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 음
김 학 래
웃음이란 웃는 모양이나, 짓이나, 소리라고 풀이되어있다. 언젠가 TV 퀴즈에서 소가 웃을 수 있느냐 없느냐는 문제가 나왔었다. 발정기가 된 암소의 꽁무니를 응시하며 무슨 동작을 취하려는 황소의 얼굴 표정은 영낙없이 미소짓는 웃음의 모양이다. 그러기에 나는 위의 퀴즈 정답을 소에게도 웃음은 있는 것이라고 속단했는데, 아나운서가 말하는 정답은 그것이 아니었다. 소에게는 웃음이 없다는 것이었다. 소뿐만 아니라 동물들에게 조물주는 아예 웃음을 주지 않았다.
인간은 희노애락 등 칠정을 가진 고등동물이다. 울 때가 있지만, 웃을 때가 훨씬 많다. 슬플때보다는 기쁠때가 워낙 많다는 것이니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웃으면 복이와요’라는 코메디 프로도 있고, ‘웃는 얼굴에 침 뱉으랴’라는 격언도 있고, ‘소문만복래’라는 구호도 있으니 웃음은 묘약이요 인간사회를 아름답게하고 복되게하고 평화롭게 하는 보물일 것 같다.
웃음을 정의하여 웃는 모양, 웃는 짓, 웃는 소리라고 하였으니, 이를 다시금 풀이해보면 웃음이란 형태와 행동과 음성으로 표출되는가 보다.
웃음소리에 어떤 것들이 있는지 생각해본다. 실소(失笑)라는 웃음이 있다. 마땅히 참아야 할 자리에 웃음이 톡 터져나왔다고 하자. 이것이 실소이다. 실수해서 웃어버리는 것이다. 실소는 참다못해 터지는 웃음소리인데, 때로는 억지로 참느라고 킥킥거릴 때가 있다.
1962년 3월초 어느날 밤 나는 어느 군 군수실에서 제대 교사 복직 발령서를 받고 있었다. 군사 독재시절이었고 군수는 영관급 군인출신이었다. 밤 9시부터 발령장을 주는 것이었으니 그것부터가 웃기는 일이었다. 복직 발령을 받기 위해 도열한 교사는 20명 가량이었다. 이들은 낮부터 제발 섬학교로만 안가게 해달라며 소원을 빌었다. 그런데 첫째 교사도 섬마을 학교, 둘째교사도 섬마을학교 근무를 명한다는 발령장 낭독이었으니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군수가 노발대발 군인티를 나타냈지만 터지는 웃음을 어찌할 것인가? 말하자면 실소한 것이다. 에스키모인을은 전날밤에 있었던 우스개 일을 다음날 아침에야 상기하며 웃는다는데 이것도 실소일까? 에스키모인 뿐이 아니다. 우리 주변에도 밥을 먹다 무슨 일이 떠올라 혼자 웃는 이가 있다.
폭소라는게 있다. 아마 TV 코메디 프로를 보며 크게 웃는게 폭소일 것이다. 폭포수처럼 큰 소리로 웃는 것, 이것이 폭소일 것이다.
박장대소라는 웃음도 있다. 손뼉까지 치며 아주 크게 웃어버리는 호탕한 웃음이 박장대소인 줄 안다. 내가 어릴 적 우리 집 옆에는 사랑방이 있었다. 농한기인 겨울철이면 사랑방은 활기를 띄었다. 매일 밤 동네 어른들이 모여 짚신을 삼기도 하고 심한 장난을 하고 밤늦게까지 놀았는데 간헐적으로 박장대소(拍掌大笑)가 쏟아져 나왔다. 어떤이는 손뼉을 치며 웃고 어떤이는 방바닥을 치며 크게 웃었으며 어떤이는 배꼽을 쥐고 웃다가 방바닥에 뒹굴기도 했다.
파안대소(破顔大笑)라는 말도 있다. 얼굴이 찢어지도록 웃는다는 말이다. 참 이상한 일이다. 그토록 입이 찢어지고 볼때기가 미어지도록 힘들여 웃지만 웃다가 병이난 사람이 없고 웃다가 숨이 막혀 죽은 이도 결코 없었다.
오히려 건강에 좋은 것이 폭소요, 박장대소인 줄 알고 있다. 깔깔거리고 껄껄 웃고 하하 허허 호호하고 웃는 것도 소리의 웃음이다. 힘있는 젊은이들은 하하 웃고 젊잖은 노인들은 허허 웃고 젊고 예쁜 여인들은 입을 뽀족하게 만들어 호호하며 웃는다.
소리의 웃음에서 의붓자식 같고 미운 오리새끼같은 것이 있으니 그것은 ‘피식’ 웃는 것이리라. 냉소적이라고나 할까, 가망없고 어림없다는 웃음일까, 아니면 아니꼽고 가소롭다는 웃음일까? 어느 경우든 피식 웃음은 좋지 않은 것이다.
웃는 모양을 생각해보자. 미소라는게 있다. 신부가 결혼식장에서 웃는 웃음, 귀엽고 예쁜 애기를 어우르며 애 엄마가 웃는 행복한 웃음, 공부 잘하는 학생을 내려다보고 기발한 발표력을 지닌 영특한 제자를 보며 스승이 웃는 웃음, 할아버지가 토실토실 살이 찐 손자 목욕을 시키면서 만면에 띄는 흐뭇한 웃음, 장사치가 하루 수입을 마감하고 돈을 세며 웃는 웃음이 미소에 속하지 않을까?
반대로 고소라는게 있다. 쓴 웃음이다. 달디단 웃음이란 감소란 말은 없는데 고소라는 어휘는 흔히 쓰인다. 언짢을때 슬플때 어이가 없을때 상대가 너무 황당한 말을 할때 고소를 금치 못하는 것 같다.
눈웃음도 있는데 연인들 사이에 주고받는 정겨운 메세지같고, 코웃음이란 말도 있는데 대표적인 코웃음은 탈렌트 최모씨의 코웃음을 들 수 있을 것 같다.
혼자 웃으며 길을 가는 사람이 있을 경우 실성한 사람 취급을 하게 된다. 남을 비웃을 때도 표정으로 나타나는데, 이를 두고 조소(嘲笑)라고 한다.
죽마고우를 만나 손을 잡아 흔들고 포옹을 하고 덕담을 할 때의 웃는 모습과 잔잔한 웃음소리는 얼마나 아름답고 좋은 것인가.
그런가하면 웃음중의 최상급 웃음은 홍안의 청소년 얼굴에 그려지는 보조개의 웃음일 것이다. 신이 인간에게만 주었다는 웃음이라니 우리 인간들은 모름지기 웃으며 살고 웃으며 만나고 웃음으로 풀어가고 늘 미소짓는 얼굴로 복을 부르고 열여덟살 처녀 얼굴에 그려지는 곱고 귀여운 보조개 웃음같은 웃음을 찬양하며 살아갈지어다. 웃어야 엔돌핀도 무성하고 사는게 즐거울 것 아닌가.
*출처 : 목포문인협회
출처 : 시의 향기로 여는 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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