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석구 시작법 연재11
2001-07-7 제11강 지금까지 우리는 간단한 차림으로 여행 연습을 했습니다. 이제 우리는 조금은 멀고 긴 시의 세계를 찾아가기로 합시다. 내가 여행한 길을 당신과 함께 다시 가 보자는 것입니다. 당신은 여행자, 나는 안내자입니다. 그래서 모든 설명을 당신 입장에서 하겠습니다. 자, 떠납시다, 시의 여행을. 시의 여행이란 시를 쓰는 과정을 함께 가보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시작의 과정을 ①대상인식 ②인식내용 정리 ③구성 ④ 형상화 ⑤퇴고, 이렇게 5단계로 나누어 보겠습니다. * 풀을 뽑다가 우리가 꽃을 보았을 때, 우리는 눈을 통해 그것을 봅니다. 그리고 느낍니다. 그 다음으로 그 꽃이 아름답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느낌과 생각이 동시에 일어나는 것 같지만 사실은 '대상 → 봄 → 느낌 → 생각'의 과정을 거치게 됩니다. 이 때 대상을 보고, 느끼고, 생각하는 것이 대상 인식하기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대로보기, 빗대어보기, 상상하여보기를 통해 인식된 것을 될 수 있으면 한편의 짧은 이야기, 한 폭의 그림으로 엮어 보는 것입니다. 이것을 바탕으로 하여 시를 쓰면 조금은 쉽게 쓰여지기 때문입니다. 시를 감상할 때도 시를 읽고 한 편의 이야기, 한 폭의 그림으로 꾸며 보는 것이 좋습니다. 어느 여름날이었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잔디밭의 풀을 뽑고 있는데, 한 아이가 당신에게 물었습니다. 여기까지가 인식하기입니다. 당신이 직접 겪은 일을 짧은 이야기로 다듬어 본 것입니다. < 인식 내용 정리> ①잔디밭의 풀을 뽑다가 아이들의 질문에 그만 멍해지고 말았다. ②'어떤 것이 잔디이고, 어떤 것이 잡초냐'고 ③정말로 알지 못해 묻는 것 같은데, '당신은 잔디입니까? 잡초입니까?' 하고 묻는 것만 같아 눈을 감았다. ④그래서 나는 나에게 물어 봤다. '나는 잔디냐, 잡초냐'고. ⑤ 그리고 억지 웃음으로 농담처럼 얼버무려 대답을 했다. ⑥'너희처럼 생긴 것이 잔디이고, 나처럼 생긴 것이 잡초'라고. ⑦그러나 가슴속에는 그 질문이 그대로 남아 나를 괴롭혔다. 이 과정에서도 퇴고는 해야 됩니다. 퇴고는 모든 과정에서 이루어져야 좋은 시가 됩니다. 그리고 이 인식내용 정리에서 주된 표현 방법이 결정됩니다. 묘사가 중심이 되느냐, 진술이 중심이 되느냐가 결정된다는 말입니다. 대상을 인식하는 당신의 태도가 글의 성격을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이 글은 당신의 마음을 고백한 독백적 진술이 중심이 되겠지요? <구성> 잔디밭의 풀을 뽑다가 어느 것이 잔디이고 그래서 내가 나에게 물었다. 그러다가 그놈에게 대답을 했다. 그러나 가슴속에는 구성하기가 끝났습니다. 인식 내용 정리하기를 당신의 순서에 맞게 연과 행을 구분하여 구성했습니다. 연은 생각의 변화에 따라 나누었습니다. 행은 당신의 호흡에 따라 2음보, 3음보, 4음보로 나누는 것이 좋습니다. 그런데 이 연과 행은 형상화 과정에서 당신의 뜻에 따라 얼마든지 바꿀 수 있습니다. ①시어 고르기는 문맥상 어울리지 않은 시어를 다른 말로 바꾸는 것과 시어를 첨가, 또는 생략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추상적인 문장을 구체적인 행동이 드러나는 문장으로 고치는 것도 여기에 속합니다. 예를 들면 '사랑한다'를 '나는 너에게 한 송이의 장미꽃을 선물하고 싶다.'로 바꾸는 것과 같습니다. 수식어로 꾸미기는 하나의 시어를 보다 구체적으로 만들기 위해 수식어를 덧붙이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하늘'이란 시어를 '붉게 물드는 하늘'이라고 구체화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이때 '붉게 물드는'가 수식어입니다. ⑤운율 고르기는 시를 낭송하기에 좋게 운율 맞추는 것을 말합니다. 이 때의 운율은 정형률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당신의 가락에 맞추어 낭송하기 좋게 다듬으면 운율이 맞는 것입니다. 위의 방법들이 한꺼번에 사용되는 것은 아닙니다. 당신의 필요에 따라 적절하게 사용하면 됩니다. 그리고 이 방법들은 서로 분리된 것이 아니고, 서로 긴밀한 관계를 가지고 있어 한 시어나 한 시구에 복합적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그럼, 형상화하여 봅시다. 1연 잔디밭의 풀을 뽑다가 3행의 '그만 멍해지고 말았다.'는 추상적이지요? 추상적인 말로는 대상을 실감할 수가 없습니다. 실감할 수 없다는 것은 감동을 받을 수 없다는 것. 그래서 구체어로 바꿔 감동을 불러 일으켜야 합니다. 잔디밭의 풀을 뽑다가 2연 어느 것이 잔디이고 1행과 2 행은 그대로 두고, 3행은 시행이 1, 2행에 비해 너무 길지요? 그렇다면 압축하여 '정말로 알지 못해 묻는 말이'로 바꾸어 봅시다. 압축하는 것도 형상화의 한 방법인 시어 고르기입니다. 4행은 결국 1, 2행과 반복되므로 생략하여 동어반복 회피해야겠지요? 이것도 시어 고르기입니다. 어느 것이 잔디이고 문맥이 이어지지 않지요? 3행과 4행이 잘 이어지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4행을 바꿔 문맥을 자연스럽게 이어야겠지요? 바꿔 봅시다. 3행의 '묻는 말이'나 4행의 '묻는 것 같아'는 결국 같은 말이지요? 동어 반복일 때는 둘 중에 하나를 생략하거나, 그 중 하나를 다른 시어로 바꾸는 방법이 있습니다. 여기에서는 '묻는 것 같아'를 다른 시어로 바꾸어 봅시다. '묻는 것 같아'는 아이의 질문이 앞에서 생략한 '당신은 잔디입니까, 잡초입니까?'라고 묻는 것 같아 충격을 받았다는 의미로 생각할 수 있겠지요? '충격'이라는 말은 상황을 설정하여 생각해 보면 '무엇에 얻어맞은 느낌'이라는 뜻. 무엇에 얻어맞았을까요? 망치로. 그렇다면, '망치로 뒤통수를 맞은 느낌'으로 생각할 수 있겠지요? 이것도 구체화하기입니다. 이젠 '묻는 말'이 '망치'의 역할을 하겠지요? 문맥에 맞게 정리해 보면, '정말로 알지 못해 묻는 말(망치)이/ 뒤통수를 치는 바람에 눈을 감았다'로 바꿀 수 있겠지요? 어느 것이 잔디이고 4행의 '눈을 감았다'는 '생각한다'는 의미. 좀더 구체화하여 '눈을 감고 하늘을 봤다'로 바꿔 보면 어떨까요? 4행을 다시 정리해 보면, '뒤통수를 치는 바람에 눈을 감고 하늘을 봤다'. 4행이 너무 길지요? 그렇다면, 두 행으로 나누어 봅시다. 어느 것이 잔디이고 다시 5행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낭독해 보면, 4행의 '뒤통수를 치는 바람에'가 다른 행들과 운율이 어우러지지 않지요? 1행과 2행은 2음보로 어울러졌는데 3행은 3음보인데 4행은 2음보라 어울러지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낭송해 보면 알 수 있습니다. 4행을 3행과 어울리게 3음보로 바꾸어야겠지요? 그렇다면 아이의 질문과 당신이 질문을 받아들이는 태도가 너무 이질적임을 암시하는 '엉뚱하게'를 첨가하여 '엉뚱하게/ 뒤통수를/ 치는 바람에'로 바꿔 3음보로 맞출 수 있겠지요? 이것이 운율 고르기입니다. 어느 것이 잔디이고 너무 자세하게 설명하여 지루하지요. 그러나 부분 부분을 고칠 때마다 그것을 다시 옮겨 적어 보는 습관을 길러야 합니다. 옮겨 적는 횟수가 많을수록 시는 더욱 더 다듬어져서 좋아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나에게 물었다. 자문하는 형식의 문장으로 바꾸면 더욱 산뜻하겠지요? 그렇다면 1행은 생략하고 2행만을 정리하면 됩니다. 나는 잔디일까, 잡초일까. 4연 그러다가 그놈에게 대답을 했다. 1행과 4행은 의미가 같으니까 한 행을 생략합시다. 둘 중 어느 행을 생략하는 것이 좋을까요? 잘 생각해 보십시오. 문맥상 1행이 생략되어야 합니다. 나머지는 그대로 놓아둡시다. 모든 시구를 형상화시킬 필요는 없습니다. 지나친 형상화는 의미 전달에 장애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결정하는 것은 시를 쓰는 바로 당신입니다. 너희처럼 생긴 것이 잔디이고 5연 그러나 가슴속에는 2행의 '질문'에 대해 생각해 봅시다. 아이의 질문이 당신의 질문으로 바뀌었지요? 당신이 당신에게 하는 질문. 당신이 당신에게 하는 '질문'은 '의문'이 되겠지요? '질문'을 '의문'으로 바꾸어 심상화하여 봅시다. 심상화란 시어를 감각적인 언어로 만드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을 이미지화라고도 말합니다. 다시 말하면, 눈과 귀와 혀, 코, 살갗, 즉 오감으로 느낄 수 있게 시어나 시구를 바꾸는 것을 말합니다. 어떤 모양의 의문입니까? '의문'을 다른 사물에 빗대어 봅시다. 무엇과 같습니까? 찾아봅시다. 찾을 때에는 먼 곳이 아니라 가까운 곳에서부터 찾아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당신은 지금 잡초를 뽑고 있습니다. 손끝에 묻어오는 것이 무엇입니까? 풀물. 그렇다면, '의문'은 어떤 의문입니까? '손끝에 묻어 오는 풀물 같은 의문'이지요? 그러나 가슴속에서는 이것이 시각적 이미지입니다. 이젠 손을 코에 대고 냄새를 맡아보십시오? 무슨 냄새가 납니까? 풀냄새. 이것이 후각적 이미지입니다. 내친걸음이니 시각과 후각을 알맞게 조화시켜 봅시다. 손끝에 묻어 오는 것이 풀물입니까, 풀냄새입니까? 풀냄새. 이젠 '손끝에 묻어 오는 풀냄새'로 바꾸면 더욱 멋지겠지요? 시각적인 것이 후각적인 것으로 이동하였습니다. 정리해 봅시다. 그러나 가슴속에서는 이렇게 두 감각을 조화시키는 것을 공감각적 심상이라고 합니다. 이젠 '질문'을 '손끝에 묻어오는 풀냄새 같은 의문'이라고 심상화했으니 '괴롭혔다'도 그 시구와 어울리게 '짙어 온다'로 심상화하면 어떨까요? 정리해 봅시다. 그러나 가슴속에서는 이것을 다시 압축할 수는 없을까요? 1행의 '가슴속에서는'은 3행의 '의문'이라는 시어 속에 함축되어 있다고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요? 의심은 머리 속에서 일어나는 현상, 의문은 가슴속에서 일어나는 현상이니까. 그렇다면 1행을 생략하여 1행과 2행을 '그러나 손끝에 묻어 오는 풀냄새 같은'으로 줄일 수 있겠지요? 그러나 손끝에 묻어 오는 풀냄새 같은 문맥이 좀 이상하지요? 다시 한 번 퇴고해 봅시다. 2행의 '그대로 남아'를 다른 시어로 바꿀 수는 없을까요? 앞뒤의 시어를 되새겨 봐야겠지요? '의문'이라는 시어의 의미를 생각해 봅시다. '의문'은 한 번 하기 시작하면 자꾸만 쌓이는 것이지요? 다시 말하면 의문은 가슴속에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이 아니라, 가슴속에 '자꾸만 쌓이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바꾸어야겠지요? 그런데 '자꾸만'과 '쌓이는'은 의미의 중복으로 볼 수 있지요? 잘 새겨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둘 중, '자꾸만'을 선택하는 것이 문맥에 맞을 것 같지요? 바꾸어 보면, '의문이 자꾸만 짙어 왔다'. 이것도 시어 고르기입니다. 그러나 손끝에 묻어 오는 풀냄새 같은 너무 복잡하게 설명한 것 같습니다. 심상화는 처음에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시를 쓰다 보면 앞에서 설명한 것 같은 복잡한 절차가 없이 쉽게 이루어집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좋은 시들을 많이 외우고, 시를 많이 써 보면 됩니다. 전체를 하나로 모아 봅시다. 잔디밭의 풀을 뽑다가 어느 것이 잔디이고 나는 잔디일까, 잡초일까. 너희처럼 생긴 것이 잔디이고 그러나 손끝에 묻어 오는 풀냄새같은 <퇴고> 시작 과정은 앞에서 말한 것처럼 그 과정을 선명히 구분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시는 미묘한 심리적 작용에 의해 쓰여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심상화 과정을 설명한다는 것은 매우 위험한 생각입니다. 심상화란 시에서 가장 복잡한 심리적 작용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위험을 무릅쓰고 설명한 것은 당신의 여행을 돕기 위한 것입니다. 대상인식 과정에서 퇴고 과정까지 모든 내용을 가슴에 적어 두고 수없이 암송해 보십시오. 그렇게 하는 동안 시는 당신의 마음의 소리로 바뀌어 집니다. 전체를 이어서 읽어 봅시다. 어딘인가 어색하고 낭송하기가 좋지 않을 겁니다. 운율이 고르지 않아 시 전체가 왠지 모르게 불안하기 때문입니다. 다시 한 번 고쳐 봅시다. 잔디밭의 풀을 뽑다가 그대로 두어도 좋을 것 같습니다. 2연 어느 것이 잔디이고 5행의 운율이 앞의 행과 맞지 않은 것 같습니다. 왜, 그럴까요? 한 번 읽어보십시오. 그럼, 알 수 있습니다. 3, 4행은 3음보로 읽히는데 5행은 2음보로 읽히기 때문입니다. 시어를 첨가하여 운율을 맞추어야겠지요? 어떤 말이 좋을까요? 생각해 봅시다. 5행의 '눈을 감고 하늘을 봤다'는 생각에 잠겼다는 말. 생각은 시간을 필요로 하지요? 그렇다면, 시간의 흐름을 나타내는 말 '얼마 동안'을 덧붙여 운율을 골라 봅시다. 어느 것이 잔디이고 3행의 '정말로' 4행의 '엉뚱하게' 5행의 '얼마동안'이 잘 어우러져 3음보의 율격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여기에서 음보란 낭송할 때, 마디를 주어 읽는 주기를 말합니다. 3연 이것은 의문이니까, 생각에 잠겨야 하는 것. '글쎄'라는 말을 덧붙여 잠시 호흡을 고르며 생각에 잠기게 하면 어떨까요? 글쎄, 나는 잔디일까, 잡초일까. 4연 그대로 두어도 좋을 것 같지요? 5연 4연과 5연 사이에 '그러나'를 생략할 수는 없을까요? 시에서는 될 수 있는 대로 접속어를 쓰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4연과 5연을 하나로 합쳐 한 연으로 하는 방법은 어떨까요? 한 번 해 봅시다. 시 전체를 이어서 읽다 보면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너희처럼 생긴 것이 잔디이고 4연과 5연이 합쳐 4연이 되었습니다. 그래도 어딘지 모르게 어색하지요? 운율이 맞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5행이 다른 행들과 잘 어우러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럼, 5행에 변화를 주어 봅시다. 변화를 주는 방법 중, 제일 먼저 시도해 봐야 하는 것은 문장 성분의 순서를 바꾸어 보는 것입니다.
이젠 '풀 냄새같이'를 문맥에 어울리게 '풀 냄새처럼'으로 바꾸면 좋겠지요? 너희처럼 생긴 것이 잔디이고 이것을 5연으로 하면 마무리가 될 것 같습니다. 3연의 '나는 잔디일까, 잡초일까.'를 다시 사용하여 반복 효과가 나타났습니다. 잔디밭의 풀을 뽑다가 글쎄, 나는 잔디일까, 잡초일까. 너희처럼 생긴 것이 잔디이고 나는 잔디일까, 잡초일까. 어떻습니까? 마음에 들지 않으면 고쳐 보십시오. 다시 말하지만 시를 쓰는 일은 어떤 규칙에 의한 것이 아닙니다. 어느 때는 한꺼번에 쓰여지는 경우도 있고, 어떤 때는 수많은 퇴고 과정을 거치는 경우도 있습니다. 여기에서 단계를 나누어 설명하는 것은 이해를 돕기 위한 것입니다. * 시를 다시 한 번 읽어보고 생각해 봅시다. 당신은 잔디입니까? 잡초입니까? 아니, 모두가 자기만큼 살다가는 것인데 어느 놈이 잔디와 잡초를 구분해 놓았을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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