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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섬말 시편-갯골에서 / 김신용

해설이 있는 시

by 백연심 2008. 1. 28.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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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당문학상 최종 후보작 지상중계 ④  



서해안 갯마을에 들어앉은 ‘떠돌이 시인’
어지러운 갯벌 물길에서 고단한 삶을 보다


김신용 시인은 지난해 또 처소를 옮겼다. 충북 내륙의 산골마을 ‘도장골’로 들어갔던 게 2005년. 그는 한 해 만에 산에서 내려왔고, 올 봄 산골에서 생산한 시편을 모아 시집 『도장골 시편』을 묶었다. 산골에서 나온 시인은 서해안 갯마을에 이르러서야 몇 안 되는 세간을 풀었다. 소래 포구로 불리는 곳, 경기도 안산의 ‘섬말’이다.

시인이 자꾸 처소를 옮기는 건 빈집을 찾아내야 했기 때문이다. 마땅한 벌이가 없는 시인에게 집세는 적지 않은 부담이었다. 시인이 갯골에 들어앉을 수 있던 것도, 시인의 인척이 창고로 쓰던 곳이 마침 비어있어서였다. 그렇게만 알고 있었다. 하나 시인은 달리 말했다.

“한 곳에만 있으면 좀이 쑤셔. 그렇지 않아도 얼마 전에 마량포구 근처에 빈집이 났다고 해서 둘러보고 왔어요. 평생을 떠돌던 몸이잖아. 떠돈다는 거, 기질인가 봐.”

그랬다. 김신용은 ‘지게꾼 시인’이 아니었다. 그가 지게 하나에 생계를 의존했던 시간은 겨우 십수 년이었다. 열네 살 나이에 집을 나온 뒤로 그는 세월의 대부분을 부랑(浮浪)했다. 단언컨대 김신용은, 한국 현대시사에서 가장 많은 처소를 거치고 또 보유했던 ‘떠돌이 시인’이었다.

시인의 떠돌이 근성을 이해하고 나서야 모든 게 환해졌다. 시인은 생의 대목마다 자신이 처했던 바를 시로 옮겨 적었던 것이다. ‘버려진 사람’이었던 시절엔 그 ‘개 같은 날들’을 무연히 기록했고 ‘도장골’에 들어가서는 민달팽이·다람쥐·청개구리와 더불어 살았던 나날을 시에다 꾹꾹 쟁였다. 갯골에 몸을 담근 지 1년, 이윽고 시인은 ‘섬말 시편’이란 이름으로 시를 내놓기 시작했다. 지난 한 해 시인이 발표한 23편의 시 중에서 ‘섬말 시편’ 연작은 5편. 모두 올 봄 이후 산(産)이다. 당분간 시인은 ‘섬말 시편’에 머무를 작정이다.

하나 시인의 처소가 바뀐다 하여 시인의 정서가, 다시 말해 고단했던 삶의 내력조차 바뀌는 건 아니다. 시인이 거처하는 소래 포구는 세계에서 가장 큰 사행성(蛇行性) 갯벌이다. 도시 구획하듯이 큼직한 물길이 뻥뻥 뚫려있는 게 아니라, 뱀이 기어간 뒤처럼 종잡을 수 없는 숱한 물길이 촘촘히 그어진 갯벌이다. 시인은 그 뒤틀리고 휘어진 물길을 바라보며 굴곡 심했던 지난날의 기억을 되새기고, 채 내려놓지 안은 삶에 대한 애착을 드러낸다.

‘아물지 않는 손톱자국처럼 여겨지기도 하지만/오랜 세월, 뒤틀리고 휘어진 그 사행(蛇行)의 갯골에는/아직 새 날아온다 뭇 새들 갈대밭에 집 짓는다’
 
김신용의 바다는 여느 바다와 다르다. 그의 바다는 풍요롭지 못하다. “뭇 생명이 뛰어노는 바다가 아니라 말라가는 이미지의 바다”(최현식 예심위원)다. 그건 시인에게 허한 구석이 있어서다, 아직도.
 

<중앙일보>
글=손민호 기자, 사진=양영석 인턴기자*출처 : 시와 그리움이 있는 마을
출처 : 시의 향기로 여는 마당
글쓴이 : 김영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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