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미/문태준-
처음에는 까만 개미가 기어가다 골똘한 생각에 멈춰
있는 줄 알았을 것이다
등멱을 하러 엎드린 봉산댁
젖꼭지가 가을 끝물 서리 맞은 고욤처럼 말랐다
댓돌에 보리 이삭을 치며 보리타작을 하러 겉보리처럼 입이 걸던 여자
해 다 진 술판에서 한잔 걸치고 숯처럼 까매져 돌아가던 여자
담장 너머로 나를 키워 온 여자
잔뜩 허리를 구부린 봉산댁이 아슬하다
<감상>
참 재미있는 시다. 이 시는 추풍령 아랫녘 농촌 출신의 시인이 아니라면 쓰기 힘들었을지 모른다. 등멱을 하러 엎드린 봉산댁 '젖꼭지'를 기어가다 골똘한 생각에 멈춰 서 있는 까만 '개미'로, 또 가을 끝물 서리 맞은 '고욤'으로 그려낼 수 있는 시선과 필력은 분명 문태준 시인의 농촌 생활의 실제 체험에서 얻어진 것이리라. 그 까만 개미와 말라붙은 고욤의 주인인 봉산댁이 "담장 너머로 나를 키워 온 여자"라는 진술에서 이 시의 의미는 더욱 풍성해진다. 짧은 서정시 한 편이 성장 소설 장편의 크기에 맞먹는다. 내 고등학교 자취시절, 대구시 봉덕동 내 차취방 부엌 너머로 건너다 보이던 세계 명화의 풍만한 여인 같던 이웃집 그 여인은 잘 있는가 몰라.
-이종암(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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