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석구 시작법 연재12
2001-07-9 제12강
* 돌산 앞 바다에서
<대상인식> 겨울 바다를 찾아갔었습니다. 날씨가 매우 맑고 바람도 불지 않았습니다. 바다 멀리 섬들이 보이고, 섬 기슭 여기저기에 배들이 닻을 내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새들이 바다 밖으로 날아가고 있었습니다. 당신도 새들처럼 날고 싶었습니다.
여기까지가 대상인식하기입니다. 대상인식 내용은 줄거리를 엮어 옮겨야 합니다. 줄거리가 기행문 형식이 되었지요? <인식내용 정리> 당신의 눈에 보이는 대상들 중 필요한 것만을 골라 나열해 봅시다. 이것이 소재 선택입니다. 당신의 느낌과 생각을 드러내기에 좋은 소재만 선택하여 당신의 질서에 맞게 정리하면 됩니다. ① 잔잔한 바다가 있습니다. ② 멀리 섬들이 보입니다. ③ 섬 기슭 여기저기에 배들이 닻을 내리고 있습니다. ④ 새들이 바다 밖으로 날아갑니다. ⑤ 나도 새처럼 날아가고 싶었습니다.
밑그림은 그려졌습니다. 시상이 엮어졌다는 말입니다. 그렇다고 눈에 보이는 것을 다 그린 것은 아닙니다. 마음에 집히는 것들만 모은 것입니다. 이것이 소재(글감)의 선택. 당신의 인상과 정서를 표현하기 위해 필요한 소재만을 고른 것입니다.
<구성> 구성하기는 정리된 내용의 순서를 당신의 의도에 따라 바꾸는 것을 말합니다. 그림을 그릴 때, 화가가 그림의 소재들을 자기 의도에 따라 재배치하거나 필요에 의해 소재를 삭제, 첨가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①과 ②를 1연, ③을 두 행으로 나누어 2연, ④를 3연, ⑤를 4연으로 구성해 봅시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연을 구분하는 기준은 여러 가지입니다. 여기에서는 소재와 정서를 기준으로 하여 나누었습니다.
잔잔한 바다가 있습니다. 멀리 섬들이 보입니다.
섬 기슭 여기저기에 배들이 닻을 내리고 있습니다.
새들이 바다 밖으로 날아갑니다.
나도 새처럼 날아가고 싶습니다.
4연으로 구성하였습니다. 1, 2, 3연은 소재에 의해 4연은 정서에 의해 나눈 것입니다.
<형상화> 형상화의 방법은 앞에서 이야기했지만 시어 고르기, 구체화하기, 표현기교 사용하기, 심상화, 음조 고르기 등이 있습니다.
유의할 점은 필요 이상의 형상화는 피해야 좋은 시가 된다는 것입니다. 지나친 형상화는 빈약한 여인이 옷만 잔뜩 껴입은 것과 같습니다. 입을 것은 입고, 벗을 것은 벗어야 여인의 아름다움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1연
잔잔한 바다가 있습니다 멀리 섬들이 보입니다.
두 행을 다시 정리하여 요약할 수는 없을까요? 형상화를 하기 전에 문장을 압축해 보는 것이 기본입니다. 요약해 봅시다.
바다 멀리 섬들이 보입니다. 이제 형상화해 봅시다. '섬'은 무엇과 같습니까? 빗대어 보기도 형상화의 한 방법. '섬'이 멀리 보이지요? 멀리 보이는 것은 그리움의 속성을 가지고 있지요? 그럼, 지금 당신이 지금, 그리워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고향'. 그렇다면, '섬'은 무엇처럼 바다 위에 있습니까? 섬은 '고향처럼' 바다 위에 있지요? '섬'은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앉아 있습니까? 서 있습니까? '앉아 있죠?' 정리해 봅시다.
멀리 섬들이 바다에 고향처럼 앉아 있습니다.
2연
섬 기슭 여기 저기에 배들이 닻을 내리고 있습니다.
'배'는 어떤 배일까요? '고깃배'. 이것은 구체화하기 중, 구체어로 바꾸기. 섬 기슭 여기저기에서 고깃배들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닻을 내리고' 있지요? '닻을 내리고' 무엇을 합니까? 그것을 알기 위해 '배'를 다른 대상에 빗어 보면 어떨까요? 빗대어 보기는 형상화의 기본이라고 말했습니다. 빗대어 보기 중에서 대상을 의인화시켜 보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고깃배'를 '사람'으로 빗대어 봅시다. 그럼, 고깃배는, 아니 사람은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상상력을 펴기 위해 당신의 추억 속의 이야기를 예로 들어봅시다. 농부들이 점심을 먹은 후에 무엇을 합니까? 낮잠을 자죠? 그렇다면, 지금, 일을 끝낸 고깃배들은 섬 기슭에서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낮잠을 자고 있겠죠? 정리해 봅시다.
섬 기슭 여기저기에서 고깃배들이 낮잠을 자고 있습니다.
3연
새들이 바다 밖으로 날아갑니다.
'새'를 형상화해 봅시다. 새는 어떤 새입니까? 이렇게 묻는 것도 구체화하는 방법입니다. '갈매기'. 갈매기가 몇 마리나 됩니까? 이것 또한 구체화의 방법. '갈매기 서너 마리'. 정리해 봅시다.
다음은 '바다'입니다. '바다'의 풍경을 한 마디로 말한다면 어떻습니까? 아름답지요. 아름다운 것을 우리는 무엇과 같다고 합니까? '그림'. 이젠 '바다'가 '그림'이 되었습니다. 정리해 봅시다.
갈매기 서너 마리가 그림 밖으로 날아갑니다.
4연
나도 새처럼 날아가고 싶습니다. 이제 '새'는 '갈매기'입니다. '나도 갈매기처럼 날고 싶다,'로 바꿀 수 있습니다. 이것을 더 구체화시킬 수 없을까요? '갈매기처럼 날고 싶다.'란 말이 나타내는 뜻은 무엇일까요? 자유롭게 살고 싶다는 말이 아닐까요?
'자유'란 어떤 뜻의 말일까요? 남의 구속을 받지 않는다는 뜻의 말이지요? 지금, 당신이 자유를 원한다는 것은 구속을 받고 있다는 말입니다.
'구속'이라는 말을 구체화하면 '울타리'로 바꿀 수 있겠지요? 울타리가 없으면 자유. 자유로운 삶을 구체화하면 '울타리 없는 삶'이 되겠지요? 어순을 약간만 바꾸어 정리하면 됩니다.
나도 울타리 없는 삶을 갈매기처럼 살고 싶었습니다.
모아 봅시다.
멀리 섬들이 바다에 고향처럼 앉아 있습니다.
갈매기 서너 마리가 그림 밖으로 날아갑니다.
섬 기슭 여기저기에서 고깃배들이 낮잠을 자고 있습니다. 나도 울타리 없는 삶을 갈매기들처럼 살고 싶었습니다.
<퇴고> 아직 다듬어지지 않았지요? 운율이 너무 불규칙적이고 시행들간의 균형이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다시 한 번 다듬어 봅시다. 1연
멀리 섬들이 바다에 고향처럼 앉아 있습니다.
퇴고에서 맨 처음 시도해야 하는 것은 압축. 압축할 때는 우선 서술어를 생략하는 방법을 생각해 보는 것이 좋습니다. 서술어를 생략해 봅시다. 어순이 바꾸어지겠지요?
멀리 섬들이 고향으로 앉은 바다
'고향처럼'을 '고향으로' 바꾸었습니다. 직유가 은유로 바꾼 것입니다. 이런 식의 변화는 형상화와 퇴고 과정에서 흔히 일어나는 일입니다.
2연
섬 기슭 여기 저기에서 고깃배들이 낮잠을 자고 있습니다.
앞 연에서 '섬'이라는 시어가 사용되었으므로 동어반복을 회피하기 위해 '섬 기슭'을 생략해도 되겠지요?
여기 저기 고깃배들 낮잠을 자는데
3연
갈매기 서너 마리가 그림 밖으로 날아가고 있었습니다.
이것도 어순을 바꾸고 서술어를 생략해 봅시다.
그림 밖으로 날아가는 갈매기 서너 마리
이처럼 어순의 변화는 시의 분위기를 바꾸어 줍니다. 그런데 시를 변화시키는 능력은 시를 쓰다 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생기게 됩니다.
4연
나도 울타리 없는 세상을 갈매기들처럼 살고 싶었습니다.
이젠 당신의 심정을 갈매기에게 털어놓는 형식으로 고쳐 봅시다. '갈매기'는 앞 연에서 사용한 시어이니까 의인화시켜 '너희'로 바꾸면 좋을 것 같지요? 의인화는 자연과의 친근감을 느끼게 해 줍니다. 이것도 동어 반복을 회피하는 방법입니다. '나'와 '너희'가 대비 되어 더욱 좋습니다.
나도 울타리 없는 삶을 너희처럼 살고 싶다.
모아 봅시다.
멀리 섬들이 고향으로 앉은 바다
여기 저기 고깃배들 낮잠을 자는데
그림 밖으로 날아가는 갈매기 서너 마리
나도 울타리 없는 삶을 너희처럼 살고 싶다.
그런 대로 맛이 나는 시가 되지 않습니까? 이와 같이 시는 쓰고, 고치고 다시 쓰는 과정에서 당신의 상상력이 작용하여 변모하는 것입니다. 이 시의 표현방법은 묘사가 중심이 되었습니다. 1, 2, 3연은 묘사, 4연은 진술입니다. 이처럼 시는 묘사와 진술이 적절히 조화를 이루어서 표현되어야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