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꽃다발 / 박해석 (1950~)
봉은사 가까운 길모퉁이 호프집
한구석에서 말없이 혼자 앉아
술을 마시다가 나갈 때에는
열심히 노동하는 게 보기 좋다고
한 번도 거스름돈 받지 않고 가버리던,
언젠가 호주머니에서 쑥스러운듯
제 시집 한 권 꺼내 건제주고 갔다는
그 사람이 바로 김남주였노라고,
낮에는 학원 수학선생으로 밤엔 사촌 남동생과
술을 파는 법학도 출신 젊은 여주인
그 사람 이미 죽었다고 말하니 깜짝 놀라며
광주가 고향인 사촌동생 고향 갈 일 생기면
꽃다발 들고 무덤 찾아보라고 이르겠다고,
살아 일면식도 없던 그가
생전에 앉았음직한 구석에 눈길을 주며
꾸깃꾸깃 바지 주머니 속 지전 만지작 거리는
내 마음은 아랑곳 않고
꼭 그렇게 하겠노라고
[해설]
뜻하지 않게 호프집 젊은 여주인을 통해 전해들은
김남주 시인에 대한 일화는 단지 그가 회고나 추억
의 대상이 아님을 보여준다. 생전에 일면식도 없던
그와의 우연한 마주침 또는 만남은 김남주라는 시
인의 단지 과거의 한 인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점
점 불어나면서 전진하는 미래의 시간 속에 위치하고
있음을 뜻한다. 뒤늦게야 그의 죽음 소식에 접하고
사촌동생을 통해서나마 그의 무덤에 바치려는 꽃다
발은, 어떤 인간의 삶이든 기억하려는 자의 의지나
열정의 강도에 따라 지속적으로 재창조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물이다 - 시인 임동확
-광주일보 제17216호-
출처 : 시의 향기로 여는 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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