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향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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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 의미와 느낌
자작시 해설을 중심으로
이향아 연전에 모 대학에서 시론을 강의하고 있는 선배 P교수가, 수업시간에 내 시를 교재로 썼다는 말을 하였다. "이향아씨의 시로 한 시간 수업을 했어요. 이만하면 팬으로서 훌륭하죠?" 그는 이 말을 으스대면서 하였다. 그리고 거기 덧붙여 이렇게 말하였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런 말을 하지 말아요. 괜히 잘못하면 큰 인심 나겠어요." 그러나 그가 으스댔을지라고, 설령 그 말을 공치사처럼 말했다 해도 나는 솔직히 말해서 그의 호의가 고마웠다. 내 시의 어떤 점이 그를 감격시켜서 수업시간 여러 학생들 앞에서 소개할 마음이 생겼을까 사뭇 궁금하기까지 했다. 현재 우리나라 시인의 수는 한국문인협회에 등록이 되어 [월간문학] 주소록에 나온 사람만 하여도 1,600명이 넘는다고 한다. 여기에 아직 문인협회에 가입하지 않은 사람, 공식적인 체널을 통해 등단하지는 않았지만 스스로 좋은 시를 쓰고 시집을 내어 열심히 활동하는 사람들까지 모두 친다면 아마 그 두배는 넘지 않을까 한다. 그러나 독자들은 이 많은 시인들 중에서 몇몇 사람, 지극히 한정된 사람만을 알고 있다. 그것도 시를 사랑해서거나 꼭 알고 싶어서 알아진 것이 아니다. 그나마도 입시 위주의 국어교육에 시달리면서 점수를 얻기 위해 국어 교과서에 실린 몇몇 시인의 이름을 억지로 외웠을 것이다. 이런 판국에 대학의 강의 시간에 내 시가 뽑히어 교재로 쓰였다니, 선배의 처사에 감사하고 또 감사해도 과하지가 않다. 그런데 그는 사람들이 많지 않은 조용한 구석으로 나를 데리고 가서 "이향아씨, 그 <바다>라는 시 말예요. 특히 그 1연에서 나는 이향아씨의 심리 저변을 지배하고 있는 리비도를 발견했어요. 시아버지와 아이, 그리고 태몽, 바다의 우렁찬 생명력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바다의 내포적 의미는 카오스(chaos)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성적인 카오스를 상징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내가 제대로 잘 감상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라고 하였다. 나는 당황하여 어떻게 응수해야 좋을지 몰랐다. 나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고 어정쩡하게 웃고만 있었다.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그 시의 일부를 소개한다.
1.
시댁 동구밖 깊은 바다에서 세째놈 태몽에 키 넘는 물고기 한 마리 낚아 올렸다. 바다에서 얻은 자식, 배타고 멀리 나가 30년 돌아오지 않는 시아버님 자식. 배타고 멀리 나가 30년 돌아오지 않는 시아버님 바다. 3.
소녀적 내 동무는 소녀적에 죽어 산에도 못 묻히고 뻣가루 분가루 되어 바다로 울려 가서 온 바다에 딩굴며 킬킬대며 춤을 추네. 바다가 내 발목을 놓지 않네. 까불거리던 내 동무의 습기 많던 손, 그리워라 밀려와서 싸리꽃처럼 부서지네.
7.
내 집 뜨락에 내리는 바람에선 빛 바랜 돛폭의 향기 날만 새면 아이들은 골목에서 파도소리처럼 떠들고 가족들은 비린내 나는 식탁에 둘러 앉았다. 내 의식의 멀고 가까운 선창에서는 범선 두어 척이 사철 나를 기다리고 있다. <바다> 1.3.7연임 (제 2시집 [동행하는 바람]에 수록됨
내게는 바다를 바라보는 창이 여러 개 있다. 바다는 언제나 측량할 수 없이 멀고 아득한 공간의 이미지로 다가온다. 내 능력을 초월하는 거대한 대상 앞에 설 때면 언제나 그러하듯이, 바다 앞에 설 때 나는 마치 그 바다의 신도가 된 것처럼 경건해 진다. 나는 바다 앞에서 예배하는 사람처럼 소망을 말하게 되고 터무니 없는 꿈을 꾸게도 된다. 나는 바다 앞에 서면 순종하는 아이처럼 감정이 가라앉는다. 나는 바다 앞에서 '배타고 멀리 나가 30년 넘게 돌아오지 않는 시아버님을 생각하기도 하고(1연), '소녀적에 죽어 산에도 못 묻히고 뼛가루 분가루 되어 바다로 울며' 간 내 친구를 생각하기도 한다(3연). 뜨락으로 불어오는 바람에서는 돛폭의 냄새가 나고 아이들이 떠드는 소리는 파도 소리 같으며 식탁에서는 언제나 바다 비린내가 나는 나의 집, 사시철 선창에서는 범선 두어 척이 이미 떠날 채비가 된 나를 기다리고 있는 내 의식의 푸르른 바다. 바다와 나의 관계는 진실로 깊고 화려하다. 내 선배 P교수는 '시댁 동구밖 깊은 바다'를 잠재의식의 동굴로 파악하였으며 그 동굴은 태몽이라고 하는 어휘를 통해 은유되었다고 이해하였을 것이다. P교수의 리비도 운운에 내가 지나친 반응으로 긴장하였던 것은 부질없는 일이었는지 모르지만, 아무래도 그가 내 시에 대해 오해를 하고 있는 것만은 사실인 것 같다. P교수는 다짜고짜로 리비도니 성적인 카오스니 하여 나를 당황하게 하였었다. 그러지 말고 바다는 생명이 탄생되고 사멸하며 부활하기도 하는 에너지의 원천이므로, '배타고 나가서 돌아오지 않듯이 아스라한 시간 너머에 존재하는 시아버지가 세째놈으로 환생했다고 하는 시의 표현은 대체로 그럴싸하다'는 소박한 느낌을 거기 덧붙여 주었더라면 나는 훨씬 더 만족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를 훨씬 더 신뢰했을 것이다. 시는 발표된 후부터는 독자의 것이다. 독자의 수준과 감각에 의해 재생되고 그 취향에 맞게 해석이 되는 것이다. 시인이 삼천리 방방곡곡 독자들을 쫓아다니며 시의 동기와 숨은 뜻을 해석할 수 없으며 설령 그럴 수 있다고 하여도 그것은 무의미하다. 나는 솔직히 P교수가 <바다>라는 시를 수업시간에 감상했다고 할 때부터 그것은 이미 내 의지와 무관하게 재단되었을 것이라고 예상했었다. 그러나 정직하게 말해서 P교수의 경우는 오히려 내 시에 더 깊은 의미가 있는 것으로 풀이하였으므로 내 시의 수준을 격상시켜 주었다고 할 수 있다.
어떤 대학생들의 문학서클에서 내 시가 필자인 내 의도와는 전혀 다르게 엉뚱한 각도로 감상되었다는 말을 들었다.
안전벨트를 매었다. 차장은 내 차표를 찢어서 반쪽만을 신표처럼 내밀었다. 하나를 둘로 나누어 가진 우리들의 관계
온 강산 똘물처럼 굴러다녀도 반쪽씩의 차표를 품고 살다가 해지는 포구나 어느 주막가게 앞에서 다시 만나 반쪽씩을 맞추어 볼까
차는 산천을 가로질러 멀고 먼 시간 속으로 빨리어 가고 살아야지, 허리를 띠로 동이고 함께 달리는 슬프고도 아득한 우리들의 관계 불을 켜듯 그립게 나는 그녀를 바라본다. <반쪽 차표> 전문 (제 6시집 [강물연가]에 수록됨)
나는 이 시에서 유정한 인간관계를 그리고 싶었다. 한 개의 차표를 둘로 찢어서 반쪽씩 나누어 가진, 오늘 처음 만난 차장과 나의 관계는 단순히 차장과 승객의 관계가 아니요, 보다 진한 맹세로 얽힌 관계라고 하고 싶었다. 반쪽씩의 차표는 사랑하는 두 남녀가 이별을 앞두고 나누어 가진 옥가락지 한짝이라고 할 수도 있다. 고구려의 유리왕자가 아버지를 찾으러 나설 때 신표가 되었던 반쪽의 부러진 칼일 수도 있다. 그것을 마치 신표처럼 가슴에 품어 간직했다가 '해지는 포구나 어느 주막 가게 앞에서 다시 만나 반쪽씩을 맞추어 볼 수 있을 만한 맹세가 우리들 사이에 있는 것도 아니요.별스럽지 않은 사소한 일에까지 일일이 의미를 붙일만큼 우리들의 생활이 단순한 것도 아니다. 이것은 다만 시적 환상일 뿐이다. 우리들의 가슴 저 깊숙한 곳에 사멸하지 않는 영원한 그리움, 순수무구한 동경의 세계를 시라고 부를 수 있다면 차장이 내 차표를 찢어서 반쪽만을 신표처럼 내밀 때의 그 공간에 이미 시는 존재했던 것이 아닐까 한다. 그리고 함께 살아 남기 위해 안전벨트를 매고서 아득한 시간 속으로 빨리어 가듯 산천을 헤치고 달릴 때, 우리가 전혀 무관한 관계라고는 아무도 말할 수 없게 된 필연의 동행 속에 시는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고 말하고 싶다. 그런데 문학 서클에서의 감상은 이런 것이었다. 즉 '하나를 둘로 나누어 간진' 우리들의 상황은 조국 분단의 상황으로서 '허리를 띠로 동이고' 가는 '슬프고도 아득한 우리들의 관계'라는 것이다. 나는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근래 시인들이 서정시만을 주로 쓰는 것에 대해서 조국과 민족에게 무슨 죄를 짓는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다. 그것은 시를 읽는 독자나 비평가만 그런 것이 아니고 시를 쓰고 있는 시인 자신도 때로 그런 콤풀렉스를 느끼는 모양이다. 그러나 시인이 주력해야 하는 일은 예나 지금이나 시인 자신의 내면을 충실하게 조명하는 일이다. 여기서 내면이라고 하는 것은 정서일 수도 있고 사상일 수도 있다. 시인이 자신의 정서와 자신의 생각을 구체적 형태로 표현해 보였으되 그것이 그 시인 한 사람의 정서나 생각으로만 머물지 않고 만 사람의 정서, 만 사람의 생각을 대변하였다면 그 시는 공감의 폭이 큰 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한 시인의 특수적 자아가 아닌 보편적 자아라고 할 수 있으며, 이는 다신 확장된 시인의 내면이라고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필자는 시인이 소위 스케일이 큰 시를 쓰기 위해 고심하면서 의도적으로 시대 상황과 역사 의식을 조명하려고 노력한다면 과연 그 노력은 얼마만큼의 의미가 있는 것일까 회의가 된다.
6.25사변이 터진 몇 해 후 이북에서 월남했다는 내 친구 경옥이 경옥이의 얼굴은 사과꽃같이 작았다. 목청을 떨며 사과꽃 노래를 불렀었다. 이북에서 배웠다는 소련 노래 사과꽃 발바닥으로 마룻장 굴러 손뼉을 치며 아버지가 알면 혼찌검이 난다면서 그애는 졸라대면 사과꽃을 불렀었다. 우리가 이남에서 미국 노래를 배울 때 경옥이는 이북에서 사과꽃을 배웠다. 지금은 수녀가 된 내 친구 경옥이 사과꽃보다 이쁘고 향기로운 경옥이 소련에 핀 사과꽃은 경옥이의 노래였다. <사과꽃> 전문
이 시에 대한 시인 홍윤기의 평설은 다음과 같다.
-- 전략 -- 물론 이 <사과꽃>은 통일을 하자고 제창을 하는 그런 시는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한 편의 시에서 우리 겨레 국토 분단의 비극이 그 얼마나 통절한 것이었는지를 가슴 깊이 되새기게 될 것이다. 이런 아픔의 노래야말로 시인의 통일의 염원이 안으로 응축된 빛나는 노래라고 하겠다. 이향아의 <사과꽃>은 국토 분단의 민족적인 비애를 '사과꽃'이라는 소련노래를 비유해서 절절하게 엮어낸 수작이다. 시인이 통일을 절규하기보다는 이렇듯 우리가 겪은 분단의 비극적 현실을 투명한 감정으로서 여과시키는 시작업이야말로 우리의 숙망을 구현하려는 참다운 의지의 제시라고 하겠다. 예리한 역사 의식을 절묘한 시로서 승화시키는 메타포어의 솜씨가 <사과꽃>을 자못 눈부시게 개화시키고 있다. "우리가 이남에서 미국 노래를 배울 때/ 경옥이는 이북에서 사과꽃을 배웠다"고 하는 이 비극적 현실을 극복하려는 시인의 굳건한 의지가 가상하다. 시인이 직접 자유화가 된 오늘의 러시아를 1991년에 여행하면서 쓴 작품이라는 것도 아울러 밝혀 두는 게 독자들에게 이해의 폭을 넓히리라고 본다. - 홍윤기 저 [현대시 창작법]에서 인용함 -
나는 우선 위와 같은 긍정적 평가에 접하여 시를 쓴 당사자로서의 쑥스러움과 어색함을 감출 수 없다. 겸손을 가장해서가 아니라, '어디 내 시가 그렇게까지야 되겠는가. 이렇게 호의로 읽어주는 사람이 있으니 얼마나 보람이 있는가? 하는 생각도 든다. 이는 나의 솔직한 고백이다. 홍윤기가 지적한 바와 같이 나는 1991년 5월 러시아를 여행하면서 모스크바와 알마아타 지방에 만발한 사과꽃을 매우 인상 깊게 보았다. 사과꽃은 유독 러시아에만 피는 특별한 꽃이 아니요, 또 내가 거기서 처음으로 대한 꽃도 아니다. 해마다 봄이면 우리나라 도로 연변의 과수원에 얼마나 흔하게 피는 꽃인가? 그러나 전에는 보아도 그냥 대충대충 스쳐갔던 것이다. 그런데 나는 왜 지금에야 비로소 러시아에 피어 있는 사과꽃에서 이토록 가슴이 저려오는 감동을 받는 것일까? 6.25 사변때 북한에서 남하했다는 경옥이라는 친구, 그녀가 북한에서 배웠다는 소련 노래 '사과꽃'으로 호기심 많은 우리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던 일, 해 서는 안될 나쁜 행위라도 저지르는 듯 그녀가 비밀처럼 소련 노래 '사과꽃'을 부르던 일. 나는 그런 일을 수십 년 동안 가슴 깊이 품고 살았던 것이다. 그리고 그로부터 수십 년이 흘러간 다음 왕래가 자유로워진 러시아땅을 밟으면서 거기 문득 만발해 있는 사과꽃을 통하여 의식 속에 오래 잠자고 있던 내 친구 경옥이를 만났던 것이다. 나는 의식은 깊은 곳에 '사과꽃= 경옥'이라는 둥식을 오래 세워 두고 있었음을, 이 시를 쓰면서 뒤늦게 깨달았다. 나는 홍윤기가 이 시를 긍정하는 이유로서, '비극적 현실을 투명한 감성으로 여과시키는 시작업'이었음을 지적하고, '시로서 승화시키는 메타포어의 솜씨'가 괜찮았음을 거론했다는 점에는 흡족함을 느낀다. 만일 그렇지 않고 국토 분단의 슬픔을 다루었다는 이유나 혹은 통일의 염원을 표현하고 역사 의식을 노정했다는 이유를 우선하여 강조했다면, 나는 어딘가 모르게 마음이 허전했을 것이다. 그런 조건이라면 나는 내 시가 성공했다고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것은 시로서 성공한 것이 아니라, 그 배후의 이념으로 잠시 돋보인 것에 불과한 것이리라고 생각한다. 시는 때로 아무런 의미가 없이, 몽롱한 어휘와 그 어휘들이 풍기는 무드만을 전할 수도 있으며 어휘의 집합이 만들어 낸 이미지만을 표현할 수도 있는 것이다. 나는 의미와 목적이 선명한 시에서보다 방법과 과정이 아름다운 시에서 더 만족한다. 그러므로 나는 내 시가 강한 목소리로 뚜럿한 어떤 것을 부르짖거나 주장하지 않기를 바란다. 다만 영양분을 섭취하기 위해서 음식을 먹는다면 우리가 음식을 만들고 먹는 시간에 들이는 시간과 정력이 지나치게 많은 것은 아닐까? 음식이 우리들에게 활력을 제공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우선은 음식이 맛이 있어야 하고 그것을 씹고 삼키면서 쾌락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가족과 친지들이 식사를 위해 마주 앉으면 우리는 음식을 먹기 전부터 즐겁다. 식탁을 둘러앉은 우리로 하여금 그 시간을 즐기게 하는 것은 비단 그 음식의 영양소가 주는 현실적 이익이 아니다. 음식의 맛과 모양과 색깔이 우리를 즐겁게 하며 식탁에 꽃힌 싱싱한 꽃이나 깨끗한 식탁보, 음식을 담아낸 그릇의 청결함과 정교함도 그 시간을 빛나게 한다. 그리고 그 시간이 주는 본질적 가치, 살아 있음의 희열이 우리를 무한히 감격하게 한다. 나는 시의 형식 속에 스며 있는 아름다움 때문에 시를 사랑한다. 나는 많은 양분이 함유된 음식과 같은 시를 바라면서도 우선 맛이 좋아서 먹는 즐거움을 누리게 하는 시를 바란다. 시는 근본적으로 리얼리즘에 어울리지 않는다. 시는 우리를 현실로 인도하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잠시 현실로부터 떠나 있게 하기 위해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과잉된 환상이나 낭만이 시의 표현에 과장을 낳기 쉬우며, 지나치게 축축한 감정의 질펀함이 시의 명징성을 차단하기 쉽다. 현대시에 이르러 이미지의 의식적인 건조나 견고함을 지향했던 것도 그러한 이유 때문일 것이다. 어디서 불이 났나 보다 한밤을 찢어내는 칼날같은은 비명 누가 또 불씨를 훔치려고 했겠지. 훔치다가 들켰겠지.
땅의 숨결을 하나씩 빼돌려서 하늘 가는 도중쯤의 밋밋한 고갯길에 희부연 달 하나 새로 기적처럼 띄우려고 그랬나 보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야 말지 이러다가는 날마다 불씨를 품고 살다가 어리숙한 누가 또 도망을 쳤나보다. 도망치다가 잡혔나 보다.
불이야 삼동네 구경꾼들 모여 온몸의 열기 뽑아 강물에 가 헹구고 온몸으로 빛을 당겨 강물에 뿜어 이 강의 하구 낮으막한 동네에 영특한 아이 하나 새로 태어나게 하려고 그랬나 보다. <불구경> 전문
건너편 동네에 불이 났는데 하늘을 치솟는 불기둥의 광채나 바라보면서 이 시를 썼다고 고백한다면 황당하다고 비난할 독자들이 있을 것이다. 비난 받을 것을 각오한다. 화재를 당해 넋이 나간 사람들과 어떻게 해서라도 불을 꺼보려는 사람들의 난리 북새통 속에서 그 광경을 멀리 바라만 보는 것도 외람된 일인데 이런 상황에 팔짱이나 끼고 어슬렁 거리듯 이 따위 시를 썼다는 것은 얼마나 엉뚱한 짓인가. '불구경'이라는 말부터가 새디스틱한 조어다. 불이 난 그 현장의 상황에 접근하여 생각하면 불구경이란 말은 애초부터 풍자적이다. 그리고 불구경을 하면서 불씨를 훔쳐내는 신화적 모티프를 적용한 것은 비현실적이다. 더구나 그 광채를 모으고 뭉쳐서 희부연 달 하나 뜨게 하려고 불이 났다고 해석하는 것은 사실을 외면한 괴변이다. 그 불에서 행구언 낸 열과 빛으로 이 강의 하구 낮으막한 언덕에 영특한 아이 하나 새로 태어나게 하는 꿈을 꾼다는 것도 허무맹랑한 상상이다. 이것은 도대체 말로 안 되는 시인 것이다. 있는 것을 있는 그대로 말하는 것이 리얼리즘이요, 지금은 없으나 있어야 할 것을 말하는 것, 있을 수 있는 가능성을 말하는 것이 모맨티시즘이라고 할 때, 나는 단연 후자를 택하겠다. 리얼리즘은 시가 아니라도 말할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우리가 날마다 살아내는 일이 혹독한 리얼리즘이 아니겠는가? '무슨 일이 일어나고야 말지/ 이러다가는/ 날마다 불씨를 품고 살다가/ 어리숙한 누가 또 도망을 쳤나 보다./ 도망치다가 잡혔나 보다'라고 한 3연에서는 불씨라고 은유된 사랑을 품고 살다가 그 사랑에 곡절이 있어 도망을 치다가, 드디어 실화를 저지른 어떤 사람에 대하여 시인이 얼마나 진한 사랑을 느끼고 있는가를 표현하고 싶었었다. 혹시라도 이 시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래서 한 마디 언급하여 나에게 힘이 솟아오르게 하고 싶다면, 이렇게 말해 주었으면 좋겠다. 이 시에서 불은 우리들 속에 지니고 사는 제 각기의 혼이라고, 그 불 기운 부스러진 조각들이 모여서 달과 같은 그리움의 대상이 된다고, 그 불 기운은 또 모여서 지혜롭고 영특한 새 생명을 태어나게 하는 태기가 된다고, 불은 외곬이며 혼은 누구에게나 하나뿐인 알맹이라서 죽어서야 꺼지는 씨와 같은 것이라고. 이 시에서 불은 사랑이라고, 그리고 불구경이란 결국 우리들 생존의 갈등이 만들어 낸 어쩔 수 없는 주관과 객관의 풍경이라고, 그러나 누가 감히 그것을 바라겠는가. 발표된 시는 이미 내것이 아니다. 그리고 또 시는 꼭 이렇게 감상해야만 하는 것이 아니고 얼마든지 달리 감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떻게 읽히든지 독자들의 판결만을 바랄 뿐이다.
고갱이 그렸던 <황색 그리스도>를 들여다본다. 타들어가는 칠월 꽃순을 따서 나는 봉숭아꽃 으깨어 물들인 발톱
황색 그리스도가 흘린 피같은 발톱으로 황색 그리스도의 어지럼증을 어지럼증 한 복판 그 황흘을 하나씩 꽃잎처럼 으깨어 본다.
유난히 팔이 긴 황색 그리스도 그 팔로 건지는 빈혈의 세상 아무짝에도 소용없는 심난한 세상. - <황색 그리스도> 전문 -
'시는 회화다'라고 설파한 시인이 있었다. 그것은 시에서 이미지를 제시해야 한다는 주장을 담은 발언일 것이다. 시를 읽으면 한 폭의 그림을 느낄 수 있다면 일단 그 시는 이미지 조형에 성공한 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와 반대로 회화를 보면서 한 편의 아름다운 시를 발견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실로 어떤 그림은 강렬한 시적 감동을 주면서 나로 하여금 당장 시를 쓰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한다. 위의 시는 그 내용이 밝히고 있는 것처럼 고갱의 그림 <황색 그리스도> 를 보면서 쓴 시이다. 그 그림은 전 화폭에 황색의 이미지가 강한 바탕을 이루고 있다. 배경도 십자가도 그리스도도 온통 황색이다.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는 조금 연한 황색을 띠고 있으며 유난히 팔이 길다. 그는 마치 빈혈과 어지럼증을 호소하고 있는 듯하다. 긴 팔이어야만 많은 사람을 끌어 안을 수가 있을 것이다. 긴 팔이어야만 허리를 깊이 굽혀서 수렁에 빠진 사람을 모두 건져올릴 수 있을 것이다. 황색 그리스도, 피란 피는 다 빠져서 빈혈 상태가 된 그리스도 , 빈혈의 세상을 건져 올리는 빈혈의 그리스도, 그러나 그리스도가 건져 올린 세상은 과연 건져 올릴 만한 가치가 있는 세상인가? 그는 세상을 건져 올려서 무엇에 쓰려고 그러는가? 고갱이 그린 그림 황색 그리스도를 들여다보고 있던 그해 여름, 마침 나의 발톱운 봉숭아 꽃물을 들여 빨갛게 타들어 가고 있었다. 나는 내 발톱의 붉은 색을 그리스도가 흘린 피와 견주어 생각해 보았다. 그 상황의 이질성과 가치의 이질성이 부각되었다. 나는 문득 쓸쓸하였다. 그리고 나는 문득 슬펐다.
나는 스스로 적은 이 글로 여덟번째의 시집 발문을 삼는다. 시는 원래 해설이 필요없다. 그러나 때로는 독자들을 인도하는 길잡이가 될 수 있을 것 같아서 시작 노트를 겸하여 내 놓는다. 시를 직접 쓴 시인의 의도 혹은 동기를 정직하게 독자들 앞에 전할 기회를 얻기가 힘들다. 거기 이 글을 내놓아서 시를 본뜻에 가깝게 해석하고 이해하게 하는 작은 벼리로 삼게 하고 싶다. 1993년 6월의 마지막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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