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색 / 김용락 (1959~ )
일흔 둘의 노모가
양지바른 수돗가에 앉아 염색약을 개고 있다
솔이 뻐드러진 칫솔과
깨어진 면경 조각을 앞에 두고
빨래판에 쪼그려 앉아 있다
그 앞에는 분유 깡통에 심어놓은
지난 가을 황국(黃菊) 한 포기
겨울 추위에 형체가 없이 뭉개져 있다
폭설이 내린
산길 같은 어머니 머리 결을 따라
아래위로 칫솔질 하다가
나는 문득 아득한 심산유곡에 갇혀
그만 길을 잃었다
[해설]
오직 일가족과의 안녕을 위해 일하다가 불현듯
늙어버린 일흔 둘의 어머니. 염색한다고 잃어
버린 청춘의 날들이 돌아올 리 만무하건만 노
모는 깨진 거울 앞에서 다 닳은 칫솔로 연신 머
리를 빗어 넘긴다
하지만 겨울 추위에 형체도 없이 사라진 황국처
럼 그 자취를 찾아볼 길 없는 어머니의 젊은 날
을 문득 떠올린다. '나'는 문득 하던 칫솔질을
멈춘다. 보상하거나 보답할 수 없는 어머니의 무
한한 애정과 헌신에 그만 목이 매인 까닭이다.
한 마디 말도 하지 않는 어머니의 깊은 슬픔과
아픔에 잠시나마 감염된 순간이다.- 시인 임동확
-광주일보 17135호-
출처 : 시의 향기로 여는 마당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