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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상가(喪家)에 모인 구두들 / 유홍준

해설이 있는 시

by 백연심 2008. 1. 28.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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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가(喪家)에 모인 구두들 / 유홍준(1962~ )


저녁 상가에 구두들이 모인다
아무리 단정히 벗어놓아도
문상을 하고 나면 흐트러져 있는 신발들
젠장, 구두가 구두를
짓밟는 게 삶이다
밟히지 않는 건 망자(亡者)의 신발뿐이다
정리가 되지 않는 상가의 구두들이여
저건 네 구두고
저건 네 슬리퍼야
돼지고기 삶는 마당 가에
어울리지 않는 화환 몇 개 세워두고
봉투 받아라 봉투,
화투짝처럼 배를 까뒤집는 구두를
밤 깊어 헐렁한 구두 하나 아무렇게나 꿰 신고
담장 가에 가서 오줌을 누면, 보인다
북천(北天)에 새로 생긴 신발자리 별 몇 개

[해설]
상가(喪家)는 누구든 필시 죽음으로 나아간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가장 확실한 지표다. 실존의 햔계상황으로서 한 망자의 주검은 인
간이 자기의 정체성을 인식하는 중요한 계기가 된다. 잠시나마 장
차 도래할 죽음에 대한 사색은 자신의 삶에 대한 진지함과 동시에
축제성을 부여한다.
문상을 끝내자마자 흐트러져 있는 산자들의 신발은 오늘 여기의
삶이 아주 귀중한 것, 반복될 수 없는 모험임을 알려준다. 담장가
에 오줌을 누며 바라본 북천의 새로운 신발자리는 자신의 삶이 외
부로부터 온 소중한 하나의 선물이라는 것을 깨닫게 한다.-시인 임동확

-광주일보.제17086호-
출처 : 시의 향기로 여는 마당
글쓴이 : 김영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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