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현실고발 혹은 재현의 시
현실고발과 저항의 詩는 사회와 시대적 상황에 창작의 동기를 둔 詩가 될 수밖에 없다. 강한 목적의식이 詩의 저변에 자리잡고 있으므로, 이 목적 의식 즉 주제는 詩의 중요한 요소라고 할 수 있는 서정성을 압도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제시한다는 의미에서 이는 寫實主義的 방법이다. 사실주의에서 문제 삼는 것은 본질적으로 인간과 삶이다. 그런데 있는 그대로의 현실에 나타나는 인간과 인간의 삶은 추잡하고 왜소하며 보잘것 없는 것들이 주류를 이룬다. 우리는 여기서 詩는 주제를 가져야 하는 것인가하는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詩에서 사상과 목적과 주제가 강하게 드러날 때, 이미 그 詩는 감동의 대상이 아닌 믿음과 敎化의 대상으로 경직되는 것이 아닐까하는 의문을 품게 된다. Paul Valery는 詩에 제목을 붙일 필요가 없다고 하였다. 이 말은 詩가 내용보다 형식과 방법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제목은 Thema와 관계가 있는 것이며 내용을 대변하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특수한 상황은 특수한 문화와 예술을 생산할 수밖에 없게 된다. 한국문학은 신문학이 수립된 지 1세기밖에 되지 못했다. 그동안 우리는 나라를 잃고 언어를 침탈 당하고 식민지 치하의 굴욕적 생활 속에서 민족 자주독립을 위하여 3.1운동과 같은 항일투쟁을 전개하는 등 집요하고도 강인한 저항의 의지를 여러 형식으로 표현해 왔다. 그후 태평양 전쟁을 격고 해방을 맞이하고, 이어서 남북분단의 혼란과 슬픔을 체험하고, 동족끼리의 전쟁인 6.25를 치르는 동안, 이 나라의 국민들은 고난으로 점철된 역사의 주인공으로서 참담한 삶의 곡예를 치뤄내지 않으면 안 되었었다. 그러한 가운데 한국의 문인들은 급변하는 사회적 여건 속에서, 苛烈한 생명의 원시성과 문학예술이라고 하는 이상의 틈바구니에서 세계 역사상 그 어느 나라에서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특수한 임무를 떠맡아야 했다. 일제시대에는 항일적 이념의 격앙된 음성을 토해 냈고, 해방 후에는 갑작스러운 기쁨과 혼란의 틈바구니에서 분열된 민주와 공산 사상의 첨예한 대립의 소리를 뿜어냈었다. 그리고 다시 동족상잔의 변란인 6.25후에는 순수냐 참여냐하는 문제를 들고 70년대를 넘어 80년대까지 꽤 긴 동안 논란의 주제를 삼았었다. 문학인, 그 중에서도 특히 시인은 어느 시대나 자기자신의 내부를 성찰하면서 당대의 사회가 드리우는 특수한 풍속도의 음영을 반영하고 분석해야 한다는 이중적 과제를 짊어지고 있다. 그리고 이 과제는 험난한 고난 그 자체이기도 하였다. 우리 한국의 문인들이 겪어온 문학적 시대적 선구자로서의 책무는 그 어느 나라의 문인들이 겪어낸 그것보다 무겁고 막중한 것이었다고 하겠다. 한국의 역사적 상황은 한국의 문인들로 하여금 만능적 도구로서의 대용가치를 충분히 발휘하지 않으면 안 되도록 강경하게 요구하였던 것이다. 시인은 이 요구에 부응해야 한다는 사명감을 느끼면서 시대적 증인으로서, 선각적 지성으로서, 그리고 예언자적 예술인으로서 동등한 질량의 몫을 담당하지 않으면 안되었던 것이다.
그날이 오며는 三角山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고 추고 漢江물이 뒤집혀 용솟음칠 그날이 이 목숨이 끊지기 전에 와주기만 할량이면 나는 밤하늘에 나르는 까마귀와 같이 鐘路의 人磬을 머리로 드리받아 올리오리다 頭蓋骨은 깨어져 散散 조각이 나고 기뻐서 죽사오매 오히려 무슨 恨이 남으오리까
그날이 와서 오오 그날이 와서 六曹앞 넓은 길을 울며뛰며 딩글어도 그래도 넘치는 기쁨에 가슴이 미어질 듯하거든 드는 칼로 이몸의 가죽이라도 벗겨서 커다란 북을 만들어 들처메고는 여러분의 行列에 앞장을 서오리다. 우렁찬 그 소리를 한 번이라도 듣기만 하면 그 자리에 꺼꾸러져도 눈을 감겠소이다. - 심 훈 <그날이 오면> 전문 -
현실을 고발하는 작품에서는 고발하고자 하는 그 내용에 지나치게 충실한 나머지 Reality에만 집중하게 될 수 있다. 그리고 Reality에 매달리다 보면 詩의 형상화 작업에 소흘해 지지 않을 수 없게 된다. 현실고발의 詩가 가지는 숙명적 결점은 생경한 현실감에만 집중할 뿐, 언어예술로서의 특성을 표현할 수 없다는 것이다. 위의 <그날이 오면>은 밀집된 내용의 과도한 중량이 詩의 형식미를 크게 압도하고 있다. 이 시인은 의미를 전달하는 것을 주된 목적으로 삼고 있으며, 승화된 미적 정서의 표현과는 거리를 두고 있다. 더구나 '드는 칼로 이몸의 가죽이라도 벗겨서 커다란 북을 만들어 들쳐메고는', '鐘路의 人磬을 머리로 드리받아 올리오리다', '두개골은 깨어져 산산 조각이 나고' '그 자리에 꺼꾸러져도' 등은 詩의 미적 경로를 소흘히 여긴 표현인 것이다. 해방의 '그날이 오면' 이 시인이 얼마나 기뻐할 것인가를 독자는 이 詩의 문맥으로 충분히 전달 받을 수는 있다. '드는 칼로 이 몸의 가죽이라도 벗겨서 커다란 북을 만들어' 행렬의 앞장을 서겠다는 적극성, 그러한 날이 오기만 한다면 그 자리에서 죽어도 한이 없다는 이 시인의 진실은 오히려 지나친 의미의 강조로 말미암아 훼손될 염려가 없지 않다. 관용적 어구가 많은 평범한 措辭法은 일정한 의미를 전달하는 데에는 효과적이다. 해방의 날을 기다려 죽기를 불사하는 시인의 애국적인 일념과, 그로 인해 격앙된 감정을 표현하는 데에는 무리가 없다. 그러나 詩를 읽는 즐거움이나 아름다운 감동을 불러 오기에는 적합하지 않다. 오히려 詩로서의 생경함이 저돌적이고 거친 반향을 독자의 가슴에 전달해 줄 수도 있다. 현실을 고발하더라도 그 표현의 세부에 있어서 詩의 영역을 일탈하지 않기 위해서는, 정서를 정돈하고 침잠시키기는 일정한 여과의 경로를 밟아야 한다. 그리고 여과된 그것을 효과적으로 표현하는 탁월한 시적 능력이 요구된다.
내 고향은 강 언덕에 있었다 해마다 봄이 오면 피어나는 가난.
지금도 흰 물 내려다보이는 언덕 무너진 토방가선 시퍼런 풀줄기 우그려넣고 있을 아, 죄없는 눈만 큰 어린것들
미치고 싶었다. 四月이 오면 山川은 껍질을 찢고 속잎은 돋아나는데, 四月이 오면 내 가슴에도 속잎은 돋아나고 있는데, 우리네 祖國에도 어느 머언 心底, 분명 새로운 속잎은 돋아오고 있는데.
미치고 싶었다 四月이 오면 곰나루서 피 터진 東學의 함성, 光化門서 목 터진 四月의 勝利여.
江山을 덮어, 화창한 진달래는 피어나는데 출렁이는 네 가슴만 남겨놓고, 갈아엎었으면 이 균스러운 부패와 享樂의 不夜城 갈아엎었으면 갈아엎은 漢江沿岸에다 보리를 뿌리면 비단처럼 물결칠 아 푸른 보리밭.
강산을 덮어 화창한 진달래는 피어나는데 그날이 오기까지는 四月은 갈아엎는 달. 그날이 오기까지는 四月은 일어서는 달. (1966) - 申東曄 <四月은 갈아엎는 달> 전문 -
말미에 1966년에 제작되었음을 알리고 있는 것으로 보아 '四月'은 4.19 의거로부터 유발된 시간적 상징임을 알 수 있다. '光化門서 목 터진 四月의 勝利여'가 이를 증명하고 있다. 이 詩에도 물론 격앙된 표현은 있다. '四月은 갈아엎는 달, 四月은 일어서는 달'이라는 구절에는 과격하다고 할 만한 선동성이 있다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그 과격성은 독자의 충분한 동의를 얻을 수 있을 만큼 그 기저의 정서가 탄탄하게 정돈되어 있다. 시인은 무너진 토방가에서 초근목피를 눈물로 우그려넣는 보리고개의 배고픔과 한강연안의 불야성 같은 향락과 부패를 병립시켰다. 타락하고 부정한 것들은 갈아 엎었으면 갈아엎고 거기 비단처럼 물결칠 보리를 뿌렸으면 좋겠다고 외치는 시인의 목소리에 토를 달 독자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부패한 세상에도 아름다운 것은 있으니 그것은 화창하게 피어나는 진달래와 '출렁이는 네 가슴'이다. 봄마다 피어나는 가난과, 죄없이 눈만 큰 어린 것들과, 四月이면 내 가슴에도 피어나는 속잎. 그러나 무력하여 다만 미치고 싶은, 미쳐서 갈아 엎고 갈아 엎은 그 자리에 보리를 뿌리고 싶은 마음. 이 詩의 소재 자체가 신선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지겨우리만큼 반복되어 온 구차한 가난과 대책이 없는 분노, 그리고 거기에 대조를 이루는 부패와 타락이다. 이러한 소재는 자칫 생경하고 건조하게 다루어질 수 있다. 신동엽은 정직한 분별력과 예민한 감성으로 리얼리티의 경계를 지키면서 현실과 문학을 적절히 조화시켰다. 신동엽의 시는 이와 유사한 계열의 시들, - 현실고발 혹은 저항의 시들 가운데에서도 비교적 성공한 詩라고 할 수 있다. |