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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박재열의 [한난계]

해설이 있는 시

by 백연심 2008. 1. 28.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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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밭에 뿌리는 가을비.
기운 마당귀가 젖고
雜草들이 푸들푸들
닭살을 세운다. 사기 그릇에
반 이상 오른 軟豆色 이끼.
성큼 靑山이 다가와 솔가지
담장을 넘는다. 水銀柱 속에서
빨간 실지렁이가
오그린다.

박재열(1949- ), [한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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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이 구체적인 것을 추상(개념)화 하는 일이라면 시는 추상(관념)적인 것을 구체화하는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시인들은 종종 그들의 추상적인 감정을 이미지에 기대어 드러내지요. 이 시에서는 파밭, 이끼, 청산 등의 푸른색과 가을비, 사기그릇이 독자들의 마음을 차고 서늘하게 합니다. 그리고 파, 잡초, 솔가지 등 끝이 뾰족한 사물들과 푸들푸들, 성큼 같은 낱말이 긴장감을 유발합니다. 뿐인가요? 아무 수식 없이 젖다, 세우다, 넘다, 오그리다 같은 술어가 나와서 독자들을 늦가을의 추위 속에서 알 수 없는 불안에 쫓기게 하여 실존적인 계기로 인도합니다. 그런데 시인은 그 느낌을 느닷없이 <水銀柱 속에서/ 빨간 실지렁이가/오그린다.>는 이미지로 대체합니다. 놀라운 일이지요. 이처럼 시인은 그의 추상적인 감정을 선명한 이미지로 형상화하여 단숨에 독자의 가슴에 깊이 심어놓는 게 아닌가요?

이 진 흥 (시인) - 매일신문, 2005/9/28
출처 : 시의 향기로 여는 마당
글쓴이 : 김영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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