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천사(梅泉祠) 남새밭 / 박두규(1956~ )
사당 뒤뜰에 하얀 매화 꽃잎 펄펄 날리는데
담 너머 푸른 남새밭에 노인네 혼자서
꽃잎 하얗게 머리에 이고 호미질을 한다.
그 밭에서 매천의 절명시가 싹을 돋운다 해도
구례 노천장에 푸성귀로 널브러져
천 원짜리 지폐 몇 장이 되어 돌아오고 말겠지.
사람들이 자본에 멱살 잡힌 지는
이미 오래 전의 일이 되었건만
이 매화 꽃잎 흐드러지는 매천사당에 와서
그대도 절명시를 떠올릴 수 있는 건
해마다 거르지 않고 솟아나는
저 남새밭 푸른 나물들 때문이다.
종일 하얗게 꽃잎 받아내는
저 노인네 때문이다.
[해설]
1910년 경술국치를 맞아 '글 배운 선비로서 사람 구실 어렵구나'며
절명(絶命)해 갔던 매천 황현의 표표한 이념과 짐짓 그 걸 모른 체
하며 묵묵히 남새밭을 일구는 한 노인네의 삶 가운데 어느 것이 더
절실하거나 진짜일까
몇 천원으로밖에 환산이 되지 않는 노이네의 수고는 분명 한 지식인
의 명분과 강개(慷慨)에 비해 작고 초라할지 모른다.
하지만 하얀 매화꽃잎을 하루 종일 머리 위로 곱게 받아내는 그 노인
네의 그윽한 마음의 수평성은 이미 매천의 가파른 정신의 수직성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 누구의 삶이든 올곧거나 진실한 것들은 푸른
나물들처럼 역사와 대지 위에서 그 생명력을 끈질기게 이야기 하기
때문이다- 시인 임동확
*광주일보. 제17066호-
출처 : 시의 향기로 여는 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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