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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대책 없는 봄 / 임영조

해설이 있는 시

by 백연심 2008. 1. 28.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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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책 없는 봄 / 임영조 (1945~2003)


무엇이나 오래 들면 무겁겠지요
앞뜰의 목련이 애써 켜든 연등을
간밤엔 죄다 땅바닥에 던졌더군요
고작 사나흘 들고도 지루했던지
파업하듯 일제히 손을 털었더군요
막상 손 털고 나니 심심했던지
가늘고 긴 팔을 높이 뻣어서 저런!
하느님의 괴춤을 냅다 잡아챕니다
파랗게 질려 난처하신 하느님
나는 터지려는 웃음을 참았지만
마을 온통 웃음소리 낭자합니다
들불 같은 소문까지 세상에 번져
바야흐로 낯뜨거운 시절입니다
누구 짓일까, 거명해서 무엇하지만
맨 처음 발설한 건 매화년이고
진달래 복숭아꽃 살구꽃이 덩달아
희희낙락 나불댄 게 아니겠어요
싹수 노란 민들레가 망보는 뒤꼍
겁 없이 멋대로 발랑 까진 십대들
냉이 꽃다지 제비꽃이 환하더군요
몰래 숨어 꼬나문 담배불처럼
참 발칙하고 앙증맞은 시절입니다
나로서는 대책 없는 봄날입니다


[해설]
고작 사나흘을 견디지 못하고 까불거리며 흩날리는
꽃잎들. 겨우내 찬 바람과 눈보라를 뚫고 꽃 피운
입장에서 보자면 매우 허무한 일이겠으나, 그 어떤
삶의 무게도 견디지 못하겠다는 듯 서둘러 낙화한다.
그러면서 자신을 존재케 한 하느님의 괴춤을 잡아당
겨 당황케 하며 희희낙락이다. 그저 짧기만한 생의
한 순간에 대한 대책 없는 낙천주의다. 그야말로 무
대책이 유일한 대책인, 미처 제지할 틈도 없이 저물
어 가는 봄날이다. - 시인 임동확

-광주일보17126호-
출처 : 시의 향기로 여는 마당
글쓴이 : 김영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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