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물 승천 / 정우영 (1960~ )
오랜만에 고향집 뒤꼍으로 가서
한 이십 년 족히 닫혀 있던 우물 뚜껑을 열었더니
늙은 개구리 한 마리 엉금엉금 기어나오고
반쯤 쥐어 뜯긴 붕어도 한 마리 슬슬 헤엄쳐 나온다.
꽃다운 나이 열둘에 우물 속으로 사라닌 누이도 나올가 싶어
한참 동안 쭈글치고 앉아 기다린다.
영 기미가 없어 윗몸 우물에 거꾸로 들이밀고 소리친다.
우리 누이는 언제 나온다냐?
내 말 메아리 되어 우물 속을 웅웅 떠다니더니
마술인 듯 우물에서 하늘 길 열리고
누이 닮은 하얀 연꽃 아나 다소곳이 걸어나온다.
아하. 나는 불현듯 깨닫는다.
누이는 선녀처럼 두레박 타고 내려가 승천했음을.
우리집 우물이 하늘로 되돌아가는 자궁임을.
[해설]
우물은 하늘을 받아들이고 하늘은 또한 자신의 그림자를
우물에 던진다. 그런 우물 속에 빠져 죽은 누이를 불러
내고자 한다. 우물 속에 비친 나의 시선을 통해 현재 자
신을 감싸고 있는 '고향집'과 자신을 벗어난 '하늘 길'
사이에 놓인 심연을 건너가고자 한다. 불현듯 죽은 누이
가 하얀 연꽃으로 피어나고, 선녀처럼 승천하는 마술이
일어날 때는 바로 이 순간이다.
결코 내가 아닌 우물 속에 제 그림자마저 의식하지 못할
때 고향집 뒤꼍의 우물은 이승과 저승의 경계를 잇는 우
주적 성(聖) 우물이 된다.- 시인 임동확
-광주일보.제17106호-
출처 : 시의 향기로 여는 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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