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석구 시작법 연재13
2001-07-10 제13강
* 유채밭에서
<대상인식> 유채꽃들이 온 들판을 노랗게 물들이고 있었습니다. 나비들이 여기저기 날아다녔습니다. 너무도 아름다워 가슴이 벅찼습니다. 유채꽃이 방긋 웃고 있는 그 옛날의 소녀 같았습니다. 그래서 유채꽃에게 물었습니다.
'나비가 뭐라고 했기에 그렇게 웃느냐?'
유채꽃은 웃기만 했습니다. 그러다가 당신도 그만 웃고 말았습니다. 아마 자꾸만 불어오는 바람 때문인 것 같지요? 웃고 나니, 당신은 왠지 모르게 부끄러워졌습니다.
어느 봄날, 차창 밖으로 보이는 유채꽃밭을 보고 어린 시절을 생각하면서 유채꽃을 의인화하여 상상해 본 것입니다.
< 인식내용 정리> 정리할 때는 시 쓰는 데 필요한 것만을 골라 정리해야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내용이 산만하여 시 쓰기가 어려워집니다.
①나비가 뭐라 했기에 그렇게 웃느냐고 유채꽃에게 물었습니다. ②꽃들은 물어도 물어도 웃기만 했습니다. ③그런데 자꾸만 불어오는 바람 때문에 나도 그만 웃어 버렸습니다. ④왠지 모르게 부끄러웠습니다. <구성> ①, ②, ③, ④를 각각 한 연으로 합니다.
나비가 뭐라 했기에 그렇게 웃느냐고 유채꽃에게 물었습니다.
꽃들은 물어도 물어도 웃기만 했습니다. 그러다가 자꾸만 불어오는 바람 때문에 나도 그만 웃어 버렸습니다.
왠지 모르게 부끄러웠습니다.
사건의 변화에 따라 연을 구분했습니다. <형상화, 퇴고>
1연
나비가 뭐라 했기에 그렇게 웃느냐고 유채꽃에게 물었습니다.
꽃에게 직접 묻는 형식으로 다듬어 봅시다. 그렇다면 서정적 자아는 1인칭 '나', 꽃은 2인칭 '너희'가 되겠지요? 물어 보십시오. 왜, 웃느냐고.
나비가 뭐라 했기에 너희는 그렇게 웃는 것이냐.
정리되었지요? 그런데 1행과 2행이 균형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것은 소리내어 읽어보면 알 수 있습니다. 음보가 고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균형을 맞추는 것은 시어를 첨가, 생략, 두 개 이상의 시어를 하나로 압축하는 방법 등이 있습니다. 이것이 운율 고르기입니다.
1행에 시어 하나를 첨가하는 것이 좋겠지요? 이 말 저 말을 넣어보는 것은 당신의 자유. '방금'을 넣으면 어떨까요? 대상인식 내용을 보면, 나비가 날고 있는 것은 현재 상황이니까. 마음에 들면 알맞은 위치에 넣어 정리해 봅시다.
나비가 방금 뭐라 했기에 너희는 그렇게 웃는 것이냐. 2연
꽃들은 물어도 물어도 웃기만 했습니다.
1행의 '꽃들은'은 이미 암시되어 있으니까 생략합시다. 그렇다면, 1행은 '물어도 물어도'.
2행도 1행이 반복법이 사용되었으니까 균형을 맞추기 위해 시어를 반복해 봅시다. '웃기만 하고 웃기만 하고'로 바꾸면 좋을 것 같지요? 이것이 시의 음악성입니다. 시가 노래가 되게 하는 바탕입니다. 이것은 시어 고르기와 운율 고르기에 의한 변화입니다.
물어도 물어도 웃기만 하고 웃기만 하고
그래도 1행과 2행이 균형이 이루어지지 않지요? 글자수가 고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다시 한 번 운율 골라야겠지요? 1행과 2행 중 어느 것을 바꿀까요? 1연과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는 1행을 바꾸어야지요? 2행이 4어절이니까 1행도 4어절로 바꾸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물어 보아도 물어 보아도'로 고치면 되겠지요?
물어 보아도 물어 보아도 웃기만 하고 웃기만 하고 3연
그러다가 자꾸만 불어오는 바람 때문에 나도 그만 웃어 버렸습니다. 1행을 형상화하여 봅시다. 바람이 어떻게 불어옵니까? 색깔을 한 번 넣어 볼까요? 이것이 시각적 심상. 유채꽃은 노랗게 피어 있지요?. 자, 바람은 어떤 색깔로 불어옵니까? 노랗게 불어오죠? 정리하면, '노랗게 불어오는 바람 때문에'.
'불어오는'을 '노랗게'와 어울리게 바꿔야겠지요? 그렇다면, '불어오는'도 시각적으로 심상화하여 '번져오는'으로 바꿀 수 있겠지요? 정리해 보면 '노랗게 번져 오는 바람 때문에'.
'때문에'는 다른 시어 바꿀 수 없을까요? 보다 생동감이 있는 시어를 찾아봅시다. '밀려'로 바꾸면 어떨까요? 정리하면, '노랗게 번져오는 바람에 밀려'.
시어를 바꿀 때는 될 수 있으면 동사나 형용사로 바꾸는 연습을 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래야 시가 생동감이 있습니다.
2행은 그냥 부드러운 어조 '나도 그만 웃고 말았지'로 바꾸면 됩니다.
그런데 자꾸만 노랗게 번져오는 바람에 밀려 나도 그만 웃고 말았지.
역시 균형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이젠 1행의 시어를 생략해야겠지요? '그런데'와 '자꾸만'을 생략하면 좋을 것 같지요? 마음으로 읊어 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필요 이상의 시어니까.
노랗게 번져오는 바람에 밀려 나도 그만 웃고 말았지. 4연
왠지, 모르게 부끄러웠습니다.
당신은 부끄러우면 어떻게 합니까? '눈을 감지요'. 이것도 구체화. 정리해 봅시다. '왠지, 부끄러워 눈을 감았습니다'. 이젠 어조만 앞 연과 어울리게 맞추면 되겠지요?
왠지, 부끄러워 눈을 감았지.
모아 봅시다.
나비가 방금 뭐라 했기에 너희는 그렇게 웃는 것이냐.
물어 보아도 물어 보아도 웃기만 하고 웃기만 하고
노랗게 번져오는 바람에 밀려 나도 그만 웃고 말았지.
왠지, 부끄러워 눈을 감았지.
노란 색깔이 번지는 화선지 속을 사람 아닌 사람이 되어 거니는 느낌을 주는 시가 되었습니다. 꽃과 나비의 아련한 사랑을 노래한 시. 그것을 훔쳐 본 당신은 이제 열 여섯 살의 소년이 되어 그 옛날의 소녀를 그리워할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