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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염색 / 김용락

해설이 있는 시

by 백연심 2008. 1. 28.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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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색 / 김용락 (1959~ )


일흔 둘의 노모가

양지바른 수돗가에 앉아 염색약을 개고 있다

솔이 뻐드러진 칫솔과

깨어진 면경 조각을 앞에 두고

빨래판에 쪼그려 앉아 있다

그 앞에는 분유 깡통에 심어놓은

지난 가을 황국(黃菊) 한 포기

겨울 추위에 형체가 없이 뭉개져 있다

폭설이 내린

산길 같은 어머니 머리 결을 따라

아래위로 칫솔질 하다가

나는 문득 아득한 심산유곡에 갇혀

그만 길을 잃었다


[해설]
오직 일가족과의 안녕을 위해 일하다가 불현듯
늙어버린 일흔 둘의 어머니. 염색한다고 잃어
버린 청춘의 날들이 돌아올 리 만무하건만 노
모는 깨진 거울 앞에서 다 닳은 칫솔로 연신 머
리를 빗어 넘긴다

하지만 겨울 추위에 형체도 없이 사라진 황국처
럼 그 자취를 찾아볼 길 없는 어머니의 젊은 날
을 문득 떠올린다. '나'는 문득 하던 칫솔질을
멈춘다. 보상하거나 보답할 수 없는 어머니의 무
한한 애정과 헌신에 그만 목이 매인 까닭이다.
한 마디 말도 하지 않는 어머니의 깊은 슬픔과
아픔에 잠시나마 감염된 순간이다.- 시인 임동확

-광주일보 17135호-
출처 : 시의 향기로 여는 마당
글쓴이 : 김영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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