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석구 시작법 연재16
'자, 떠납시다, 시의 여행을'' |
2001-07-13 제16강
* 우리 형님
<대상인식>
당신은 직장 어르신과 매우 가까운 사이였습니다. 그분이 어르신이 되기 전까지는 어르신은 형이 되었고, 당신은 동생이 되어 그런 대로 즐겁게 지냈습니다. 당신은 일을 맡으면 힘차게 밀고 나가는 형님의 뚝심을 좋아했습니다. 어르신이 되면 당신의 좋은 길잡이가 될 것이라는 믿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그가 추진하는 모든 일에 협조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분은 어르신이 되더니 갑자기 변해 버렸습니다. '내가 언제부터 너의 형이었냐?'며 시치미를 뚝 떼어버리는 것이었습니다. 당신은 실망했고, 분노했습니다. 그분에게 속았다는 생각이 들어 슬펐습니다. 어르신이 된 뒤의 그가 하는 짓거리를 보고 그때까지의 그의 행동은 그 자리에 올라가기 위한 수단이었을 뿐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때부터 당신은 그분을 황송하게도 마음 밖에 던져 버렸습니다.
그런 어르신의 모습이 온갖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주지 자리에 올라간 후, 시치미 뚝 떼고 큰소리만 탕탕 치며, 잿밥에만 마음을 빼앗긴 어느 스님과 같다는 생각이 언뜻 들었습니다. 그래서 어르신의 모습을 주지스님에 빗대어 다음과 같이 상상해 봤습니다.
'형님은 뚝심 하나만 가지고 주지자리에 올라앉게 되었는데, 자기의 흉을 감추기 위해서인지, 눈을 부릅뜨고, 우리들의 자존심을 깔아뭉개며, 매사에 호령을 하면서 부처님 흉내를 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런 형님에 대해 아무 관심이 없고, 형님이 어서 빨리 이 절을 떠날 날만 기다리며 삽니다.'
그대로 보기와 빗대어보기를 바탕으로 하여 상상하여 본 것입니다. 너무 엉뚱하지요? 그러나 엉뚱한 것이 상상입니다.
<인식내용 정리>
① 형님은 뚝심 하나만 가지고 주지스님이 되었는데, ②눈을 부릅뜨고 우리들의 자존심을 깔아뭉개며 ③ 호령을 하면서 부처님의 흉내를 내고 있습니다. ④ 그러나 나는 그런 형님의 소리에 아무 관심이 없고 ⑤ 모든 것을 세월에 맡기고 형님이 이 절을 떠날 날만 기다리며 삽니다.
<구성>
①은 1연, ②와 ③은 2연, ④는 3연 ⑤는 4연으로 구성해 봅시다.
형님은 뚝심 하나만 가지고
주지 스님이 되었는데
눈을 부릅뜨고
우리들의 자존심을 깔아뭉개며
부처님 흉내를 내며 호령하지만
나는 그 소리에 관심이 없고
모든 것을 세월에 맡기고
형님이 이 절을 떠날 날만 기다리며 산다.
틀이 짜졌습니다. 다음은 형상화.
<형상화, 퇴고>
1연
형님은 뚝심 하나만 가지고
주지 스님이 되었는데
문장 성분의 순서를 바꿔 보는 것도 시행을 다듬는 방법. 한 번 바꿔 다듬어 봅시다.
뚝심하나만 가지고
주지 자리에 올라앉은 우리 형님
여기에서는 간단히 정리했지만, 사실은 여러 방법으로 바꿔 보고, 그 중 맘에 맞는 것을 골라야 합니다.
2연
눈을 부릅뜨고
우리들의 자존심을 깔아뭉개며
부처님 흉내를 내며 호령하지만
1행에서 '눈'을 어떻게 부릅떴습니까? 시어의 의미를 강조해 보자는 겁니다. 이것도 구체화하기. 그러기 위해서는 수식어 '딱'을 덧붙여 보는 것이 어떨까요?
눈 딱 부릅뜨고
우리들의 자존심을 깔아뭉개며
부처님 흉내를 내며 호령하지만
2행의 '자존심을 깔아뭉개며'를 '자존심을 깔고 앉아'로 고쳐 보면 어떨까요? 3행의 '부처님 흉내를 내며'와 어미 '∼며'가 겹쳐 낭송해 보면 이상하니까. 이렇게 되면 추상어인 '자존심'을 '방석'과 같은 모습으로 떠올릴 수도 있겠지요?
눈 딱 부릅뜨고
우리들의 자존심을 깔고 앉아
부처님 흉내를 내며 호령하지만
3행의 '부처님 흉내를 내며'도 구체화하여 '부처님 뼉다귀를 고아먹은 것처럼'으로 바꿔 보면 어떨까요? 이렇게 바꾸려면, 많은 경험과 상상력이 바탕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걱정하지 마십시오. 시간이 모든 것을 다 해결해 줄 테니까.
눈 딱 부릅뜨고
우리들의 자존심을 깔고 앉아
부처님의 뼉다귀를 고아먹은 것처럼 호령하지만
3행의 '호령하지만'을 부처님과 연관시켜 생각해 봅시다. '부처님의 말씀'을 무어라고 합니까? '사자후'. 이것을 쉽게 풀면 '사자 울음'. 그렇다면 형님의 호령은 사자울음입니까, 사자울음을 흉내내는 것입니까? 흉내내는 거지요? 정리해 보면, '사자 울음을 흉내내지만'으로 바꿀 수 있지요?
눈 딱 부릅뜨고
우리들의 자존심을 깔고 앉아
부처님의 뼉다귀를 고아먹은 것처럼
사자울음 흉내내지만
한 행이 늘었지요? 형상화와 퇴고 과정에서 시의 행이 길면 이렇게 행을 나눌 수 있습니다. 이젠 낭송해 봅시다. 좀 어색하지요? 5행이 다른 행과 잘 어우러지지 않은 것 같습니다. 5행에 시어를 첨가해야 될 것 같지요? 어떤 말을 넣어야 할까요? 이럴 때 필요한 것은 자문자답.
형님은 사자울음을 가끔 흉내냅니까, 자주 흉내냅니까? 자주. '자주'를 다시 한 번 구체화하면 '밤낮으로'가 될 수 있겠지요?
눈 딱 부릅뜨고
우리들의 자존심을 깔고 앉아
부처님의 뼉다귀를 고아먹은 것처럼
밤낮으로 사자울음 흉내내지만
3연은
나는 그 소리에 관심이 없고
'그 소리에 관심이 없다'는 말은 '내 마음이 딴 곳에 있다는 말'. 당신은 지금 절 안에 있습니다. 그렇다면, '내 마음'은 어디에 있을까요? '절 밖'.
절 밖으로 달아난 내 마음은 무엇이 되었을까요? '나무'. 정리하면 '절 밖의 나무'. 왜, 나무일까요? 주지 스님의 일에 관심을 두지 않고 사니까. 무엇이 되었는가를 결정하는 것은 당신의 자유입니다. 정리해 봅시다.
내 마음은 절 밖의 나무
어떤 나무일까요? 이것도 구체화하는 방법. 앞에서 주지 스님의 일에 관심을 두지 않고 산다고 했으니까, '눈감은 나무'라고 하면 어떨까요?
내 마음은 절 밖의 눈감은 나무
4연은
모든 것을 세월에 맡기고
형님이 이 절을 떠날 날만 기다리며 산다.
1행의 '세월'을 구체화해 봅시다. 세월은 지나가는 것. 그러나 잡을 수 없는 것. 무엇에 빗댈 수 있을까요? '바람'. 어떤 바람입니까? '지나가는 바람'.
이젠 '모든 것'을 구체화하여 봅시다. 구체화는 추상적인 것을 대신하여 구체적인 대상이나 사물을 제시하는 것입니다. 당신은 지나가는 바람에게 무엇을 맡기고 삽니까? '몸'.
왜, 몸일까요? 앞에서 마음은 이미 절 밖으로 달아나 나무가 되었다고 했으니까, 남은 것은 몸뿐이지요? 이제 당신의 마음은 나무가 되어 '지나가는 바람에 몸을 맡기고' 삽니다.
지나가는 바람에게 몸을 맡기고
형님이 이 절을 떠날 날만 기다리며 산다.
2행을 '형님이 이 절을 떠날 날을 기다리며 산다.'를 다르게 바꿔 볼까요? 그럼, 당신이 당신에게 물어 보십시오. 당신은 지나가는 바람에게 몸을 맡기고 무엇을 하며 삽니까? 형님이 떠날 날을 기다리며. 말을 바꾸면, '형님의 소리가 들리지 않을 날을 기다리며' 산다는 말이 되겠지요?
그렇다면, 당신의 귀엔 '형님의 소리'가 무슨 소리로 들립니까? '파리소리'. 왜, 파리소리입니까? 쫓아도 쫓아도 들려오는 성가신 소리이니까. 그 파리소리 어떻게 하겠습니까? 쫓아야지요? 그렇다면 당신은 '지나가는 바람에게 몸을 맡기고' 무엇하며 삽니까? '파리 소리 쫓으며'.
지나가는 바람에게 몸을 맡기고
파리소리 쫓으며 떠날 날만 기다리며 산다.
파리 소리를 쫓으며 무엇을 하겠습니까? 형님이 떠날 날을 기다리며 세월을 보내겠지요? '떠날 날을 기다리며 산다.'는 말은 '세월을 보내며 산다.' 이것을 다르게 표현해 보면 '계절을 난다.'로 바꿀 수 있겠지요?
지나가는 바람에게 몸을 맡기고
파리 소리 쫓으며 계절을 난다.
시어는 이와 같이 형상화 단계에서 전혀 다르게 변하는 수가 많습니다. 시는 심리적 작용이 복합적으로 일어나 쓰여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시어가 변화는 과정을 명쾌하게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오래오래 시구들을 가슴에다 녹이는 것입니다. 그러면 멋진 시구가 가슴속에서 저절로 울어 나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전체를 모아 봅시다.
뚝심 하나만 가지고
주지 자리에 올라앉은 우리 형님
눈을 딱 부릅뜨고
우리들의 자존심을 깔고 앉아
부처님의 뼈다귀를 고아먹은 것처럼
밤낮으로 사자 울음 흉내내지만
내 마음은 절 밖의 눈감은 나무
지나가는 바람에게 몸을 맡기고
파리 소리 쫓으며 계절을 난다.
한 편의 풍자시를 써 봤습니다. 개구리 몰라본 올챙이의 뼈아픈 마음을 비꼬아서 표현한 시입니다.
출처:http://myhome.shinbiro.com/~sukg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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