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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어머니의 명주 / 김명인

해설이 있는 시

by 백연심 2008. 1. 28.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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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당문학상 최종 후보작 지상중계 ③


구순 노모 향한 예순 아들의 안쓰러운 노래
한결 촉촉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들려줘


“작년엔 선친 얘기가 자주 보이더니 이번엔 모친 얘기가 많네요.”

“허허허…, 그렇지. 일이 좀 있었네.”
 
“일… 이라면?”
 
“글쎄, 그걸 알려줘야 자네도 기사를 쓸 수 있겠네만, 집안 일이라서….”
 
“해마다 죄송합니다.”
 
“아닐세. 난 그저 부끄러울 뿐이네.”
 
올해도 통화는 이렇게 끝났다. 해마다 미당문학상 최종심에 올랐던 김명인 시인은 올해도 “부끄럽다”며 정중히 인터뷰를 거절했다. 그래도 성과가 아주 없었던 건 아니다. 시인은 어머니 얘기를 슬쩍 비쳤다. 그것으로 족하다. 올 한 해 김명인의 시편은 어머니를 향해 놓여져 있다.

시인은 지난해 7월부터 올 6월까지 모두 22편의 시를 발표했다. 이 중에서 어머니가 직접 등장하는 시편이 여섯 수다. 지난해 회갑을 맞아 내놓은 첫 산문집 『소금 바다로 가다』에서 시인은 “시력(詩歷) 30여 년 동안 어머니를 두고 쓴 시가 몇 편 있다”고 적었다. 그 몇 편이 1년 만에 십수 편으로 늘어났다.

시인이 이른 “집안일”은 여섯 편의 ‘어머니 시’에서 얼추 짐작할 수 있다. 시편에 미뤄 보건대, 당신의 건강이 부쩍 안 좋아지신 게다. 요즘의 당신은 덜컥, 정신을 내려놓거나 하시는 모양이다.

‘이을 듯 끊을 듯 되살아난 어머니의 기억이 불쑥/말씀하신다, 대추나무 밑에 세워둔 도끼 어딨노?’(‘도끼자루’부분)

‘실오라기 하나 안 걸친 구순 노모를/예순 아들이 안고 목욕시켜드린다/…/다라이 속에 뜬 구름 겨우 한 조각인데/고무튜브인 양 그걸 붙잡고 엄마, 엄마’(‘다라이 타고 나르는 구름’부분)

시인은 구순을 훌쩍 넘긴 어머니를 모시고 산다. 십여 년 전 타계한 선친은 “고기잡이는 고사하고 농사일도 못 해서 반평생을 무위도식한 가장”(앞의 책)이었다. 열 남매의 생계는 오롯이 어머니가 감당했다. 그 어머니가 이제 또 어디론가 날아갈 채비를 하고 계시다. 하여 아들은 묵묵히 준비를 하고 있을 따름이다.

그러고 보니 올해 작품에서 죽음이 연상되는 시편이 여럿 눈에 띈다. 여태의 김명인 시에서 죽음의 이미지가 두드러졌던 것 또한 사실이지만 이번엔 느낌이 다르다. 올해 그의 시편엔 유독 “물기가 많아졌다”(김춘식 예심위원).

서른다섯 해 시를 쓰면서 틈 따위는 좀체 안 보였던 시인이다. 하나 이제는 예전의 뻑뻑한 느낌이 아니다. 지난해 선친의 기억을 길어올린 몇 편의 시에서도 시인은 예의 팽팽했던 명주실을 슬쩍 풀어놓은 인상이었다. 느슨해졌다는 얘기가 아니다. 사람들 앞으로 걸어나온 것 같아 반갑다는 얘기다.

<중앙일보>
손민호 기자

*출처 : 시와 그리움이 있는 마을
출처 : 시의 향기로 여는 마당
글쓴이 : 김영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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