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오영尹五榮(1907-1976)
현대문학에 측상락으로 등단.
수필집으로는 '고독의 반추' '방망이 깎던 노인' '곶감과 수필' 등이 있다.
수필문학입문 - 현대 수필문장의 발달 소고
학자, 언론인의 문장
우리 현대문이 초창기에는 학자 및 언론인에 의하여 지배 계발되어왔다. 한학자요, 국학의 대가인 위당 정인보, 사학가요 박식인 육당 최남선은 일찍부터 대문장가로 이름을 날렸다. 그러면 그들의 문장은 어떤 것인가.
위당의 학문은 해박하고 정밀하다. 그러나 문장은 고삽古澁하고 각삭刻削하여 통창通暢하지 못하다. 그의 명저 [오천년간의 조선의 얼]은 독자가 거의 없었고 그의 소장所長인 [양명학연의陽明學演義]는 설명이 지나치게 번쇄하여 평이한 서술이 오히려 권태를 자아낸다. 순국문으로 쓴 글들은 더욱 읽기가 순탄하지 않다. 그것은 생각은 이미 한문으로 구성된 것을 우리말로 바꾸되 고문古文 내간체內簡體를 습용하고 곡진하고 상세한 것을 취한 나머지, 한문의 대주大註 소주小註 세주細註에 해당하는 것까지 본문에다 엮어 나간 까닭이다. 그래서 묘사妙辭나 격조는 있어도 정서와 윤기가 없다. [그의 정송강鄭松江과 국문학]에서 송강松姜을 찬양한 말은 스스로 자기의 문장론이기도 했다. 한토漢土의 고실故實을 석은 것이 옥의 티라 햇다. 그래서 그는 순우리 말로 쓴 글에는 한자를 석찌 않앗다. "한문을 직역해서 우리 글에 섞으면 결이 같지 아니하므로 우리말까지 트집이 생기는 까닥에 송강은 한자어를 그대로 썼다"고 했다. 위당도 그것을 충실히 지켰다. 송강의 글이 우리 고가古歌에서 체득한 것을 높이 평가하고, 고가와 대조하여 그 근거 있음을 칭찬했다. 이것이 그로 하여금 옛법에 근거를 두도록 했다. 어느 것은 그가 지정至情의 문자라고 말한 그 모친의 내간문內簡文과 흡사한 데가 있다. 그러므로 그의 문체는 현대문보다 근고문近古文에 가깝다. 송강의 우리말 솜씨를 칭찬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장사왕長沙王 가태전賈太傳 해건데 '우압고야 냄대되 금실을 제 혼자 맡아 있어 긴 함쉼 눈물도 과커든 에에할 줄 어데요'의 '에에
는 통곡을 이름이니 우리 말씀에 맞추어 넌지시 바꾸어 놓은 솜씨는 놀라울 만하다"고 했다. 그러나 그의 병은 여기서 비롯햇다. 당시에는 서당소동書堂小童도 턍태부梁太傅 가의상소賈誼上疏를 읽고 잇었다. 그래서 '긴 한숨'하면 '가위장태식자육可謂流悌者三이구나' 이구나, '에에' 하면 '가위통곡자일可謂痛哭者一' 이구나 하고 알아들었다. 그것은 유머러스하고 멋지기도 했다. 그러나 그 한문을 모르는 사람을 표준으로 생각하면 통곡이라 한자로 쓰든지, '목을 놓고 운다'고 번역을 하든지 하면 알지만 '에에'라고 넌지서 바꾸어 놓으면 '에에'가 놀리는 말인지 조흥구助興句인지 알 수가 없을 것이다. 이것을 그대로 본뜬 것이 그의 글에도 나타나 있다. [관동별곡] 끝에 "명월이 천산만락千山萬落에 아니 비췬 데 없다"를 칭찬하여 "말겻이 나무 등걸같이 서니 밤은 정히 깊고 사방은 고요한 그림으로 미치지 못할 그림이라" 했다. 소위 고등학교 국정 교과서에는 '말겻이'를 '말결이'로 고쳐 놨다. (면 번 지적해 주어도 종시 고치지 아니했다.) '명월明月의 구句'의 어느 말결이 나무 등걸 같이 섰느냐? "말결이 서면 왜 밤이 깊고 고요한 것이 되느냐? 말결이 어떻게 그림으로 미치지 못할 그림이냐?" 도무지 통할 수 없는 말이건만 몇 해를 두고 어느 교사 하나 의문 없이 가르쳐 왔다. 이렇게 문리의 통불통通不通은 관계없이 낱말이나 품사만 가르치는 것을 능사로 삼는 국어교육도 한심하지만 본문 자체가 이미 어려웠다. 알고보면 '말겻이'는 탑연을 이름이요, '나무등걸'은 고목枯木을 이름이니, 달이 환하고, 고요한 깊은 밤에 물아일체物我一體의 경지에 들어간 작가의 모습이 그림같이 떠오른다는 말이니 미상불 놀랄 만한 묘한 솜씨다. 그러나 일허게 넌지시 바꾸어 놓은 솜씨를 알자면 [장자] 남화경南華經의 제물론齊物論 정도의 한문 상식이 필요하니 순수한 국어라 할 수 없다. 이 한문 지식을 넌지시 우리말로, 고문장체古文章體를 넌지시 현대문체로 바꾸어 놓은 것이 그의 글이다. 그러므로 그의 문장은 외롭게 명성만 높았고 현대문에 기여한 바 없었다.
육당의 박람강기博覽强記는 근세에 당할 이가 드물 것이다. 그러나 그의 문장은 잡박하고 용만冗漫함을 면하지 못했다. 불전佛典, 유경儒經, 잡서雜書의 문자와 고어, 속어를 혼용한 데 부조화가 있고, 같은 내용을 여러 가지 언사로 바꾸어 열거항 그칠 줄 모르는 다변多辯과 번거로운 대비는 용만하여 핵심보다 지엽이 무성하고, 진부한 대우對偶와 억양은 도리어 문장을 헤쳐 취할 것이 못된다.
민세 안재홍은 언론계의 인사다. 국한혼용체로는 원융자재하고 통창한 문장이다. 강개한 지사풍과 낭만적인 기품이 비록 완편完篇의 미를 거둔 글은 드무나, 자유로운 현대문의 길을 터 놓았다는 점에서 평가가 될 만했다.
단재 신채오는 사학가요, 고절孤節의 인사다. 국내에 오래 있지 아니하여 문장으로 널리 알려져 있지 아니하나, 문장에 사로잡히지 아니하면서 스스로 달의達意를 얻고 명쾌하고 발랄하되 정열이 넘쳐, 이미 위당도 인정했듯이 당시의 문장으로는 첫손가락에 꼽을 만하다. [조선상고사]의 첫 머리부터 직절간명直截簡明한 말로 붓을 일으켜 처처에서 흉금의 정희를 털어논 대목은 사학적 가치는 별개로 하고 독자의 감흥을 일으키기에 족하며, 그의 [조선역사상 일천년래 제일대사건]은 우리 나라에서 보기 드문 역사가의 에세이다. 그가 언제 문장을 위하여 유의하고 연마하였으랴. 그는 문학가도 문장가도 아니다. 나는 여기서 비로소 문장은 학문에서 오는 것도 박식에서 오는 것도 미사여구의 재능에서 오는 것도 아니요, 오직 만곡萬斛의 혈루를 안고 형극의 고초에 몸부림치는 정열과 고절高節의 소산임을 알았다.
소설가의 문장
오늘 우리들이 쓰는 언문일치의 문장은 신문학의 초창기의 소설가들에 의하여 개척되었다. 이광수, 현진건, 염상섭, 김동인 제씨의 공은 크다. 이광수의 문장은 평이하고 유창한 설교문장과 사설詞說이 안상安詳한 재래 언문체 문장을 융화 변용시키면서 그의 처부의 문재로 재작裁昨한 솜씨의 문장이다. 평명유려平明流麗한 것이 그의 특징特長이요 함축이 적은 서술체인 것이 단점이다. 현진건의 문장은 미문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한 혐嫌이 없지 아니하나 나도향의 [그믐달]과 같은 유치한 단게는 이미 벗어났고, 염상섭의 문장은 끈기있고 침착하여 뚜벅뚜벅 띠어 놓은 붓이 지나치게 유려한 문풍文風을 지양시킨 데 공을 얻었으나 둔중하고 지완遲緩한 혐을 면하지 못했다. 김동인의 문장은 선명 간결한 속에 생동하는 맛이 있어 당시의 제일인자로 꼽을 만하디, 그의 [수정 비둘기]는 이미 아름다운 수필이다.
문학가의 문장
이병기, 양주동, 이은상, 박종화 제씨는 각기 우열과 장단이 있을 것이나 박식과 능숙한 솜씨요, 종횡자재의 문필로 현대문장에 절대적인 영향을 주었으니, 한마디로 해서 능문달필지사能文達筆之士다. 문장의 품격은 가람 이병기를 첫째로 꼽을 것이니, 한문의 소양을 기초로 하고 있으면서도 우리 내간체 문장에서 탈화脫化된 것으로 온아 간결하고 겸허하여 조촐한 선비의 고담한 풍격이 있다. 만년의 [가람문선서]는 험 잡을 데 없는 아품雅品이다.
수필문학 태동기의 문장
이상, 박태원, 이효석의 문장은 여러 모로 주목에 값한다. 첫째, 그들은 각자 개성적인 독특한 문체를 구축하려고 노력햇다. 둘째, 자기들의 내적 체험의 세계에 충실했다. 어느 것이나 그들으 내재적 심경의 표현들이엇다. 셋째, 그들의 산문은 그들의 시, 소설과 일관한 작가정신을 잃지 아니했다. 수필문학을 인색했거나 아니했거나를 불문하고 이것들은 수필문학의 중요한 본질적 요소들이다. 내가 이것을 수필문학 태동기의 문장으로 보는 이유가 여기 있다.
이상의 문장은 풍자적인 비판정신과 내재적인 반항의식과 내적 모순과 고민의 상징으로 지적 오만과 병적 자기自棄의 일면을 공유하고 있다. 이상의 정확한 파악은 시나 소설이 아닌 수필에서 손쉽게 만질 수 잇다. 그는 시대의 선행한 초현실주의자도 아니요, 아직 구각舊殼을 탈피하지 못한 일면을 지닌 채, 괴리된 성격의 소유자였다.
박태원의 문장은 경묘輕妙하고 섬세한 감각적 일면에 재능을 경주하고 있어싸. 그러나 이 두 문장은 새로운 전환과 타개가 없는 한 벽에 부딪힌 벽문癖文들이다.
이효석의 문장은 사색과 낭만이 조화를 이룬 문장으로 비록 미완성의 도정에 있는 글이나 가장 수필적인 취향성이 짙은 글이다. 그의 소설 [산]이나 [메밀꽃 필 무렵]은 우리 나라에서 보기 드문 수필적인 향기가 높은 작품이다. 그의 작품 세계는 항상 수필적이다.
수필문학 개안기開眼期의 문장
우리 나라에서 수필문학을 표방하고 창작 수필을 의식적으로 시도한 이론 김진섭, 김용준, 이양하를 들 수 있다. 이들의 글을 수필문학 개안기의 문장으로 보는 소이다.
"애호하는 작가를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에게 혼이 있을 리 없다. 어느 때까지 가도 무정란無精卵이다. 화분이 생기지 않는 암술이다. 애호하는 작가 즉 문학사으이 연인은 혼의 화분이다. 문체는 항상 그 문학상 연인의 감화를 받게 마련이다. 여기서 문학은 잉태된다." 임어당林語堂이 한 말이다. 그가 말한 취지는 불문에 부친다. 그러나 창작이란 모방의 탈피에서 온다. 어느 구체적인 작품을 애호함으로써 구체적인 개념이 파악되고 자기의 방향이 모색되는 것만은 사실이다. 그러므로 개안기의 작가들은 반드시 자기가 애호하는, 누구인가의 작품을 대상으로 수필을 모색하게 된다.
김진섭은 이론과 아울러 수필을 꾸준히 써냈다. 그래서 수필 전문가로 알려졌다. 그는 막연하고 호만浩漫하게나마 외국 수필을 이해했고, 자기대로의 방향도 탐색했고 또 열의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개념은 극히 모호했고 문학을 하려는 사람으로서 자기 나라 문장의 소양이 부족했다는 것은 치명적이었다. "산만과 무질서의 무형식이 수필의 특징"이라는 천고미유千古未有의 기어奇語도 표현의 착오이었을 것이다. 산만하고 무질서하면 이미 문장이 될 수 없다. '수필은 흔히 비문학적인 인상을 사람에게 주는 것이지만, 사실 문학은 자기의 협애한 영역 안에 수필이라 하는 것의 자유분방하고 경묘쇄탈輕妙灑脫하고 변화무궁한 양자樣姿를 포용하기 어려운 감이 없지 않다." 그의 생각과 표현은 이렇게 모호했던 것이다.
김용준은 동양화가요, 수필가로 자처하지는 아니했다. 해방 후에 [근원수필]을 냈다. 그러나 동양적인 고아한 품위와 운치를 주로 하며 하나의 정서를 표현하려는 경향이 그의 화풍과 일치했으며 청조淸朝 시인이요 문장가인 원매袁枚의 [수원수필隨園隨筆]의 영향을 짙게 풍기고 있었다.
이양하는 문장이 맑고 고우며 램의 문장을 목표로 하고 있었다. "원고지를 앞에 대하면 큰바다를 건너가는 것 같다"는 그의 술회는 문학수필을 써 보려는 심상치 않은 고심이 엿보인다. 그가 마년에 병석에서도 램의 수필 같은 좋은 수필 한 편만 써보고 싶은 것이 소원이라 했다는 말만 들어도 그가 얼마나 수필을 사랑했는지 알 수 있다. 그러나 그의 많지 아니한 글에서도 그의 소망에 찰 작품이 드문 것은 그의 생홀이 너무 안이하고 평범햇던 탓이 아니었을까. 글은 사랑과 희구만으로는 오지 않는다. 발마이 때려야 파도는 일고, 돌부치가 솟아야 여울물은 울리낟. 물론 그간에 많은 작가와 작품들이 잇었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일일이 논급하지 않고 두드러진 줄거리만을 더듬어 본 것이다.
오늘의 수필
오늘같이 수필이 대량으로 발표되고 출판되고 수필문학인이 문학가의 서열을 차지하고 수필에 대한 설명과 이론이 많은 때는 일찍이 없엇다. 그러나 양적 생산이 반드시 질적 향상을 뜻하는 것은 아니며, 문학가의 서열을 차지했다고 반드시 수필이 문학작품으로 향상도니 것도 아니다. 일인일설一人一說의 수필론은 차라리 혼란과 무질서를 초래할 뿐이다. 문학인으로서의 자세는 우리 태동기의 작가를 못 따르고 작품의 수준은 우리 개안기의 작품들만 못한 것이 일반적인 사실이다. 나는 지금을 수필문학의 혼란기라고 본다. 그러나 그 속에서 열의를 가지고 수필문학을 지향하려는 일부의 움직임을 간과할 수는 없다. 따라서 앞으로 새로운 청신한 신진들의 작품이 기대되기도 한다. 이런 의미에서 오늘은 또 수필문학의 모색기이기도 하다. 여기서 우리는 혼란을 정리하고 모색을 추진해 나갈 필요가 있다. 기성 문학인들이 새로운 분발도 물론 필요하다.
세간에서 어떤 것들을 수필이라고 하느냐? 수필이란 어떤 것이냐? 가 문제가 아니고, 수필이 어떻게 해야 문학이 되느냐? 어떤 수필이 문학수필이냐가 문제인 것이다. 옛날에 수필이 어떠했느냐가 문제가 아니고, 앞으로 수필이 어떻게 나가야 하겠느냐가 문제인 것이다. 여기에 비로소 수필의 구체적인 문학성고 앞으로의 전망이 파악되는 것이다. 몽테뉴의 문장이나 베이컨의 글을 말하고, [파한집]이나 [백운소설]을 말하고 [한중록]이나 의유당意幽堂을 들치는 따위는 현대 수필의 문외함임을 자인하는 것 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예를 들면 "비평적인 논문을 비롯하여 수상록, 서간, 자서전, 서평, 사설 같은 형식들이 모두 수필류에 속한다" 거나 "말하자면 의견 표시이며 대화적이며 교훈적" 이라거나 "수필은 생활철학이어야 한다" 거나 등등 무정견한 말들은 혼한을 가중시킬 뿐이다. 이런 말들은 아무 귀를 기울일 가치조차 없는 말들이다. 그들은 아무 수필문학관도 가지고 있지 아니한 사람들이다.
무릇 어떤 종류의 문학을 막론하고 문학을 논하는 사람은 논자로서 이자잉 서로 다르다. 하나는 학구적 입장이요 하나는 평론가적 입장이요 다른 하나는 작가적 입장이다. 오늘 우리에게 있어서는 학구적 수필론이란 불가능하고 또 불필요하다. 극서은 아직 대상이 서 있지 않기 때문이다. 평론적 수필론이란 겨우 우리 수필의 동태에서 문학성을 전망하는 이외에는 무의미하며 불필요하다. 그러나 그 어느 것이든 수필문학관의 정립이 선행되어야 한다. 오직 가능하고 또 유익한 것은 오직 작가적 입장에서의 수필론이다. 작가란 글을 쓰는 사람이요 논하는 사람은 아니다. 그러나 새로운 문학의 탐색기나 창작기에 있어서는 이론의 제창이 선행되었던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것은 작가로서의 자기세계의 개척을 의미하며 작품 모색의 과정의 기록인 것이다. 여기서만 우리는 구체적인 문학론을 들을 수가 있는 것이다. 다음에 예시하는 피천득의 수필은 그런 의미에서 반가운 글의 하나다.
수필
수필은 청자(靑瓷) 연적(硯滴)이다. 수필은 난(蘭)이요, 학(鶴)이요, 청초(淸楚)하고 몸맵시 날렵한 여인(女人)이다. 수필은 그 여인이 걸어가는 숲속으로 난 평탄(平坦)하고 고요한 길이다. 수필은 가로수 늘어진 페이버먼트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길은 깨끗하고 사람이 적게 다니는 주택가에 있다.
수필은 청춘(靑春)의 글은 아니요, 서른 여섯 살 중년 고개를 넘어선 사람의 글이며, 정열(情熱)이나 심오(深奧)한 지성을 내포한 문학이 아니요, 그저 수필가가 쓴 단순한 글이다.
수필은 흥미를 주지마는 읽는 사람을 흥분시키지는 아니한다. 수필은 마음의 산책(散策)이다. 그 속에는 인생의 향취와 여운이 숨어 있는 것이다.
수필의 색깔은 황홀.찬란하거나 진하지 아니하며, 검거나 희지 않고 퇴락(頹落)하여 추(醜)하지 않고, 언제나 온아우미(溫雅優美)하다. 수필의 빛은 비둘기 빛이거나 진주빛이다. 수필이 비단이라면 번쩍거리지 않는 바탕에 약간의 무늬가 있는 것이다. 그 무늬는 읽는 사람의 얼굴에 미소를 띠게 한다.
수필은 한가하면서도 나태(懶怠)하지 아니하고, 속박(束縛)을 벗어나고서도 산만(散漫)하지 않으며, 찬란하지 않고 우아(優雅)하며 날카롭지 않으나 산뜻한 문학이다.
수필의 재료는 생활경험, 자연관찰, 또는 인간성이나 사회 현상에 대한 새로운 발견, 무엇이나 다 좋을 것이다. 그 제재(題材)가 무엇이든지간에 쓰는이의 독특한 개성과 그때의 무드에 따라 <누에의 입에서 나오는 액(液)이 고치를 만들 듯이> 수필은 써지는 것이다. 수필은 플롯이나 클라이막스를 필요로하지 않는다. 저자가 가고 싶은 대로 가는 것이 수필의 행로(行路)이다. 그러나 차를 마시는 거와 같은 이 문학은 그 방향(芳香)을 갖지 아니할 때에는 수도물같이 무미한 것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수필은 독백(獨白)이다. 소설가나 극작가는 때로 여러 가지 성격을 가져 보아야 한다. 셰익스피어는 햄릿도 되고 폴로니아스 노릇도 한다. 스러나 수필가 햄은 언제나 차알스 램(C. Lamb)이면 되는 것이다. 수필은 그 쓰는 사람을 가장 솔직히 나타내는 문학 형식이다. 그러므로 수필은 독자에게 친밀감을 주며, 친구에게서 받은 편지와도 같은 것이다.
덕수궁 박물관에 청자 연적이 하나 있었다. 내가 본 그 연적은 연꽃 모양을 한 것으로, 똑같이 생긴 꽃잎들이 정연히 달려 있었는데, 다만 그 중에 꽃잎 하나만이 약간 옆으로 꼬부라졌었다. 이 균형 속에 있는 눈에 거슬리지 않는 파격(破格)이 수필인가 한다. 한 조각 연꽃잎을 꼬부라지게 하기에는 마음의 여유를 필요로 한다.
이 마음의 여유가 없어 수필을 못 쓰는 것은 슬픈 일이다. 때로는 억지로 마음의 여유를 가지려 하다가 그런 여유를 갖는 것이 죄스러운 것 같기도 하여 나의 마지막 십분지일까지도 숫제 초조(焦燥)와 번잡(煩雜)에 다 주어 버리는 것이다.
이것은 피천득의 수필론이다. 논이라면 학술논문이나 논설문을 생각할지 모르나 수필가로서 쓴 것은 문장론, 작품론, 문화론, 시사론이 다 수필인 것이다. 지금가지 하나의 수필관을 가지고 구체적으로 수필을 논한 글이 없었다는 점에서도 귀중한 글이다. 수필은 "난이요 학이라고"고 했지만, 사람에 따라서는 "피요 눈물이라"고 할 수도 있다. "청초하고 몸맵시 날렵한 여인"이라고 햇지만, 남성적일 수도 있다. 반드시 이 수필론에 매일 필요는 없다. "수필은 중년 고개를 넘어선 사람의 글"이라고 했지만, 모든 것이 신기하고 청신하게 느껴지는, 때 안 묻은 소년의 글일 수도 있고, 인생을 회고하며 생을 거의 체념한 노경老境의 글일 수도 잇다. 이 수필론으로 포섭할 수 없는 외타의 수필은 얼마든지 있다. 그러나 그런 수필론들은 우리에게 아무 흥미도 없다. 수필문학을 파악하는 데 아무 도움도 주지 못한다. 오직 한 작가의 작품을 구체적으로 파악함으로써 수필문학을 이해하려 할 때 이글은 시사하는 바가 클 것이다. 이것은 한 작가로서 자기의 문학세계를 말해 준 것이요, 스스로의 수필문학을 탐색하는 과정의 기록인 까닭이다. 이 수필의 세계에 공명하고 동도同道에 반려가 되어도 좋고, 또 다른 세계를 개척하며 자기의 수필을 탐색하고 그 과정을 보여 주는 것도 좋다. 그리하여 여려 개성들의 수필론이 기록되고 또 탐색되고 작품화될 때 비로소 수필문학은 정립될 것이다. 우리의 산문문장은 이미 한 단계 탈피해서 문학성을 추구해 가며 자기세계의 개척과 개성적인 문체로 문학수필을 지향하고 있다.
참고로 졸고 [문학 수필을 쓰는 사람들]을 부기해 둔다.
문학 수필을 쓰는 사람들
수필에 문학 수필 비문학 수필이 있는 것이 아니다. 문학인이 쓰면 문학 수필이 되고 비문학인이 쓰면 비문학 수필이 된다. 문학인이란 읽고 쓰고 생각하고 이야기하는 것을 생활로 하는 사람들이다. 문학은 직업이 아니다. 직업은 자기의 노력이나 기술을 사회에 제공하고 그 대가인 보수로 생계를 영위하는 것이다. 그러나 문학은 개인의 자유로운 향락이요 욕구와 갈망에서 오는 자기 삶의 확충이다. 작품이 사회에 기여하고 보수가 따른다 해도 그것은 결과요 목적이 아니다. 옛 사람이 매문가賣文家를 문기文妓라 멸시한 것도 일리가 있었다. 소설가나 시인은 문학가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그들이쓴 수필이 비문학적이라고 할 때, 그것은 그들의 생활이 문학에 충실하지 못한 것인즉 이는 작가정신의 빈곤을 말하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동서고금에 위대한 소설가, 시인의 글들은 어느 것이나 그들의 문학정신을 반영하는 문학 수필이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다. 문학정신이 빈곤할 때 문학 수필은 써지지 않는다. 문필로 생활하는 사람들은 이른바 문필업가다. 그러나 수필가란 따로 없다. 직업은 생활수단인 까닭에 개인은 직업을 떠나서의 생활이 요구된다. 자동차 부속품만을 만드는 사람의 생활이 자동차 부속품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기의 사생활은 소비요 생산이 아니다. 그 소비를 향략하기 위해서 직업을 갖는 것이다. 문인은 읽고 쓰고 생각하고 이야기하는 것이 사생활의 전부다. 그러므로 진정으로 문학을 향락하려면 먹고 사릭 위한 직업이나 기술이 따로 있어야 한다. 구두를 닦고 유리알을 가는 것도 필요한 직업이다. 다만 그들은 사회생활을 위한 시간을 최소한도로 줄이고 보다 많은 시간을 자기의 자유로운 개인생활에 충당하려는 사람들이다. 그런 까닭에 그들의 의식주의 생활이나 사회적 지위에 대한 요구는 그리 큰 비주잉 못된다. 배불리 먹고 자유의 시간을 뺏기기보다는 굶주릴 망정 자유의 시간을 더 많이 갖고 싶어하는 사람들이다. 좋은 문학수필이란 이런 사람들에 의하여 써진 글이다. 그런 까닭에 수필가란 따로 없다. 다만 그들은 문인일 뿐이다. 소설이나 시를 못 쓰거나 아니 쓰는 문인 그것만으로 만족하지 못한느 사람들의 생활의 소산이다. 무엇을 읽고 쓰고 생각하고 이야기하는가는 그들의 경우, 감정 취미 개성에 따라 같지가 않다. 그들의 글이 다양다채한 이유다. 그들은 구속을 싫어한다. 아니 그들이 자유분방한 사상은 구속을 감내하
지 못한다. 까닭에 글에서조차 형식의 구속을 싫어한다. 수필의 무형식인 이유가 여기 있다. 그들은 개성이 강한 까닭에 옛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오직 새로운 것을 추구하고 새로운 것을 창조한다. 이것이 그들의 문학정신이다. 그들의 가슴에는 항상 벅찬 무엇인가가 충만해 있다. 이 충만한 물결이 넘쳐 흘러 글이 된다 발마이 스칠 때마다 소릴 낸다. 이 소리가 울려 글이 된다. 이것은 거의 그들의 생리적 현상이다. 내가 저명한 수필을 읽고 얻은 결론은 이것이었다.
여화餘話
남의 글을 읽지 않고 쓴다는 것도 불가능한 일이요, 글을 써 보지 않고 남의 글을 알아본다는 것도 어려운 일이다. 그런 까닭에 독서와 습작은 병행해야 한다. 좋은 글을 읽고 감격하면 스스로 글을 쓰고 싶은 충동을 느끼고, 글을 써 보고 어려운 것을 느끼면 비로소 남의 글의 장점과 묘한 수법을 깨닫게 된다. 수필이라고 해서 반드시 수필에서만 배우는 것이 아니다. 시에서 소설에서 희곡에서 문장에서 배우는 것이다. 혹은 고전에서 외국문학에서 혹은 문학론에서 혹은 평론에서 널리 배워서 내 역략을 기르고, 문리의 통측通側과 묘사의 특이한 수법을 빌어 내 농중물籠中物을 만든 후에 비로소 내 특기를 발휘할 수 있는 것이다.
삼인행三人行에 필유오사必有吾師라고 했다 독법讀法에 따라서는 명문과 악문이 다 오사吾師가 될 수 있다. 저명한 문학가의 글이라고 모두 모범이 되는 것도 아니요, 내 개성과 맞지 아니하면 내 소득이 될 수는 없다. 처음에는 작품에 의하여 대가가 되고 뒤에는 대가의 글인 까닭에 명문이 되는 수가 많다. [고도자기古陶磁器]와 [꿈 속의 어린이]와 같은 수필이 있었음으로써 찰스 램인 것이다. 그러나 나머지는 찰스 램의 작품인 까닭에 저명할 수도 있다. [아버지의 뒷모습]이나 [달밤의 연못]과 같은 작품이 있으므로 해서 서정수필의 주자청이다. 나머지는 주자청의 작품이라고 해서 읽힐 수도 있다. 그러므로 아무리 대가의 글이라도 배울 것은 그 대표작에 있다.
백락伯樂의 눈이 없으면 준마駿馬는 못 본다. 글을 깊이 읽으면 배울 글은 얼마든지 있다. 나는 단재丹齎의 사론史論을 읽고 그 긴 역사 이야기가 첫 자서부터 끝 자까지 한 호흡으로 일관된 정열을 배우려 하되 얻지 못했다. 김동인의 글의 그 생동하는 맛과 희미한 분위기(기분)를 능히 구상화해 내는 솜씨를 배우려 하되 얻지 못했다. 이병기의 고담高淡하고 겸허한 문장을 배우려 하되 얻지 못했다.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에서 풍기는 무드를 담으려 하되 얻지 못했다. 피천득의 참신하고 농도 짙은 솜씨를 따르려 하되 얻지 못했다. 만일 이런 것들이 충분히 내 글 속에 융해될 수 있다면 회심會心의 자만을 느낄지도 모른다. 배울 글은 얼마든지 있다. 다만 그 장점을 못 보고 쉽게 읽어 버린다면 단재의 글은 진부할 뿐이요, 김동인의 글은 시정의 묘사일 뿐이요, 이효석은 소설일 뿐이요, 피천득은 소년소녀의 문학같이 곱고 아름다울 뿐이다. 사실 피천득의 글은 그 곱고 정서적임으로 해서 많은 독자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차라리 그의 약점이다. 그의 장점은 정서의 솔직한 구체화오 농도 있는 성구成句의 사용에 있다. 한 예로 그의 [오월]이란 글 중에 "실록을 바라보면 내가 살아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즐겁다. 내 나이르 세어 무엇하리. 나는 오월 속에 있다." 이 한마디가 족히 남의 신록예찬의 수십 페이지의 서술에 필적할 농도를 지니고 있다.
글을 잘못 쓰더라도 최소한 두 가지만은 지켜야 한다. 첫째, 무엇인가 자기가 생각해 낸 꼭 하고 싶은 말이 하나는 포함되어 있어야 한다. 둘째, 명문은 못쓰더라도 일반 문장에서 과히 벗어나지는 말아야 한다.
내가 원하는 수필은 시로 쓴 철학이 아니면 소설로 쓴 시다. 그러나 이것은 먼 산의 무지개일지도 모른다. 내 지금까지 수필을 쓰려는 젊은이들을 위하여 - 초심자들을 위하여 - 여러 가지 말을 해 왔다. 그러나 이것은 내 자신에게 주는 말이기도 하다. 우리는 이렇게 해서 수필을 모색하고 닥아 나가야 하지 아니할까 생각한다. 역량 있는 신진들의 진로에 참고가 된다면 분외의 행이라 하겠다.
- 수필문학입문 <끝>
(11/02, 06:31) : 실은, 책의 일부만을 소개하려 했는데, 늘 보아주시는 문우님들 덕(?)에 책의 2/3를 타이핑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출처 : - ☆ 시인의 향기 ☆- http://club.iloveschool.co.kr/poe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