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로 지나자
어머니가 기르는 텃밭은 시들하다
박넌출도 희디흰 달빛 속살도
들깻잎도 향기를 부비지 않는다
중환자실 인공심장 박동기에 몸 내어맡긴
어머니의 가을, 단물이 다 빠져나간
욕창의 세월을 감고 오르는 박넌출이여
허공에 위태롭게 풍선심장 매다는 저녁
배추벌레가 여린 잎사귀 갉아 먹어도
더 이상 미물의 생을 간섭하지 않는 어머니
쥐 쓸다만 해바라기가 하늘길로
어머니의 가을 전송하고 있다
[해설]
필시 일생을 제 한 몸 보다 가족의 안위에 모든 희생을
마다하지 않았을 법한 어머니, 모진 가난과 시련 속에서
도 결코 힘들다고 내색하지 않았을 그 어머니는 인공심
장 박동기에 의지해 중환자실에 누워 있다. 단물 빠진
삶의 바지랑대를 타고 기어오르는 흰 박넝쿨을 보면서
사모곡을 부르는 시인을 애서 외면한 채.-시인 임동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