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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수정 강좌] 2. 시에서의 화자 -박제천

시창작강의실

by 백연심 2006. 11. 18. 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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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http://www.poemworld.co.kr/포엠월드 창작실기강좌

 

[시 수정 강좌] 2. 시에서의 화자 ---박제천

 

2. 시에서의 화자  -박제천

쫇 대상 작품

수혈

1* 마른 피를 수혈받아
2* 떨리는 심장으로 일어서고 싶다

1* 오죽하면,
2* 비 한방울 내리지 않는 잡초더미
3* 냉정한 바람이 빈 하늘을 흔들고 있다
4* 안단테로 콧소리를 내다가
5* 나는 불안한 가을을 접어
6* 종이학 위에 태워 날려 보기도 했다

1* 온갖 밀담으로 찌든 꿈의 살점
2* 거꾸로 매달려 신음하다가
3* 사생아의 탯줄처럼 버려져 뒹굴었다
4* 실핏줄로 뻗어나간 죄의 피
5* 발끝마다 채이는 더럽혀진 몸뚱아리
6* 드러난 죄, 한겹 옷을 덧입으며 감춘다

1* 캔버스 위에 오솔길을 걷다가
2* 문득 또다른 길이 열리는 것을 똑똑히 본다
3* 한줌 재가 된 살점
4*` 흙속으로 가라앉고 있는 마른 핏자국을

쫊 평설

대상 작품은 낙엽을 한평생 죄에 찌들려 살다 가는 몸뚱아리의 비애로 나타냈다. ‘한 줌 재가 된 살점’이라는 죽음을 통해 ‘또다른 길’이 열림을 꿰뚫어보는 삶에 대한 안목에 호감이 간다.
그러나 시를 읽으면서 맨먼저 느껴지는 난점은 시의 화자(話者) 즉, 퍼스나가 통일되어 있지 않은 점이다. ‘낙엽’이라는 화자에 ‘나’라는 화자가 개입하여 읽는 이로 하여금 혼동을 가져온다.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은 하나인데, 1·2·5연의 ‘나’라는 화자와 3·4연의 ‘낙엽’이라는 화자가 등장하여 시의 초점을 흐려놓고 있다. 퍼스나는 언제나 하나여야 한다. 특수한 경우 둘 이상일 때는 서로 간에 교감이 잘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초심자는 퍼스나를 둘 이상 생각지 않는 게 좋다. 하나 이상을 처리할 수 있다면 그는 이미 숙련된 테크닉의 소유자이다.
2연의 ‘안단테로 콧소리를~날려보내기로 했다’는 다소 작위적이다. 앞 행과 연관이 없어 무슨 뜻인지 불분명하고 표현의 미숙성이 엿보이므로, 삭제하는 것이 오히려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을 명료하게 한다. 그리고 ‘불안한 가을’ ‘냉정한 바람’ ‘꿈의 살점’ ‘사생아의 탯줄’ 등의 표현들도 어딘가 낡고 시어로서의 격이 떨어진다. 3연은 그러한 표현들이 모여 있는 곳이라 할 수 있다. 새로운 표현을 찾아야 할 것이다.
마지막 연에서는 ‘캔버스’라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상황이 갑자기 돌출하고 있어 어리둥절하게 만든다. 마지막 연에서 다른 상황이나 분위기를 연출하여 극적인 효과로 성공을 거두는 경우가 있지만, 여기서는 걸림돌이 되고 있다. 앞에서 시의 배경이 그림이라는 암시가 있어야지만, 캔버스가 설득력을 가질 수 있겠다. 또 ‘캔버스 위에 오솔길’에서 ‘위에’는 ‘위의’로 써야 한다. 흔히 조사를 소홀히 하는 예가 많은데, 시에서도 맞춤법은 정확하게 지켜야 함을 명심해야 한다. ‘오죽하면’과 같은 연결 부사도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시어로서 사용을 자제해야 한다.
이 작품의 수정 방법은 첫째, 시의 화자를 ‘나’로 통일하는 것이고, 또한 캔버스를 오브제로 사용해 시의 골격을 갖추는 것이다. 따라서 어미 처리는 ‘나’라는 화자가 이야기하는 식으로 바꾸었다. 군데군데 어색한 표현들은 삭제하거나 다시 다듬었고, 의미를 손상하지 않는 범위에서 행과 연을 갈라 보았다.
둘째, 시인의 당초 의도대로 ‘수혈’을 오브제로 사용한다면 수혈과 관련된 정보를 새로이 도입해야 한다.
원작자가 그후 어떻게 수정했는가, 수정 작품을 가져오지 않았으므로 첫번째 수정 방법으로 개작해 보았다. 캔버스를 오브제로 삼아 낙엽을 작품화해 본 것이다. 그러나 제2연은 원작자의 작품에 의존한 관계상 표현의 무잡성을 가실 수 없었다. 구성과 전개를 특히 유의해 보길 바란다.

쫈 수정

낙엽

낙엽의 빛깔, 흑갈색 어두운 땅의 빛깔
그 마른 피의 빛깔들을 화판 가득 짓이긴다

비 한방울 내리지 않은 잡초더미
바람은 빈 하늘만 냉정하게 흔들고
온갖 이야기들로 얼룩진 꿈들은
거꾸로 매달린 채 신음하다
버려져 나뒹굴고 있다
발끝마다 더러운 몸뚱이들이 채이고 채여
어리석은 꿈들이 자꾸만 드러나고
또다른 어리석은 꿈들이 그 위를 덮지만
실핏줄로 번져나간 저 죄의 피들은 어찌할 수 없는 것인가

캔버스 속 오솔길을 따라 걸어가면서
한 줌 재가 되어가는 낙엽들을 바라보면서
흙 속으로 가라앉고 있는 마른 핏자욱 사이로
또다른 길이 열리고 있음을,
나는 화판 가득 또다른 색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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