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플 때는 바람처럼 꽃처럼 / 김정란 (1953~)
슬플 때는 바람처럼 꽃처럼 가만히
삶의 옆얼굴에 손을 대어본다
그리고 들여다보면 손금 속에는 작은 강물이 흘러
랄랄라 랄랄라 숨죽여 노래하듯 울고 있는
눈물 젖은 날개상한 깃털들 그 강물 속에 보이네
청이도 홍련이도 민비도 죄 모여 앉아서
가만가만 그 깃털들 말리고 있어 가슴이 저려서
갸웃이 고개 숙이고 조금씩 조금씩만 걸어가지
슬플 때는 바람처럼 꽃처럼 가만히
삶의 옆얼굴을 바라본다 갸웃이 바라본 그것
얼마나 가슴 저리게 아름다운지 얘기해줄까
[해설]
오랫동안 남성과 역사의 뒤편에서 숨죽여 울고 있던
여성들이 자신들의 운명을 거부하기 시작하면서 맨
처음 부딪힌 질문은 '나는 누구인가'이다. 자신들의
말을 외면하거나 알아듣지 못하는 대화 부재의 세계
와 대면해 자신들만의 정체성을 탐색하기 시작한 결
과다.
하지만 이러한 여성적 정체성의 탐색은 단지 여성적
권리를 확보하기 위한 것만은 아니다. 여성과 남성의
조화를 통한 본래의 인간성을 회복하기 위한 시도이다
그러기에 가부장제의 대표적인 희생양인 '심청'과 '홍
련', 그리고 '민비'도 애써 슬픔에 젖은 깃털들을 말리
며 비상을 꿈꾸고 있는 것이다.- 시인 임동확
*광주일보 제17070호
출처 : 시의 향기로 여는 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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