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수지 / 박세현 (1953~ )
쩍, 갈라져
미치도록 갈증스런
저수지 밑바닥
넘실대던 물 몽땅 증발하고
한 방울의 물도 채울 길이 없어
바닥에 바닥을 대고 있는 풍경이
차라리 정직하고 편해 보인다
둑방을 흘러넘치던
물의 압력을 벗어버리고
부질없는 출렁임도 놓아버린
저수량 제로의 순간
슬픈 유물처럼 떠오른 시신 한 구
눈이 덜 감겨 있다
[해설]
누구든 바닥을 드러낸 저수지처럼 자신이 욕망의
포로에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순간적이나마 마음
의 평정 또는 평화를 얻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 욕
망의 저수량이 제로라고 느끼는 순간, 슬픈 유물처
럼 그 밑마닥에 떠오르는 눈이 덜 감긴 시신 한 구
는 그 어떤 대체나 충족을 허락하지 않는 욕망의 무
한한 탐욕을 말해준다.
죽어서도 포기할 수 없는 욕망은 끊임없이 주어진
대상이나 환경에서 벗어나려는 반복 없이 진정한 삶
이 없음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시인 임동확
-광주일보.제17202호-
출처 : 시의 향기로 여는 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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