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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움의 거리 - 조재영

좋은 글

by 백연심 2004. 9. 28. 0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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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움의 거리


                     조재영
 

 

내 메마른 정원에 비를 몰고 우연처럼 당신이 왔었네

그때 난 당신을 알아보지 못하고

빗줄기에 내 정원이 맑게 씻기는 것만 바라보았네

당신이 다시 우연으로 떠난 후였을까 어느 날인가부터

내 가슴 한켠에서 삐걱이는 소리가 나기 시작했네

비가 그칠 무렵, 나무들이 푸른 눈을 뜰 무렵

나는 알았네 당신이 내 가슴에

녹슨 그네 하나를 걸어두고 갔다는 걸

나는 그네 타는 법을 알지 못하는 아이처럼

그네 줄을 움켜쥐고 바르르 떨면서

작은 흔들림에도 겁먹은 채 이렇게 매달려 있네

그네줄이 흔들리는 폭만큼, 그 속도와 깊이로

내 위태로운 시간도 깊어가네

당신에게 닿을 수 없는 이 그리움의 거리

나는 그네 위에서 발을 한번 굴러보네

웃는 것 같고 또한 우는 것 같은 이 生의 삐걱임 소리

당신이 내 가슴에 걸어두고 간 이 길고 긴 침묵의 소리

그네줄이 닿지 못하는 당신과 나 사이 꼭 그만큼의 거리에

오늘은 서늘한 조각달 하나 물음표처럼 걸려 있네

서쪽으로 서쪽으로 천천히 흐르더니

어느새 내 정원의 푸른 나무 한 그루

당신 쪽으로 옮겨놓고 있었네

내 가슴의 그네 하나, 위태롭게 매달려

녹슨 시간을 바라보고 있네

 

 

조재영 시인은서울예대 문예창작과, 방송대 국문학과를 졸업 1992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플라타너스는 잎들을 둥글게 말아올리고"와  "하지" 가 당선 
홈페이지 http://user.chollian.net/~pino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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