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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사랑시]부치지 못한 다섯 개의 엽서 / 이정하

예쁜 시

by 백연심 2007. 4. 1. 2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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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치지 못한 다섯 개의 엽서 / 이정하



* 하나.

마음속 서랍에는 쓰다가 만 편지가 가득 들어 있습니다.
그대에게 내 마음을 전하려고 써내려가다가,
다시 읽어보고는 더이상 쓰지 못한 편지.
그대에게 편지를 쓴다는 건 내 마음 한 조각을
떼어내는 것이나 다를 바 없습니다.
아는지요? 밤이면 밤마다 떼어내느라 온통
상처투성이가 되고마는 내 마음을


* 둘

아침부터 소슬히 비가 내렸습니다.
내리는 비는 반갑지만 내 마음 한편으로는
왠지 모를 쓸쓸함이 고여듭니다.
정말 이럴때 가까이 있었더라면
따뜻한 커피라도 함께 할 수 있을텐데.
그저 함께 있는 것 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행복할텐데.
누군가를 사랑하다는 것은 이렇듯 쓸쓸한 일인가 봅니다.


* 셋

다른 사람과 함께 나란히 걷고 있는 그대를 우연히 보았던 날,
나는 애써 태연한 척 미소지었습니다.
애당초 가까이 가지도 못했기데 아무런 원망도 할 수 없었던
나는
몇 걸음 떨어져 그대를 지켜볼 뿐이었습니다.
팔짱을 낀 채 근처 카페의 문을 열고 들어가는
두 사람의 모습이 그대로 내겐 아픔이었고,
뭐가 그리 즐거운지 연신 까르르대며 웃는
그대의 모습을 카페의 창문으로 훔쳐보는 것이
내겐 또 말할 수 없는 슬픔이었습니다.
아아, 그대는 꿈에도 몰랐겠지요.
그날 밤은 내게
있어 가장 춥고 외로운 밤이었다는 것을


* 넷

그렇습니다.
그대를 그리워하는 것은 나 혼자만의 일 입니다.
그대를 잊지못해 괴로워하는 것도 나 혼자만의 일 입니다.
그러니 그대가 마음 쓸 일은 하나도 없습니다.
나 혼자 그리워하다 나 혼자 괴로워하면 그만,
그대는 그저 아무 일 없다는 듯 무덤덤해도 됩니다.
애초에 그대에게 짐이 될 생각이 있었다면
나는 내 사랑을 슬며시 들킬 수도 있었을 겁니다.
그러나 그대여, 나로 인해 그대가 짐스러움을 느낀다면
그 자체가 내게는 더한 괴로움이기에
나 혼자만 그대를 사랑하고 나 혼자만 괴로워하기로 했습니다.
그러니 그대여, 그대는 그저 모른 척 하십시오.
그저 전 처럼 무덤덤하십시오.


* 다섯

나는 이제, 조금씩만 사랑하고
조금씩만 그리워 하기로 했습니다.
한꺼번에 사랑하다 그 사랑이 다 해버리기보다,
한꺼번에 그리워하다 그 그리움이 다해버리기 보다,
조금씩만 사랑하고 조금씩만 그리워해
오래도록 그대를 내 안에 두고 싶었습니다.
아껴가며 읽는 책, 아껴가며 듣는 음악처럼
조금씩만 그대를 끄집어내기로 했습니다.
내 유일한 희망이자 기쁨이던 그대.
살아가면서 많은 것들이 없어지고 지워지지만
그대 이름만은 내 가슴속에 오래오래 남아 있길
간절히 원하기에.


 


출처:시의 향기로 여는 마당 cafe.daum.net/poet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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