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당문학상 최종 후보작 지상중계 ① 아마도 고형렬 시인은 2006년을 잊지 못할 것 같다. 이 한 해 동안 그는 문학상 세 개를 잇달아 받았다. 개중엔 백석문학상도 있었다. 시인이 20년 동안 시집을 만들었던 곳이 상의 주체였다. 창비, 그래 시인은 창비에서 청춘을 보냈고 이태 전 창비를 나왔다. 비로소 백석문학상을 받던 날, 시인은 “평생 무상(無賞) 시인이 되지 못하고 이 상을 받는다. 모든 시인들에게 고개 숙인다”고 남다른 수상소감을 말했다. 고형렬은 유독 상복이 없는 시인이었다. 또 여름이 왔다. 올해도 고형렬이란 이름은 미당문학상 최종심 후보 명단에 올랐다. 그는 해마다 유력 후보로 언급됐고 해마다 떨어졌다. “해마다 죄송합니다”며 말문을 열었더니 “이렇게라도 얼굴 보니 좋잖아”라며 느긋이 웃는다. 늘 이런 식이다. 올해 추천작으로 예심위원이 1차 선정한 결과를 시인은 흡족해 했다. ‘조금 비켜주시지 않겠습니까 - 달개비의 사생활 2’를 시인은 “쓰고 나서 기분이 좋았던 시”라고 소개했다. 우선 달개비란 식물을 알아보자. 달개비는 습지에 사는 한해살이풀이다. 이맘때 비취색 꽃을 피우고, 잎은 길쭉하다 못해 가느다랗다. 잎사귀 폭이 2㎝ 정도에 불과하다. 눈 밝은 시인은 고운 때깔의 꽃잎이 아니라 볼품없는 잎사귀에 눈길을 매어두었다. ‘아무리 수많은 햇살이 하늘에서 쏟아지고 있어도/내게 필요한 면적은 다만 나의 잎사귀 형상뿐’라고 읊을 수 있었던 건 오랜 관찰 끝에 깊은 공감을 얻어냈기 때문이었다. 지난해 시인은 작고 미세한 것에 대해 유별난 관심을 보였다. 미토콘드리아 따위의 세포 구성물을 시인은 시의 영역으로 끌어들였다. 거기에서 시인은 존재 안의 무엇, 그러니까 존재를 구성하는 또 다른 존재를 궁리했다. 올해는 지난해와 또 달라 보인다. 자연을 말하는 시편이 자주 눈에 띈다. 그러나 내용은 사뭇 철학적이고 불교적이다. 문태준 예심위원의 말마따나 “무량한 바깥 세계를 인식하는 건 자신의 감각을 통해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달개비에게 빛은, 가느다란 잎사귀를 온전히 덮을 정도면 족하다. 더 이상의 햇빛은 달개비와 무관한 세상이다. 이 대목에서 체념의 정조가 읽힌다. 자신이 처한 바를 깨닫고 자신의 몫만 감당하려는 자의 결의 말이다. “이 작품은 ‘조금’의 시학을 말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행 ‘잠깐 여보세요, 조금만 비켜주시지 않겠습니까’에서 ‘조금만’이 품는 뜻은 결코 조금에 그치지 않습니다. 조그맣게 들리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겠다는 의지이며 당신을 의식하며 살겠다는 배려의 마음입니다.” 시인은 영 무심한 표정이었다. 삶의 보잘 것 없음을 진작에 알아버린 것인지, 세속의 온갖 욕심을 내려놓기로 작정한 것인지 알 길은 없었다. 다만 ‘조금’ 짐작할 따름이었다. <중앙일보> 글=손민호 기자, 사진=김성룡 기자 |
[스크랩] 여름 한때 / 조성국 (0) | 2008.01.28 |
---|---|
[스크랩] 슬플 때는 바람처럼 꽃처럼 / 김정란 (0) | 2008.01.28 |
[스크랩] 주저흔 / 김경주 (0) | 2008.01.28 |
[스크랩] 쇠똥구리의 생각 (0) | 2008.01.28 |
[스크랩] 어머니의 명주 / 김명인 (0) | 2008.01.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