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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마 유치환님의 5천통의 러브레터......

시 창작 자료방

by 백연심 2007. 4. 1. 0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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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태범(소설가)-청마 유치환님의 5천통의 러브레터......

 

아침에 본 유치환님의 뜨겁고도 성결한 사랑의 러브레터 에피소드에 갑자기 가슴이 먹먹해져 옵니다.
1년에 300통이니 거의 매일인데.... 어찌 이렇게 오래 동안 사랑을 간직해 온단 말입니까?
그러니깐 시인 인지도 모르죠. ^^*
국제신문(10/31)에서 옮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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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공일짜 : 2000년 10월30일
제목 : 《신태범의 부산문화 野史》... <15>5천통의 러브레터

게재면:29
발행일:2000.10.31



 1946년 통영여자고등학교 교무실. 수예선생으로 새로 부임한 여선생이 고
참선생 자리를 돌며 인사를 올리고 있었다.
 당시 통영여고는 청마 유치환 작곡가 윤이상 화가 전혁림 등이 있어 「문
예여고」라 불려지고 있었다. 여선생이 청마 앞으로 갔다. 『유치환 선생님
이시죠, 잘 지도해 주세요. 사실은 저도 시인 지망생이거든요…』
 『아아… 그래요…! 정말 반가워요…!』
 『발령 소식 듣고 얼마나 기뻤는지 몰라요. 특히 선생님과 같이 근무하게
되어 행운이라고 생각해요…』 여선생의 다음 말을 엿듣고 있던 옆자리의
윤이상이 한마디 거든다.
 
『유선생 오늘 밤 잠 못 이루게 생겼어. 저런 미인 여선생 팬이 곁에 왔으
니 말야…』 뒷자리의 전혁림도 이죽거린다. 『유선생은 좌우간 여복이 터
진 사람이라니까…』 여선생은 수줍게 웃으며 두 사람에게도  목례를 보냈
다. 『선생님들도 잘 부탁해요…』 그제야 여선생을 똑 바로 쳐다보던 청마
는 가슴이 서늘해지는 충격을 받는다. 정갈한 한복 치마저고리 차림에 잘
빗어 틀어올린 머리의, 백합처럼 청초한 여선생이 홀연 자기의 생애 속으로
뛰어들어옴을 느낀 것이다.
 
「깃발」의 시인 청마 유치환(靑馬 柳致環 1908~1967)과 모시올 같이 단
아한 시인 정운 이영도(丁芸 李永道 1916~1976)의 운명적인 만남은 그렇게
시작된다. 청마는 광복과 더불어 고향인 통영에서 국어교사를 맡고 있었다.
정운은 1945년 대구에서 문예동인지 「죽순」에 시 「제야(除夜)」를 발표
한 새내기 시인이었다. 청마의 나이 그때 39살, 「문화유치원」을 경영하는
부인과 세 딸이 있었다. 8살 아래인 정운은 결혼 일년만에 남편과 사별하고
외동딸을 키우며 외로운 청상의 삶을 맑은 시심(詩心)으로 승화시키고 있었
다. 그러나 두 사람은 각자의 엄존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조심스럽고 은밀하
게 서로에게 다가섰다. 그들의 사랑은 뜨거우나 성결했다.
 
청마는 이때부터 이룰 수 없는 사랑의 목마름으로 열병을 앓듯 정운에게
편지를 써 보내기 시작한다. 두 사람의 안타까운 사랑의 여정은 곡절 많은
세월의 격랑 속에서도 만남과 이별을 거듭하며 20여 년간을 연실 같이 이어
진다. 청마는 경주 대구 등의 학교를 거쳐 1964년 경남여고 교장으로 부임
하며 제2의 고향인 부산으로 돌아온다. 정운은 1953년 남성여고 교사로 부
임하면서 부산에 먼저 정착해 살고 있었다. 정운은 한때 「부산 어린이
집」 관장을 맡기도 했다.
 
통영시절 이후 정운과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살게된 청마는 예총지부장
문인협회장 등을 맡아 요산 김정한 향파 이주홍과 더불어 트로이카를 이루
며 부산문화계를 이끌었다. 그러나 하늘이 시샘을 했을까. 청마는 1967년 2
월 불의의 교통사고로 숨을 거두고 한국문단에 큰 충격을 안긴다.
 
청마가 운명하기까지 정운에게 보낸 연서는 무려 5천여 통. 6.25전쟁 전의
것은 모두 불태우고 이후에 보낸 편지만 그랬다. 극우파였던 청마는 혹시
편지 때문에 정운이 피해를 입을까봐 없애게 했던 것이다. 줄잡아 17년간
보낸 편지가 5천 통이면 1년에 300여 통, 거의 매일 연서를 보낸 셈이다. 아
마도 이렇게 많고 긴긴 연서를 쓴 사람은 인류역사상 전무후무 할 것이다.
 
청마를 잃은 후 상심의 나날을 보내던 정운은 그해 가을 서울로 거처를
옮긴다. 그리고 청마의 연서를 간추려 「사랑하였으므로 행복하였네라」는
서간집을 출간한다. 이 서간집은 엄청난 화제를 불러일으키며 베스트셀러가
된다.
 
특히 표제가 된 청마의 시 「행복」은 연애편지의 교과서처럼 애송되었
다. 리얼타임으로 문자 메시지를 주고받는 오늘의 디지털세대에겐 손오공의
여의봉 얘기 만큼이나 고루할 터이다.

/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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