를 보면 웃더니 오늘은 웃지를 않는다. 부인이 달포째 앓는데, 약 지으러 갈 돈도 떨어졌다고 한다 나에게도 가진 돈이 없었다. 머뭇거리다 부인께 갖다 드리라고 장미 두 송이를 주었다. Y와 헤어져서 동대문행 전차를 탔다. 팔에 안긴 아이가 자나 하고 들여다보는 엄마와 같이 종이에 싸인 장미를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문득 C의 화병에 시든 꽃이 그냥 꽂혀 있던 것이 생각났다. 그때는 전차가 벌써 종로를 지났으나 그 화병을 그냥 내버려 두고 갈 수는 없는 것 같았다. 나는 전차에서 내려 사직동에 있는 C의 하숙을 찾아갔다. C는 아직 들어오질 않았었다. 나는 그의 화병에 물을 갈아 준 뒤에 가지고 갔던 꽃 중에서 두 송이를 꽂아 놓았다.

숭삼동에서 전차를 내려서 남은 세 송이의 장미가 시들세라 빨리 걸어가노라니 누군지 뒤에서 나를 찾는다. K가 나를 보고 웃고 있었다. 애인을 만나러 가는 모양이었다. K가 내 꽃을 탐나는 듯이 보았다. 나는 남은 꽃송이를 다 주고 말았다. 그는 미안해 하지도 않고 받아가지고는 달아난다.

집에 와서 꽃 사가지고 오기를 기다리는 화병을 보니 미안하다. 그 꽃 일곱 송이는 다 내가 주고 싶어서 주었지만 장미 한 송이도 가져서는 안되는 것 같아서 서운하다. (피천득)



깨끗하고 향기로운 수필이다. 그의 간결하고 섬세한 솜씨를 알 수 있다. 슬픈 사람에게도, 외로운 사람에게도, 기쁜 사람에게도 장미를 주어 보는 마음. 그러나 어딘가, 실감이 절실하지 못한 아쉬움이 있다. 그것은 Y, C, K의 각 사건이 필연성이 아닌 우연성의 계속인 까닭이다. 문맥의 긴밀한 연결이 못된다. 만일 K, C, Y로 순서를 바꾸어 꾸미면 장미를 산 기쁨이 K의 행복으로, K의 정이 C의 생각으로, 그리고 Y의 슬픔이 기쁨의 단조를 변하여 끝의 서운한 정서와 연결되어 효과적이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이 수필의 득은 오직 기구起句에 있다. 우리가 이런 글을 쓰자면 꽃장수가 와서 꽃을 샀다거나, 꽃집을 지나다가 샀다거나 허두를 열어야 한다. 그러나 그 허두에 별 의미를 담을 수가 없다. 그런데 될 수 있으면 허두 단 한 자라도 비문학적인 글을 쓰고 싶지는 않다. 이 글의 "잠이 깨면 바라보려고 장미 일곱 송이를 샀다"는 서두는 그 한 마디 속에도 충분한 이미지를 담은 문학적 표현이다. 희유稀有의 가구佳句라 할 것이다. 독자가 끝의 "장미 한 송이도 가져서는 안되는 것 같아서 서운하다"는 말의 여운을 느끼는 것은 이 첫귀의 후광이다. 문맥의 중요성과 아울러 기구의 어려움을 알 것이다.




빙허憑虛와 나


② 서로 미면식未面識이었던 카라일과 에머슨은 처음으로 만나 인사를 한 뒤 30분간이나 같이 묵묵히 앉았다가 오늘 저녁은 퍽 재미나게 놀았다 하고 헤어졌다는 싱겁고 이상한 이야기가 있다. 그럴 법한 일이라고 그 심경이 짐작된다.

③ 흥화興化의 정판교鄭板僑가 산동山東에서 미간말직을 살고 있을 때 누가 잘 못 듣고 수원隨園이 죽었다고 오전誤傳했다. (판교板橋와 수원隨園은 그때까지 서로 만나지 못한 사이였었다.) 판교는 발을 구르며 통곡했다. 이 소식을 들은 수원은 퍽 감격했다. 그 후 두 사람은 20년이나 지난 후에야 어느 사랑에서 만났다. 판교는 "천하가 넓으나 손꼽을 인재가 몇 사람이나 되오" 했다. 수원은 죽었다는 오보誤報를 듣고 통곡하던 일을 시로 읊었다. 동심지인同心之人이 서로 그리다가 만다는 장면이 눈물겹기조차 하다.

① 빙허는 나보다 혹 3, 4세 위일지 모른다. 빙허가 그의 처녀작 [빈처貧妻]를 [개벽]지에 발표했을 때 나는 촌에서 갓 올라온 중학생이었었다. [빈처]를 읽고 감격한 나는 곧 그에게 마나고 싶다고 편지를 냈고 그도 회답이 있었다. 그 뒤 여러 번 같은 자리에 앉아 보기까지 했으나 나는 종내 말을 건넬 용기가 없었고, 그도 나에게 인사가 없었다. 우리는 서로 짐작만 하고 십여 년의 세월을 보냈다. 그랬더니 무상한 인생은 그와 나와의 사이에 파문을 그어 놓았다. 비어가 죽었다는 기사가 났다. 나는 처음으로 전농동典農洞 빙허의 집에 조객弔客으로 찾아갔다. (아무도 빙허와 내가 인사 없는 사이인 것을 알 사람은 없으리라.)

④ 수원과 판교는 20년 후에야 서로 만났다지만, 나와 빙허는 몇백년 후면 만나 인사를 할 수 있을까. (김용준)



품위 있고 고아한 글이다. 그러나 어딘가 친근감이 모자란다. 면면한 정서보다 고아해 보이려는 듯한 모습이 앞선다. 자세히 검토해 보며 문맥의 순서가 바뀌어 있다. 글자 한 자 아니 고쳐도 좋다. 다만 문단의 순서만 ①~④의 번호순으로 바꾸어 읽어보면 사뭇 달라질 것이다. (원 제목은 [원수원袁隨園과 정판교鄭板橋와 빙허憑虛 나와]로 되어 있었다.) 카라일과 에머슨의 이야기 끝에, "싱겁고 이상한 이야기"라면서 그 심경이 짐작된다는 것도 처음에는 필자는 짐작하지만 독자는 짐작하기에 어려웠들 것이다. 그러나 순서를 바꾼 뒤에 읽어보면 독자도 그 심경을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문맥이란 혈관과 같이 중요하다.




취적炊迹


고향에서 북으로 진양성晉陽城까지 새로 철도가 놓을 때 일이었다. 역군들은 역사하는 길가에 막을 친다. 나무판자로 세 벽을 세우고 앞으로 드나드는 문조각을 달고 양철을 주워서 지붕을 덮은 조그만 간막들이었다. 그리고 거기서 밥을 짓는 것이었다. 깃들이는 것이었다.

하루아침에 그러한 막들이 십여 호. 어제 없던 자리에 버젓하게도 한 동리가 이루어지는 것이었다. 그러더니 거기 술집이 들어오고 아침저녁으로 생선장수가 찾아오는 것이었다. 그것이 그들의 노역이요 향락이요 생활이었다.

그러나 몇 날이 지난 어느날 아침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밤 사이에 그 '버젓한 마을'이 쓸린 듯이 없어지고 말았다. 극서은 철도역사가 다음 정거장까지 완성되었기 때문에 그들은 나무판자와 양철지붕과 솥과 어린 것들을 싣고 봉화산烽火山을 넘어 다음 정거장 곁으로 옮겨간 것이었다. 술집과 술 파는 새악씨와 술항아리도 그들을 따라간 것이었다. 나는 그날 석양, 그들이 살다간 폐허를 창자가 그 근처를 산보하고 있었다. 거기에는 아무것도 없고 솥 걸었던 돌과 거기 앉은 매진煤塵만 바람같이 지나간 그들의 과거를 이야기할 따름이었다. 그리고 거지아이들이 꼬부라진 못 토막을 줍고 있었다. 나는 한참이나 그 불때던 자취를 바라보았다. 그 불때던 자취도 하룻밤 비에 씻겨지고 없는 것이다.

그들은 그와 같이 불때던 자리만 남기고서 다음 정거장으로, 또 그 다음 정거장으로 옮겨갔을 것이다. 나는 오늘도 우연히 그 일을 기억하고 혼자 망연한 생각에 잠기는 것이다. (이은상)





이 글에서 작가는 망연한 생각에 잠겨 있다고 했지만 독자는 망연한 그 생각에 같이 잠기지를 못한다. 끝의 정거장으로, 또 다음 정거장으로 옮겨간다는 데서 혹 철학적 함축이 있는 듯이 생각할 독자도 있을지 모르나, 실은 문장의 허세일 뿐이다. 이 글이 독자에게 감명을 쥦 못하는 이유는 그 문맥이 전도되 데 있다. 작가의 망연한 감회는 그 판자집들이 일조에 없어진 뒤 그 광막한 폐허를 보고 일어났을 것이며, 여기서 회상과 사억思憶이 시작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철도공사로 마을이 형성되던 때부터 시간순으로 기록하고 있다. 이것이 독자에게 정서를 주지 못하는 원인이다. "아침저녁으로 생선장수가 찾아온다." "술파는 새악씨와 술항아리도 그들을 따라간다." "아이들이 꼬부라진 못 토막을 줍고 있다" 하는 청신한 말들에서 겨우 권태를 면할 수 있다면 다행이다.

수필에서의 문맥이란 정서를 실어가는 노선을 말한다. 그것이 아니면 '정서적 신비적 이미지'란 창조되지 않는다.




<수필문학입문> 中...

 

 

 

 

 

출처 : - ☆ 시인의 향기 ☆- http://club.iloveschool.co.kr/po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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