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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부부(夫婦)의 길 / 박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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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연심 2006. 11. 26. 1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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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夫婦)의 길

인생은 떠오르는 아침 햇살에 사라져버리는 이슬과 같은 세월이라지만, 어느덧 내 나이 불혹의 중반을 넘었다. 이십 대의 불같은 사랑의 열정도 영원 할 것 같았다. 그러나 삼십대에는 사랑을 끝없이 주문하고 확인하며, 체념하는 시간이었다. 포기하기엔 너무나 안타깝고 설계를 하고 다가가려면, 금방 성(城)을 허물어뜨리는 남편을 보면서, 많이 아파했던 시간은 돌이켜 생각해보니 사랑이 숙성 되던 시간이 아니었던가 싶다.

자식들은 녹음보다 더 무성하게 자라나고 있었다. 그 뒷치닥거리로 날이 새고 해가 졌다. 자식은 부부를 이어주는 만리장성이다. 마흔의 나이, 조금은 인생의 쓴맛도 경험 할 나이, 그러면서 담금질 된 사랑은 세월 속에 발효 하고 있었다.

오십을 바라보는 남편의 코고는 소리가 웅장한 것을 보니, 오늘도 술 한 잔 거나하게 걸치고 들어온 것 같다. 철모르던 새댁 시절, '술이 그렇게 좋으냐고 했더니?', 남자들은 퇴근 시간부터 비즈니스가 시작된다며, 아리송한 말을 흘리던 시절이 있었다. 생존을 위해서 일을 하지만, 좋아서 직장 일을 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생각하며, 모두들 불쌍하고 가련한 삶들을 살고 있는 듯 했다. 직장 일은 자아실현이 최우선 선택의 목적이 되어야 하는데, 살다보면 이론 대로 되지 않는 게 냉혹한 현실이다. 좌절과 시련을 통해 우리는 조금씩 난 사람으로 가는 것이리라.

여름 피서 삼아 가족들과 함께 영화관엘 갔다. (각설탕)이란 영화 제목이 주는 의미가 무엇일까? 영화가 끝날 때까지 곰곰이 생각하게 했다.

영화 배경은 제주도 푸른 초원에서 펼쳐지는 모녀로 이어지는 애마(愛馬)이야기다. 소녀는 어릴 적부터 말과 지내면서 깊은 애정을 느껴, 경마 기수(騎手)로 취직한다. 말은 야성이 거세 된 채, 일등 경주마만 대우 받고 사랑 받을 수 있는 세계에 염증을 느끼면서도 그곳을 떠나지 못한다. 우승하나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현실이 사람이나 경마들의 숙명 인 것이다. 그러다보니 잘못된 사고와 편견으로 비열한 행동도 서슴지 않는 것을 보면서 깊은 비애를 느꼈다. 삶이 진하게 접목 된 공감을 주는 감동의 영화 한 편 이었다.

말은 고비 고비마다 기억한다.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해주는 주인의 숨소리를 냄새로 감지하면서, 각설탕을 통해 소녀와의 달콤한 사랑을 추억하고 있었다. 말은 죽을 때까지 달려야 하는 것이 운명이라면, 우리의 삶도 인내를 통해 깨달음을 얻고 참 자유를 통해 즐거움을 하나 둘 보석을 찾아, 사회의 봉사의 꽃을 피울 때 존재의 의미를 얻는 것이리라. 사람들의 피할 수 없는 숙명은, 죽을 때까지 애착을 놓치 못해 아파하는 마음이 아닐까 싶다. 천둥은 생명이 위태로운 지경까지 깊어진 병을 수술도 마다하고, 경주마로 뛰다가 생을 마감한다. 우리네 삶도 이와 마찬 가지이다. 부드러운 것은 살아 있는 것이고, 경직된 고체가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우리네 삶과 말의 운명이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살아있는 슬픔이 화면 가득 넘쳐 내 가슴으로 전이 되는 듯했다.

난 가끔 말을 보면 떠오르는 생각이 있다. 부부의 길은, 주인과 애마와의 끝없는 사랑의 길 같다. 외로운 나그네 길에서 희. 노. 애. 락을 함께 하는 동반자가 부부가 아니던가. 주인 인 내 인생에서 서로를 아껴주며 힘들 때는 말등의 짐을 나누어 지게 하고, 끝없이 앞으로만 걸어가는 것이 인생이 아니던가. 때로는, 그늘을 만나 휴식을 취하고는, 말의 등에 내짐을 실어 내 발걸음이 가볍게 나아갈 수도 있는 것이다. 주인인 내가 편하기 위해 말을 혹사해서 다루면 목적지를 가기도 전에 고꾸라져 죽고 마는 것이다. 말과 주인은 서로 존중하고 사랑해 주어야 할 운명 공동체 인 것이다.

남편의 일, 아내의 일 구분하지 말고 서로가 이심전심(以心傳心)이라면, 어떠한 고난이 닥치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목적지까지 의지하며 즐거운 마음으로 갈 수 있을 것이다. 말의 운명은 달리는 것이고, 사람의 운명이란 포기 하지 않고 권리와 의무를 다하며 사랑을 축으로 죽는 날까지, 깨달음을 통해 정진하는 것이 사람답게 사는 길일 것이다.

중국 후안 광무황제 누이 인 호양공주가 과부가 되었다. 광무제는 누나를 재혼시킬 의향으로 물었더니, 대사공으로 있는 송 홍 같은 사람이면 시집을 가고 싶다했다. 그래서 병풍 뒤에 누이를 숨겨놓고 송 홍과 대화를 나누었다. “지위가 높아지면 친구를 바꾸고, 집이 부해지면 아내를 바꾼다 ”하는데 그럴 수 있는 일인지 물었다. “신은 가난하고 천했을 때의 친구는 잊어서는 안 되고, 지게미와 쌀겨를 먹으며 고생한 아내는 집에서 내보내지 않는다."고 들었습니다. 이 말을 듣고 광무제는 누님이 있는 쪽을 돌아보며 말했다. “일이 틀린 것 같습니다. 그 임금에 그 신하다. 이처럼 무엇이 옳으며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할 것을 가려할 때만이 사람답다 할 수 있으리.

요즘은 이처럼 조강지처(糟糠之妻)도 서슴지 않고 내 쫓고 본 남편도 능력이 없으면, 하루아침에 거리로 내쫓는 일이 부지기수다. 헷갈리는 세태다. 사람이 우선이 아니고 사람도 기계처럼 고장이 나면 버리는 세상이, 참으로 무섭고 두렵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살다보면 아무리 사람답게 살려고 해도 부부가 뜻이 맞지 않으면 참으로 피곤한 생활이 되기 쉽다. 의사 소통이 되지 않으면 모든 것은 부패하여 썩기 마련이다. 음식이나 사람도 오해가 쌓이면 불신을 낳고, 불신이 깊어지면 모든 성벽이 무너진다. 믿지 않으면 한순간도 불안해서 살 수가 없는 세상이다. 틈이 벌어지면 균열이 생겨 이별하게 되고 결국에는 죽음도 가져오는 경우를 주위에서 종종 볼 수 있다.

부부라며면,서로가 작은 것일지라도 대화를 나누어 오해를 남기지 말아야 하며, 투명하게 자신의 감정을 상대에게 알려야 한다. 그리고 희망 사항도 알아듣기 쉽게 설명해야 한다. 사람은 모두 자기 위주로 생각하고 행동한다. 말하지 않으면 상대의 감정을 샅샅이 알 수 없는 것이 상대의 마음이다. 그리고 실수를 했으면 공손히 인정하고 사과해야 한다. 그래야만 앙금이 남지 않는다. 생활 속에 신뢰가 쌓여 세월이 강물처럼 흘러가면, 친구처럼 말하지 않아도 눈빛만 보면 상대의 마음을 읽을 수 있게 된다.

나그네 길위를 걷다보면 돌부리에 넘어지고, 높은 산을 만나면 깊은 좌절감을 느껴 피하고 도망가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人之常情)이다. 그럴때는 뜻을 모아 산을 넘고 나면, 깊은 사랑과 연민도 생긴다. 그래서 부부가 오래 살다보면 측은지심이 생기는 것이다. 남편 머리가 하얗게 센 것을 보면 내 머리도 서리가 내렸음을 알수 있고, 코를 골며 자는 모습도 삶에 지친 피로의 종(鍾)이라 생각되면, 마음이 저리고 짠하다. 친구 간에는 문경지교(刎頸之交)의 우정이 으뜸이라면, 부부의 정은 조강지처(糟糠之妻)를 아끼는 측은지심의 마음 일 것이다.

그 마음 위에 희망처럼, 서로를 인정하고 이해하는 깊은 마음이 백아절현(伯牙絶絃)의 고사가 나의 심금을 울린다. 부부도 이 구절을 알고 행하고 산다면, 부부는 죽어서도 서로 행복 할 것 같다. 이 시대의 참 부부상은, 행동에는 상대를 애마(愛馬)가 내 몸처럼 여기고, 마음으로는 백아절현 같은 진정성을 가진다면, 죽어서도 해로동혈(偕老同穴) 할 수 있을 것이다. 죽음마저도 함께 가고픈 부부맹세를 하는 이는, 참으로 행복한 삶을 살았다 할 수 있으리. 한번쯤 곱씹어 볼 일이다. 아내들은 어려운 고비를 만나더라도 남편의 따뜻한 말 한마디로, 에베레스트 산같은 앙금도 녹일 수 있는 존재다. 그런 것을 알면서도 알량한 자존심 때문에, 남편들은 구렁이 담 넘어 가듯 무심한 마음에 상처를 받곤 하는 것이다.

"말을 해야 맛이고, 사랑은 품어야 맛이다." 는 속담도 있지 않던가. 살면서 나도, 몇 고비를 만나 넘어지고, 일어 날 때마다 나를 감동 시켰던 일들을 떠올리곤 하며 마음을 바로 잡았다. 옥이 산에 있으면 풀과 나무가 윤택하고, 선을 행하고 악한 말로 남에게 상처 주는 말을 하지 않는다면, 어찌 명성이 들리지 않겠나? 참고 살아 온 고난의 세월은 시간이 흘러도 진실 된 마음은 상대의 가슴에 고스란히 남아 있는 것이다. 믿음을 저축하면 삶은 진주처럼 고귀해지는 것이다.

남편을 만난지가 벌써 이십 년이 흘렀다. 아내가 철없이 정화 되지 않는 언행으로 벽을 향해 치는 정구공처럼 속사포를 쏠 때에도 비난하지 않고, 야생마도 훈련을 통해 언젠가 명마가 된다며 말없이 기다리고 인정해 준 한 마디 말 속에서, 좀더 참고 살아왔지 않나 싶다. 지금의 나를 낳아준 것은 부모지만, 나를 끝까지 믿어주고 깨닫도록 당근과 채찍을 주며, 나의 천성과 재능을 인정해 준 남편이 지금은 오히려 고마울 뿐이다. 야생마를 길들이는 심정으로 살았다는 관용이 부끄러움으로 남는다.

살면서 문득문득 만나는 야성(野性)때문에 손해를 보지만, 순수를 잃어버리고 나쁜 습성을 정당한 것처럼 반복하는 사람을 만나면, 참기가 힘이 들 때가 많다. 하지만 그것도 아직 미숙한 본성이니, 다듬고 다듬어 도를 마음에 끝없이 심으며, 자제해야 함도 늘 깨닫고 살아간다. 나의 부덕의 소치는 평생을 다듬고 고쳐야 할 삶의 화두이기도하다. 현실의 부부 론은, 소통의 정(情)이 냇물처럼 흘러 바다에 이를 때까지, 흐름을 멈추지 말아야 하리라. 중국 양홍의 훌륭한 저술은 가화만사성에서 이룩된 업적인 것이다. 그 만큼 부부는 가정의 축이다. 모든 것은 가정에서 시작해서 끝나는 삶의 정점이다.

성경에도 부부사이를 남편은 아내를 예수가 교회를 사랑하듯 하고, 아내는 남편을 교회가 주님을 받들듯 하라 했다. 부부의 처음은 믿음이고 끝은 존경심에 있다. 거안제미(擧案濟眉)는 아닐지라도 무관심으로 상대를 냉대하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하리라. 무관심은 상대방에게 살아가야 할 마음의 불씨를 꺾는 일이다. 집에서 대우 받지 못한 이는, 밖에서도 대우를 받지 못한다. 부부는 이 땅에 협력하여 이루어야 할 지상과제를 부여 받은 삶의 뿌리로 온 것이다. 뿌리가 건강하지 못하면 나무는 좋은 열매를 기대하기 어렵다. 모두가 자신의 소임으로 바쁜 세상, 서로 협력하며 마음의 등불을 함께 밝혀 부여된, 삶의 농장을 더욱 충실히 돌볼 일만 남은 것이리.

[모셔온글 : 스토리문학관 "박찬란"님]

 

출처 : 요수의 아름다운 사람과 세계
글쓴이 : 행운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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