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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손은 손을 찾는다 / 이문재

해설이 있는 시

by 백연심 2008. 1. 28.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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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당문학상 최종 후보작 지상중계 ⑧  




"손이 손을 잡아야 비로소 사랑이다”
기계문명 너머를 꿈꾸는 시인의 노래


시인 이문재는 목하 도모 중이다. 무언가를 꿈꾸고 있고, 무언가를 도발하고 있다. 그 무언가의 전모가 드러난 건 아직 아니지만, 단서는 이미 우리 앞에 놓여있다. 손이다. 이문재의 올해 시편을 돌아보는 건 ‘가슴 앞에서 가지런해지는’ 두 손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일이다.

단서가 던져졌으니 단서가 가리키는 바를 좇아야 한다. 하나 그 전에 할 일이 있다. 시인이 처한 현실을 먼저 알아야 한다. 시인은 지금 현실 너머를 상상하고 있고, 그 너머를 향한 모종의 공작을 진행 중에 있다. 다행히 시인은 여러 시편에다 삶의 흔적을 남겨두었다. 그 증거들을 종합해 시인이 처한 현실을 재구성한다.

시인이 사는 세상은 가령 이러하다. ‘가난한 사람들은 가난과 더불어 더 가난해지고 도시는 흡반을 들이대 시골의 피를 빨아먹고 인류는 행복보다 불안을 더 친해하고’(‘수처작주’에서 인용).

시인이 사는 하루는 또 이러하다. ‘아침이 아니고 출근시간이라고 말해야 한다. 내 입술을 다른 입술에 포갠 적이 언제였던가. 충전은 휴대전화 밧데리에게만 쓰이는 말이었다.’(‘제국호텔 - 우리, 기계보다 기계적으로’에서 인용)

시인이 사는 처소는 이를 테면 이러하다. ‘햇볕 들지 않는 북향 키울 수 있는 화초는 산세베리아뿐 일곱 평짜리 오피스텔 9층 혼자 산다는 것은 일인용 일회용과 더불어 사는 것 접이식 침대를 펴고 텔레비전을 켜고 나는 나를 껐다’(‘산세베리아’에서 인용)

이처럼 답답한 공간에 시인이 갇혀있다. 산세베리아만 겨우 숨 쉴 수 있는, 행복보다 불안이 더 친숙한 제국호텔 안에 시인은 수용돼 있다. 이제 시인은 탈출을 선언한다. 탈출의 수단은, 물론 손이다. 한데 왜 하필 손인가. 이 해답 역시 시편에서 찾을 수 있다.

‘옆에 앉는다는 것은/손으로 만지기를 좋아한다는 것이다./…/자본주의가 창궐하고 있는 여기까지가/남자의 시대, 시각의 시대였다./눈을 감으면 남자가 사라진다.’(‘아주 낯선 낯익은 이야기’ 부분)

‘사랑은 손에서 시작한다./사랑은 손이 하는 것이다./손이 손을 잡았다면/손이 손 안에서 편안해 했다면/…/사랑이 두 사람 사이에서/두 사람 안으로 들어간 것이다.’(‘아직 손을 잡지 않았다면’ 부분)

자본주의 시대는 시각의 시대다. 그 시각 독점주의에서 풀려나야 한다고, 그래서 촉각을 부활해야 한다고 시인은 외친다. 여기서 다시 질문. 왜 굳이 촉각일까. 시인은 “가까이 다가가야 하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시각은 멀찌감치 서있어도 작동하지만, 내 손은 당신의 옆자리에 앉은 다음에야 당신의 손을 잡을 수 있다. 그러니까 손은 결국 사람이고, 사랑이다.

김수이 예심위원은 “문명비판 메시지를 연애시처럼 풀어낸 시인의 감각이 돋보인다”고 평가했고, 시인은 “이미지와 메시지를 합한 ‘이메시지(Imessage)’의 작업을 시도했다”고 설명했다.

오늘, 잠깐 눈을 감자. 그리고 사랑하는 이의 손을 잡자. 그래야 비로소 사랑이다.

<중앙일보> 
글=손민호 기자, 사진=김경빈 기자

*출처 : 시와 그리움이 있는 마을
출처 : 시의 향기로 여는 마당
글쓴이 : 김영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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