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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김영천의 `연탄재의 유언` 외

예쁜 시

by 백연심 2015. 6. 25. 1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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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탄에 관한 시 모음> 김영천의 '연탄재의 유언' 외

+ 연탄재의 유언

내 죽으면 화장을 하거라
뼛속까지 속속들이 잘 태워
몽근 가루로 빻은 다음
달동네
별동네
그 굽이굽이 어둡고 미끄러운
골목길에 뿌려다오

가스보일러, 기름보일러
등 따시고 배부른 사람들 자가용 밑에는
염화칼슘 그 마약 같은 흰 가루를
뿌린다 하더라만
아직도 부끄러운 살빛으로 쌓였다가
일상의 피로에 지친 저 어미와
노동의 완력에 다친 저 아비의 발 밑에서
차라리 나는 자진하겠으니
더러는 덩어리째 던져다오

아낌없이




(김영천·시인, 1948-)


+ 연탄재를 바라보며

하얀 연탄재가
인사라도 하는 듯
몸을 웅크리고 서 있는 골목길을 지나며
난 늘 부끄럽다.

너, 그렇게, 열심히 살았구나.
하얀 뼈가 다 타오르도록.

동해물과 백두산이...... 어쩌고 저쩌고
하는 사람보다
응달진 골목길에 내버려진
네가 항시 부끄러워

나 고요히 머리를 숙이고
네 창백한 살결 한번
쓸어보고 싶어. 살아생전 구하지 못했던
내가 그대에게
마치, 옛사랑, 용서받기를 차마 청하려는 것처럼.
(김승희·시인, 1952-)


+ 연탄재
  
빙판길 미끄러워
연탄재 생각난다

함부로
차본 적 있다
철없었던 옛적에
(오정방·시인)


+ 연탄

열아홉 개의 구멍으로 세상을 보면
열아홉 고비의 험한 고갯길 인생행로가 보인다
연탄이 타는 것은
피가 타는 것
연탄은 가난한 사람들의 시름을 태우고
달동네 구들장에서 훨훨 승천한다
때론 상가 마당에 모닥불로 타올라
둘러선 조문객의 쓸쓸한 표정들을
어디론가 가져간다.

열아홉 개의 구멍이 타는 불꽃은
수천 년 땅 속에 갇힌 원한을
고단한 삶의 넋두리와 함께
이생에서 화장이라도 하는 듯한
엄숙한 모습이다.
(김상현·시인)


+ 연탄재  

부디 콱 밟아
아주 부수어 주세요
더 이상 뜨겁지 못할 거라면
사랑 다한 추한 모습
보이고 싶지 않아요
미련, 그런 척하지 말고
마지막까지 당신의 발 아래
산산이 부서지고 싶어요
(김종태·시인, 1971-)


+ 연탄  

흰 연탄이 가벼운 이유는
밤새 정열을 다 뿜었기 때문이다
(김종태·시인, 1971-)


+ 번개탄    

난 연탄을 달구고 싶다
고작 일회용일지라도
시커먼 연탄 시뻘겋게 달구고 싶다
고작 휴대용 숯불이 되어
조개나 굽고
삼겹살이나 굽기는 싫다
난 너를 달구는
번개탄이 되고 싶다  
(김종태·시인, 1971-)


+ 너에게 묻는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안도현·시인, 1961-)


+ 연탄 한 장

또 다른 말도 많고 많지만
삶이란
나 아닌 그 누구에게
기꺼이 연탄 한 장 되는 것

방구들 선득선득해지는 날부터 이듬해 봄까지
조선팔도 거리에서 제일 아름다운 것은
연탄차가 부릉부릉
힘쓰며 언덕길 오르는 거라네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알고 있다는 듯이
연탄은, 일단 제 몸에 불이 옮겨 붙었다 하면
하염없이 뜨거워지는 것
매일 따스한 밥과 국물 퍼먹으면서도 몰랐네
온 몸으로 사랑하고 나면
한 덩이 재로 쓸쓸하게 남는 게 두려워
여태껏 나는 그 누구에게 연탄 한 장도 되지 못하였네

생각하면
삶이란
나를 산산이 으깨는 일
눈 내려 세상이 미끄러운 어느 이른 아침에
나 아닌 그 누가 마음놓고 걸어갈
그 길을 만들 줄도 몰랐었네, 나는
(안도현·시인, 1961-)


+ 반쯤 깨진 연탄

언젠가는 나도 활활 타오르고 싶은 것이다
나를 끝닿는 데까지 한번 밀어붙여 보고 싶은 것이다
타고 왔던 트럭에 실려 다시 돌아가면
연탄, 처음으로 붙여진 나의 이름도
으깨어져 나의 존재도 까마득히 뭉개질 터이니
죽어도 여기서 찬란한 끝장을 한번 보고 싶은 것이다
나를 기다리고 있는 뜨거운 밑불 위에
지금은 인정머리 없이 차가운, 갈라진 내 몸을 얹고
아래쪽부터 불이 건너와 옮겨 붙기를
시간의 바통을 내가 넘겨받는 순간이 오기를
그리하여 서서히 온몸이 벌겋게 달아오르기를
나도 느껴보고 싶은 것이다
나도 보고 싶은 것이다
모두들 잠든 깊은 밤에 눈에 빨갛게 불을 켜고
구들장 속이 얼마나 침침한지 손을 뻗어보고 싶은 것이다
나로 하여 푸근한 잠자는 처녀의 등허리를
밤새도록 슬금슬금 만져도 보고 싶은 것이다
(안도현·시인, 1961-)


+ 연탄

새까만 연탄은 어쩐지
힘차게 활활 거리면서 쇳덩이마저
금세 녹여버릴 것 같은 믿음을 주는
지금 그대로의 모습보다는
하얗게, 아주 완전히 타버린 모습이
가장 보기 좋다.

그래서 퍼석퍼석하니 잘디잘게
잘 부서져, 쉽게 가루로 변할 때
"그놈 참 괜찮은 연탄이었어."라고
말해주고 싶은 때 있었다.

어찌된 영문인지, 타다가 말고
시름시름 꺼져버렸거나
끝까지 타긴 탄 것 같은데
좀 희끄무레한 모습으로
아궁이를 빠져나오는 연탄은
왠지 꼴 보기 싫거나
기분이 끌끌하지 않은 적 많았다.
(안재동·시인, 1958-)


+ 연탄 배달부 민씨

기름 보일러 시대에도
연탄 배달부는 건재하다.

차가 다닐 수 없는 막다른 골목까지
환갑 진갑 다 지난 연탄 배달부 민씨의 리어카가
닿지 않는 곳이 없다.

민씨가 앞에서 끌고
그 영부인이 리어카를 뒤에서 민다.

얼굴도 입성도 연탄 검댕이로 새까맣지만
백발만은 연탄도 건드리지 못하는 성역이다.

눈 내리는 날에도 연탄 빛깔은 검듯이
검은 연탄도 백발만은 어쩌지 못한다.
(김시종·시인)


+ 연탄불

고1 때 방 한 칸 얻어 할머니와 자취하던 방
연탄 한 장으로 24시간을 버티던 방
그 방 지금 그립다
아랫목에 이불 한 장 깔아 놓고
밥 한 그릇 떠 이불 속에 넣어 두고
날 기다리던 방
그 방 지금도 춥다

노란 부리에 송곳니 같은 꿈 키워내던 방
냉골이 더 시원하시다며 윗목에서
늘 새우잠을 주무시던 그 방
시린 목 줄기에 선명히 떠오르는 사람 하나
그 사람 지금 그립다

누군가의 시에서 "지상의 방 한 칸"을 노래하였듯이
이 지상에 내 소유로 된 방 한 칸 없었어도....
(이영춘·교사 시인, 강원도 평창 출생)


+ 연탄(煙炭)

눈보라 흩날리는 출출한 저녁
몇이 어울려 찾은 시장통 허름한 술집에서
참 오랜만에
화덕 속에 갇혀 불타는 너를 보았다.
푸른 불꽃이 타오르는
붉게 충혈된 눈구멍 위에
지글지글 돼지 비계를 태우며
나도 너처럼 벌겋게 취하고 싶은 것은
새록새록  새겨지는
지난날의 향수 때문만은 아니란다.
언제부터인가
너를 받아들일 아궁이를 메워버리고
꽤나 부자가 된 것처럼
꽤나 행복해진 것처럼 느끼며
부끄럽게도 너무 오래
까마득히 잊고 지내왔구나.
하루에도 몇 번씩 자판기에서 뽑아 마시는
한 잔의 커피 값으로
이 밤도 찬바람 몰아치는 산비탈에서
까만 몸뚱이를 하얗게 태우며
홀로 누운 노인들의 방구들을
밤새도록 따뜻하게 달구고 있을 너의 존재와
너와 함께 살아가는
외로운 이들의 구멍 뚫린 가슴을.
(한승수·제주의 서정시인)


+ 연탄 갈아넣기 - 어머니 생각

허리 구부려 연탄아궁이에
연탄 갈아넣기는 어머니의 몫이었다
웬일로 연탄은 꼭 새벽에만 갈아넣게 되었던지
웬일로 그때는 또 그렇게 추웠던지
영하 10도가 넘는 새벽 두 세시 사이에
어머니는 일어나 연탄을 갈러 나가셨다
나는 알면서도 잠자는 척 이불을 덮어썼다
그리고 빈말로 어머니를 속였다
왜 저를 깨우시지 않고
연탄은 또 왜 꼭두새벽에 갈아넣어야 해요
그래, 그래야 불꽃이 좋아 아침밥 짓기가 좋지
어쩌다 내가 연탄을 갈러 나가면
어머니는 질겁해 따라 나오시며
너는 연탄내 쐬면 안돼 또 연탄은 구멍을 잘 맞춰야 하는데
너는 안돼 나를 밀쳐내시고
허리를 구부정, 연탄집게로 더듬더듬 연탄을 가시는데
폭 타버린 밑탄을 들어내고 불꽃이 남은 윗탄을 밑탄으로 앉히고
그 위에 새까만 새탄을 밑탄과 구멍을 맞춰 얹으시고
연탄아궁이 구멍을 확 열어 놓으셨다
활활 불꽃을 타고 올라오는 연탄내 때문인지
연신 쿨럭쿨럭 밭은 기침을 뱉으시며

어머니 용서하세요, 어머니 돌아가신 뒤 기름보일러에서 가스 보일러로
바뀌어 지금은 연탄 갈 일 없어졌어요
(정대구·시인, 1936-)


+ 연탄 한 장의 행복

참 따뜻하다
겨울마다 추위로 고생했는데
연탄 보일러로 교체한
올 겨울은 따뜻하게 지내겠네

연탄을 가득 실은 리어카
달동네 비탈길을 힘겹게 오른다
앞에서 끌고 뒤에서 밀며

이마에는 땀방울이 송글 송글
매서운 겨울 바람도 춥지가 않다
독거 노인 어려운 이웃 생각하면

감사의 눈물
기쁨의 환한 주름진 얼굴

나눔의 행복
뿌듯한 마음

시커먼 연탄 한 장
어떤 보석보다 빛나네

구멍구멍 쌓인
작은 행복
따뜻한 정

연탄 한 장의 작은 나눔
큰 사랑 큰 행복
(이문조·시인)

* 엮은이: 정연복 /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

출처 : 수련(睡蓮)
글쓴이 : 수련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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